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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Jun 04. 2024

경주는 편의점도 기와집

경주에 언제 갔나요?

 남편과 경주 여행을 다녀왔다. 작년 봄 강릉 여행 이후 14개월 만의 부부 나들이였다. 

 우리 여행에 가장 큰 걸림돌은 열다섯 살 노견 님이다. 혼자  수가 없으니 따로 사는 딸들이 교대로 와서 봐줘야 한다. 아이들은 제든 괜찮다지만 바쁜 애들에게 미안해서 우리가 내키는 대로 놀러 다니지는 못한다.  

 

  20여 년 만에 경주에 다시 다. 2001년에 우리 가족은 경주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남편은 불국사 앞마당에서, 젖먹이 작은애를 업은 내 앞에 세 돌짜리 큰애를 세우고 사진을 찍어 주었다.

 불국사에서 20년 기억을 되살려 (아이들은 없지만) 그때와 똑같이 찍어보자고 했다. 나는 '여기쯤이 분명하다'야단법석을 하며 청운교와 백운교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집에 와서 수납장을 뒤져 예전 사진을 찾아보니 위치가 달랐다. 우리 셋은 훨씬 앞쪽인 연화교와 칠보교 앞에 서 있었다. 

 왠지 아깝고 그리운 마음으로 사진을 들여다보니 사람만 나이 든 게 아니라 주변 조경도 달라져 있다.

 

2001년 7월과 2024년 6월의 사진 두 장

 


 불국사와 석굴암은 대한민국 국가유산('문화재'에서 용어 변경) 중에서 최초로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예전에 일제강점기의 백사진으로 계단이 무너지고 지붕과 문이 부서진 불국사를 본 적이 있다. 사진을 보면서도 상상하기가 어려운 처참한 모습이었다.

 인류가 오랜 문화재를 대할 때는 역사에 시달린 상태 그대로 방치하듯 보존하는 외국의 방식도 장점이 있겠지만 목조 건축물이 많은 우리로서는 좀 더 세심히 관리해야 한다. 후손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개보수는 안 되지만 문화재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충실한 고증을 거쳐서 필수적인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 덕에 6세기에 세워진 불국사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사찰의 순기능을 한다. 내가 만난 여름불국사에는 여느 절과 똑같이 절한 소망의 연등이 즐비하고, 각자의 기원을 심은 제철 꽃공양 화분가득했다. 자가 아닌 나에게도 생동감이 전해다.

 그리고 유리벽으로 바라볼 뿐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석굴암에서도 스님들이 매일 불경을 드리고 있었다. 본존불은 굴 속에 계시지만 외롭지 않으시겠다.


 이렇게 '살아서 기능하는 유산'은 멀리서 쳐다보고 돌아오는 유산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여행자의 마음에 남는다.

 

웹에서 찾은 일제강점기 불국사는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지난 주의 불국사는 구경꾼으로 활기차다.





 20년 만에 둘러본 경주는 많이 달라졌다. 나는 중2 때 처음으로 경주에 갔는데 당시 중학생들의 수학여행 장소가 거의 경주였다.

 '중학생 때 사진으로만 보던 석가탑과 다보탑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놀랐었다'고 고백했더니 남편이 '나는 탑이 생각보다 커서 놀랐었다'했다.   

 '동궁과 월지'로 개명한 안압지에는 월요일 저녁이었는데도 벌써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점등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월지를 둘러싼 조명이 일제히 켜지면서 호수와 전각이 멋지게 떠오를 때 모든 사람이 감탄했다.

 

직접 본, 동궁과 월지 야경

 


 이제 보문단지보다 유명해진 황남동에는 서울의 여느 핫플레이스에 뒤지지 않는 식당, 카페가 많았다. 대도시의 무뚝뚝한 직육면체 빌딩이 아니라 고풍스러운 기와집이 모인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이고 유니크하다.

 마치 내가 서라벌 귀족의 브이로그 영상 속에 행인으로 지나가는 느낌이랄까. 어디선가 비단옷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날 것 같다.

대릉원에서 내다보이는 황리단길


 

 경주의 스타벅스도 폴바셋 매장도 높으신 대감이 사는 화려한 기와집 같아서 색다른 볼거리가 된다. 다방과 편의점, 식당이 들어선 귀여운 기와집도 여기저기 오종종하다. 

 옛것을 고수한 도시는 보기에 참 좋지만 첨성대도 기울었던 몇 년 전 지진 때 상대적으로 내구성이 약한 한옥의 피해가 많았다고 한다. 귀중한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지정된 지구들에는 외지인은 알기 어려운 고충이 많은 것이다. 

 경주는 관광객이 꽤 많았지만 부산스럽지 않고 2박 3일간 만난 지역 사람들과 상인들이 친절해서 인상적이었다. 

 

 내가 중학생일 때보다, 내가 아기엄마일 때보다 지금 더 젋고 발랄하고 생기 있어진 경주가 좋았다. 

 팔랑개비 같게도 나는 여수에 가면 여수에 살고 싶고 경주에 가면 경주에 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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