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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May 08. 2024

(성인 자녀를 둔) 어버이의 입장에서 보는 어버이날

극사실주의적 오늘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우리 딸들 또래의 여성이 통화 중이었다.


 - 카네이션을 사가면 좋아할 것 같기도 한데 고민 중이야. 아니, 어쩌면 엄마가 요즘 꽃 비싼데 왜 사 왔냐고 할 수도 있어.


 아침에 본 짧은 웹툰이 생각났다.

 직장인인 자매가 어버이날이라고 호텔 뷔페를 예약했는데 일인당 19만 원이라는 정보에 엄마는 너무 비싸다고 야단이다. 딸들은 할인쿠폰을 써서 싸게 했다고 거짓말을 둘러대고 엄마는 뷔페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비싸다, 비싸다를 계속한다. 엄마는 할인은커녕 맥주를 먹고 싶어 하는 아빠에게 공짜니까 맘껏 드시라고 한 것까지 다 유료였으며 딸이 80여 만원을 결제하는 걸 본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엄마는 너무 비싸다고 불평하고 참고 있던 큰딸은 결국 화를 낸다.


 - 우리가 한번 사주고 싶어 그런 건데 엄마는 그냥 맛있게 먹으면 안 돼?


 엄마의 마음은 뭘까? 나도 엄만데 잘 모르겠다. 자식이 돈을 쓰는 건 미안한데 그냥 지나가면 서운하다.

 연중 가장 푸르르다고 자부하는 5월 초순이 무색하게 나흘동안 적잖은 비가 지루하게 내렸고 그야말로 하늘과 땅을 씻은 듯이 쾌청해진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나는 약속이 없었는데 이렇게 좋은 날씨에 집에 있기엔 억울해서 '나랑 놀 사람'을 구해 나가는 중이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며 평소에도 자주 만나는 S 언니와 E는 오늘 나랑 놀 사람이었다.


 



 꽃가게가 아닌 카페나 슈퍼마켓 앞에도 카네이션들이 많이 나와있었다. 우리는 입시학원들이 밀집해 있는 학원가에서 만났는데 오늘 저녁에 학원을 다녀가는 학생들이 엄마아빠에게 줄 카네이션을 편리하게 살 수 있겠구나 싶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카네이션은 사방에 있다는 뜻)

 

 E는 아들들이 아직까지 아무도 문자나 톡을 하지 않았다며 서운해했다.

 나는 E에게 '오늘 저녁에 꽃 한 송이 사 들고 오려나 부지'라고 위로했고 진짜 그럴 거라고 믿었다. 그 아들들은 그 집 아빠처럼 엄마에게 다정하다는 것을 지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도 E는, 아직 대학생들인 아들들에게 뭘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메시지만 보냈어도 좋았겠다고 했다.

 사방에 카네이션 천지라 잊어버리기도 힘든 오늘, 그냥 '엄마아빠 감사합니다' 같은 단순한 말을 듣고 싶을 뿐인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평소에 잘하는 게 중요하지 무슨 날이라고 쑥스럽게 굳이 그런 말을 해야 하나 싶을 자녀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아들들이 이렇게 그냥 넘어가면 오늘 저녁도 안 주고 집을 나가서 남편이랑 둘이 맛있는 거 사 먹을 거라길래 다 같이 웃었다.

 그래, 어버이 당사자 둘이 자축하는 것도 재미있지.


 문득 우리가 어쩌면 갱년기다 보니 사소한 것에도 서운한 마음이 깊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의 큰아들과 동창인 작은딸에게 톡을 해서 언질을 해주라고 해야 되나 고민하는데 E의 폰이 울렸다.

 대학교 기숙사에 살고 있는 E의 작은아들이었다.  

 그럼 그렇지! 그 녀석은 엄마 친구들이 자기의 전화 한 통에 얼마나 화색이 돌았는지 모르겠지.


 S 언니의 아들들도 다 따로 산다. 작은아들은 장교 훈련 중이라 못 오고 따로 사는 직장인 큰아들이 밥을 사주러 온단다. 아들이 사 줄 때 비싼 거 먹어야 된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아들 돈이 아까워서 그러지 못한다. 

 어버이날이니 자식에게 챙김을 받고 싶지만 그렇다고 부담이 되는 건 싫은 게 솔직한 엄마 마음인가 보다.  

빵집에서도 파는 카네이션



 

 우리는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봐 왔다. 초등학교에 앞에서 아이들이 끝나기를 기다리면 색종이 카네이션과 편지를 들고 뛰어오던 어버이날, 야간자율 학습을 마치고 셔틀버스에서 내려 한 송이 카네이션 생화를 꺼내 놓던 어버이날도 서로 기억하는 것이다.

 이제는 다들 성인이 되었고 직장인이 되기도 했다. 결혼을 한 자녀는 없지만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저 집 며느리 우리 집 사위도 논하고 (아직은 상상 속 유니콘 같이 느껴지는) 내 자식을 반 닮은 손주 자랑도 하며 앞으로의 무수한 어버이날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사실 엄마들은 별 거 아닌 것을 자랑하고 축하하고 부러워한다. 자녀가 잘 된 것을 핑계로 내가 친구들에게 한턱 내고, 그 이쁜 애들에게 가끔 서운하다가 또 나의 애들 덕에 뿌듯한 마음의 흐름이 뫼비우스의 띠 같다.

 어떤 심리학자는 '늙을 수록 자식 자랑은 하지 말라'고 하던데 아니, 남들이 돈 자랑, 남편 자랑 실컷 할 때 자랑할 게 자식 밖에 없는 사람은 어쩌라고! 싶다.

 

 다만, 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균형과 멘탈을 잘 잡으며 살아야겠다.

 (아무데서나, 우리 애가 어디어디 다니는데 같은 말을 하는 주책바가지만 안 되면 된다)

 

 자, 아직 부모님께 톡을 안 드린 자녀는 화려하고 역동적인 이모티콘과 함께 감사의 톡을 드려라.

 그리고 집에 가며 꽃을 살까 말까 고민 중인 자녀는 '비싼 데 이런 걸 왜 샀어'란 말을 듣더라도 당장 카네이션을 사라.


 그대의 엄마는 수줍지만 뿌듯하게 카카오톡 프로필에 카네이션을 올릴 것이다.

아줌마 세계의 오늘 프로필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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