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명선 May 21. 2024

굿 플레이스 입성 프로젝트

생애가치 포인트 중간정산

 한 미드 시리즈의 세계관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이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 게 아니라 '굿 플레이스'와 '배드 플레이스'에 간다. 배치 방법은 한 가지. 그 사람이 평생 동안 했던 모든 일에 포인트를 가감한다. 채점 기준은 '행위의 동기와 결과가 얼마나 이타적이며 긍정적인가'이다. 정체 중인 고속도로에서 나 혼자 갓길로 빠르게 주행하거나, 뒷사람을 위해 출입문을 잡아주는 일 등도 모두 마이너스, 플러스로 계산된다.

 아무리 기부 많이 하고 헌적인 인생을 살았다 해도 내적 동기 이기적이면 마이너스 점수를 받는다.

 한 사람이 생전에 한 모든 행위는 혼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파급 효과를 지녀서 전 우주의 선과 악에 영향을 미치므로 나의 모든 행동은 공공선 아니면 공공악에 기여한다는 논리다.    

 그렇게 죽는 순간에 총점을 산출해서 높은 점수를 획득한 사람들만이 사후에 굿 플레이스에 간다는 것이다.  

 완벽히 아름다운 날씨와 조경의 굿 플레이스에는 나의 취향에 딱 맞게 준비된 집과 친절하고 상식적인 이웃들이 있다. 게다가 (나도 미처 몰랐던) 내 이상형으로 선정된 소울메이트도 있다.


 각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선하고 바른 사람들만 모여서 쾌적하게 사는 곳'이 있다면 거기가 천국이 아니고 어디인가.

 주변에 사람들이 있거나 말거나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고 침을 뱉는 사람도 없고, 단지 나이가 많거나 직책이 높다고 약자를 무시하고 으르는 사람도 없고, 돈 많고 인맥 좋다고 갑질하는 사람도 없고, 속이고 속는 사람, 외롭거나 버려지는 사람이 없는 곳을 상상해 본다.

 그런 곳이 있다면 사후가 아니라 지금 당장 살고 싶다. 그러나 인간이 모여 사는 그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다.     

  


 

 우리 집 안을 빼고는 사회 구성원의 공용 공간이다. 사실은 집 안에서조차 내 이웃이나 다른 가족 구성원을 배려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으로 태어나 사는 이상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내 멋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드물다.

   

 얼마 전에는 걸어가며 과자 껍데기를 까서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초등학생을 보고 무척 놀랐다. 어떻게 저 어린아이가 벌써부터 쓰레기를 태연하게 버리게 된 걸까? 아이가 자라면서 공중도덕을 배워서 더 이상 쓰레기를 버리지 않게 될 가능성과 공익을 해치는 더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될 가능성은 과연 반반일까?

 굿 플레이스식 정산법이라면 그 아이의 행동을 동네 어른으로서 그저 바라보고 한탄만 한 나도 그 순간 마이너스 점수를 받았을 것이다.

 

 생애포인트 계산 결과 천국과 지옥이 정해진다는 세계관은 내게 위로를 준다.

 식당에서 큰 목소리로 식전 기도를 길고 길게 함으로써 최소 스무 명의 다른 테이블 사람들을 언짢게 하는 사람이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고 해서 천국에 간다면 화가 난다. 

 현실에서는 실시간으로 보상을 받고 페널티를 주지 못 하지만 나중에라도 굿 플레이스와 배드 플레이스에 간다면 참을 만하다.

 사필귀정, 자업자득 같은 말은 그래서 듣기에 좋다.

    



 

 오늘 기준 자체 중간정산으로 나는 높은 점수 못 돼도 마이너스는 아닐 것 같지만 사실 자신은 없다.

 드라마에 나오는 말대로 '완벽하지 않지만 끔찍하지도 않은 사람들의 미디엄 플레이스'가 있다면 아마도 지구 사람들 중에는 사후 미디엄 플레이스 입주 예정자의 비율이 가장 높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사후세계는  미디엄 옵션 없이 굿과 배드만 운영하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이여, 죽어서 오로지 둘 중 하나에 가야 하니 살아있는 동안 플러스 점수를 많이 받아 놓아라.  

 비록 아무도 몰라주더라도 우리가 보고 있으니 공익을 위해 소박하지만 착한 일을 하는 시민이 되어라.


 내 인생을 즐거운 포인트 적립 게임이라 생각하고, 도처에 널린 피하고 싶은 인간들을 게임 속 빌런이라고 넘기며 살아야겠다.  

 그리고 굿플레이스에서는 아시안플러쉬 증후군이나 뱃살 걱정 없이 맛있는 맥주와 안주를 맘껏 즐길 수 있겠지?   


맥주 마시며 바라보기 좋은 지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인 자녀를 둔) 어버이의 입장에서 보는 어버이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