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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Feb 05. 2024

태어난 김에 '쏘니' 보러 런던 가기

feat. 영국인 꼬마 쏘니팬

 아시안컵 서이벌에서 4강이 확정되었다. 리그 초반의 우려를 깨고 매 경 종료 직전의 기적을 보여 주는 축구 대표팀 선수들과 주장 손흥민의 인기가 단하다.

 바로 지금이 내가 런던에 가서 쏘니를 보고  이야기를 하기에 나이스한 타이밍 같다.(차려지는 밥상에 내 숟가락 얹기 전략)

 

 딱 1년 전 이맘때 작은딸과 둘이 런던에 다녀왔다.

 리 상황에 맞 일정 중에 운 좋게도 손흥민 선수를 직관할 수 있는 트넘 홈경기가 있었다. 응원석은 이미 매진이었고 란히 명이 앉을자리 없어서 수시로 홈페이지에 접속해 좌석을 업데이트했다. 간신히 골대 뒤쪽으로 티켓 두 장을 잡았다.

 

 패딩턴역 앞의 숙소에서 토트넘 홈구장까지 이층 버스를 타고 갔는데 우리로 치면 서울 시내를 벗어나 한참 북쪽으로 올라가야 닿는 변두리 동네라고 할까. 소박한 주택가가 많고 런던 시내와는 완전히 다른 외곽 지역에 토트넘의 새 구장이 있었다. 런던에서 가장 큰 축구장이라니 관련 시설이 들어서려면 그만큼 넓고 한적한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경기 전에는 안전상의 문제로 구장 주변 도로를 통제한다. 그래서 버스도 수 킬로미터 전의 정거장까지만 운행하고 회차한다고 했다. 모두들 버스에서 내려 한참 걸어갔다. 길가에 있는 동네 펍들은 저녁 경기를 보려는 사람들이 미리 모여시끌벅적했다.  

 스타디움에서 가장 흔한 관중은 전형적인 영국 아저씨들이었는데 하나같이 키가 190은 돼 보였고 몸집 컸다. 영국 왕자 같은  수염을 기른 사람도 많았다. 대부분 오래 입은 듯청바지에 점퍼나 루즈 핏의 모직 셔츠를 입고 캡을 썼다는 특징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흔한 트레이닝 셋업이나 아웃도어 스타일은 당연히 없었다.

 그들 사이에 관광객이 섞여 있는데 특히 한국인 관광객 겸 쏘니 응원단이 았다. 비유하자면 유리병 안에 먼저 뭉툭한 자갈을 가득 채우고 나서 틈새로 조그만 돌끼워 넣은 비율 같다고나 할까.


 기념품 숍에도 손흥민 코너가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쏘니의 인기가 애국심에 취해 과장하는 말은 아니었구나 느꼈다.    

 영국 아저씨들은 경기를 기다리맥주를 마시며 떠들었다. 경기 시작하기도 전에 적당히 술기운과 흥이 오른 상태가 되는 것이다.

토트넘 구장 내 굿즈샵



 

 우리는 현지인 관중 틈바구니에 앉았다. 잔뜩 기대에 차 있는  어른들 사이에 낀 어린애 같은 기분이었다. 경기 중에 팬들이 흥분해서 우르르 일어서서 소리치는 경우가 차분히 앉아서 보는 시간보다 많았는데 그때마다 내 앞에 인간 장벽이 세워져서 하나도 안 보였다.

 관중들은 선수들이 입장하기 전부터 함성을 지르고 전응원가를 불렀다. 6만여 관중이 박수를 치면서 짧고 강하게 '이즈!!(yids:토트넘 선수와 팬을 뜻하는 애칭)'라는 구호를 반복해 외칠 때는 영화 레미제라블 첫 장면, 수많은 죄수들이 바닷물 속에서 엄청나게 큰 배를 끄는 오프닝이 생각났다.


 마침내 쏘니가 눈 부신 잔디 위에 형광색 상의를 입고 나왔다. 특히 한국인들이 모인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곧 연습에 전념했다.

작은딸의 직찍

 

 멀리서 구경 온 동포들을 위한 쇼타임도 있었다. 경기 초반에 쏘니가 하프라인에서 골문 코앞까지 여러 명을 제치고 빠르게 공을 몰고 돌파했다. 이러다가 바로 한 골이 들어가는 줄 알았다.

 몸을 사리지 않는 쏘니는 당연히 공을 많이 잡았고 그럴 때마다 아저씨들은 쏘니, 쏘니 고우고우!! 하며 흥분하다가 뿨....어쩌고 하면서 탄식했다. 영화에서나 듣던 그 단어를 어찌나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쫄보인 나는 훌리건 이런 단어가 떠오르면서 오늘 코리안 쏘니가 실수라도 하면 같은 코리안인 내 뒤통수를 누군가가 딱 때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됐다. 우리 모녀 주위에는 한국인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과의 A매치가 아니어서 다행이란 엉뚱한 생각도 했지만  그들쏘니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느낄 수 있었다.

 '뿨'로 시작하는 욕을 퍼붓고는 자기들끼리 또 막 웃는다. 방금 전까지 발을 구르며 난리를 치던 아저씨가 내 앞으로 지나가면서 쏘리쏘리 하고 굽신거린다.

 우리나라 아저씨들만큼 볼거리와 놀거리가 별로 없는 영국 아저씨들은 자기네 연고 축구팀의 연간 회원권을 끊어 놓경기가 있는 저녁마다 축구장에 간다. 그것이 그들 일상의 낙이라고 맘대로 정리니 과열 양상이 이해가 되었다.


 하프타임에 경기장 밖에서 기념사진을 찍다가 손흥민의 7번 유니폼을 입은 대여섯 살쯤 된 남자와 아버지를 보았다.

 나는 꼬마를 불렀다. 혹시 쏘니 현지 팬을 만나면 주려고 손흥민 선수의 얼굴이 새겨진, 커피 체인점의 종이컵슬리브를 몇 개 가지고 갔었다.  

 영국이든 우리나라든 남의 아이에게 불쑥 말을 건네면 실례이니 그 애 아버지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 꼬마에게 슬리브를 주면서 말했다.

 

 - 쏘니 좋아하니? 이거 아줌마가 한국에서 가져온 건데 너에게 줄게. (물론 미국식이지만 영어로 말했다)


 아이는 갑자기 들이대는 외국인 아줌마를 부끄러워하면서도 슬리브를 받았다. 거구의 아버지가 나에게 당큐, 당큐! 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아, 나는 쏘니와 같은 한국인인 것이 뿌듯했다. 메가커피 홀더도 나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열섯 시간을 날아간 보람이 있었다.  

 그날은 쏘니가 득점이나 도움을 못 했지만 현재는 토트넘을 떠난 케인이 한 골을 넣어 맨체스터 시티에게 1대 0으로 이겨서 마무리 분위기는 좋았다.     


 내가 살면서 런던에 가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보고 게다가 월클스타 쏘니를 직접 봤다니, 미처 상상하지도 못하던 일이었다.   

꼬마에게 줬던 슬리브, 토트넘 경기복을 입고 있다





 프로 스포츠에는 각 선수마다 응원가가 있다.

 그때 손흥민에게 토트넘 현지팬들은 '나이스 원, 쏘니(Nice one, Sonny)'라고 노래했고 지금은 독일 리그에서 뛰는 케인을 자기들의 최애로 꼽으며 '그는 우리 중 하나(He's one of our own)'라고 외쳤다.

 토트넘의 캡틴이 된 손흥민의 새 응원가가 나왔는데 '그는 내 머릿속에 있어(He's in my head)'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 노래가 코리안 좀비라 추앙받으며 미국에서 인기가 엄청났던 전 UFC 선수 정찬성의 응원가 '좀비(zombie)'를 개사는 점이다.

 그 새침한 영국들이 응원가를 통해 쏘니를 '우리 가족의 일부(part of our family)'라고 부른다데 일 년 전까지도 홈팬들에게 쏘니는, "멋진 놈이지만 '남'"이었는데 어느새 '가족'이 된 셈이다.

 

 마침 우리 대표팀도 4강에 오르기 직전까지의 경기마다 다 죽어가 결정적인 순간에 좀비처럼 살아나고 있어 새 응원가가 더욱 재미있다.

 

 곧 있을 요르단과의 4강전에서도 짜릿한 승리를 이어가길 바라면서 런던 토트넘 홈경기에 다녀온 추억을  다. 

 

쏘니의 시그니처 포즈 따라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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