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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May 07. 2024

딸들이 다녀간 다음날

방 두 개는 늘 예약 중

 4학년 마지막 중간고사를 마친 작은딸이 카네이션을 사 들고 집에 들렀다.

 올해가 어버이날을 카네이션으로 때울 수 있는 마지막 해잖아, 하는 말에 '흠, 평소에 남친이랑 쓰고 다니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어버이날이니까 빨간 카네이션을 받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장에 다니는 큰딸도 연휴 마지막날 다녀갔다. 내가 가족 톡방에 한번 올렸던 것을 기억하고 선물로 사 왔다. 아빠가 한가해지면 5월 중에 여행을 갈 거라 했더니 그 지역 5성급 호텔의 전망 좋은 방을 골라 2박을 예약해 주었다.    

  

 야호, 그렇지! 아직 대학생인 작은딸도 언니처럼 바로바로 취업하기를 열심히 기원해야겠구나.    


어버이날은 카네이션이지






 5월은 가족에 관한 기념일이 많다.

 거국적 공휴일인 어린이날과 휴일은 아니지만 법정기념일인 어버이날과 부부의날이 있다. 우리는 두 딸이 성인이라 어린이날은 마음 편한 휴일이다. '자녀의날'이 아니라 '어린이날'이라서 공휴일 하나는 법적 명분에 기반해 의무가 끝났다.

 평소에도 여건이 되는 한 챙겨드리고 싶은 부모님들도 어버이날이 있으니 좀 더 마음을 썼다. 네 분이 다 아직까지 아픈 데가 없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생각해 보면 부모는 자녀가 초등학생일 때까지 어린이날을 챙기지만 자녀는 유치원에서 색종이 카네이션을 꼼지락거리면서부터 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어버이날을 의식해야 하니, 양대 기념일 더비만 보면 부모의 승리인 셈이다.

 

 세상의 아이들이 소풍날처럼 기다렸을 어린이날 아침부터 많은 비가 오고 쌀쌀했다. 애들 있는 집은 오늘을 어떻게 보내려나 남의 걱정을 하며 가끔 가는 불고기집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연휴 중간에다 어린이날에다 비까지 와서 주차장부터 법석이었다. 조부모와 부모, 손주들이 함께 있는 테이블이 많이 눈에 띄었다. 예산을 집행하는 부모 입장에서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외식을 한 번에 처리하는 게 좋겠다. 그리고 오늘이 어린이날이니만큼 할머니는 (아들딸에게서 받은 봉투에서 덜어) 손주에게 용돈을 줄 가능성이 크다. 돈의 아름다운 순환이다.  


 남편과 둘이 밥을 먹으면서 어느덧 우리는 저 테이블의 젊은 부모보다 노부모에 가까워지는 건가 생각했다. 딸들의 나이에서 얼마를 빼면 저 아이들인가, 저 부모들은 딸들의 나이에 얼마를 더하면 되나 계산해 보았다.


 



 사흘의 연휴 중 하루는 우리 부부만 지냈고, 하루는 작은딸까지 셋이서 밥을 먹고, 하루는 큰딸과 셋이 밥을 먹었다. 네 명의 가족이 다 모이는 것이 제일 좋지만 상황이 되는 대로 하나씩 찾아오는 것도 좋다. 둘이 다 바쁘면 못 보고 넘어가는 주말에도 익숙하다.

 눈도 어둡고 코도 둔감해진 노견은 큰딸이 들어와서 이름을 불러도 모르고 자다가 문득 깨서는 거실에 있는 큰애를 못 보고 큰딸 방으로 터덜터덜 간다. 작은딸이 와서 소파에 앉아 있으면 코를 들고 냄새를 맡다가 작은애 방에 가 보기도 한다.

 

 나는 아직 혼자 살아본 적이 없어서 혼자 사는 삶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혼자 살든 둘이 함께 살든 굳이 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편안하게 혼자 하고 싶은 일 하며 살다가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이 등장하면 결혼하는 거고, 그런 인연을 끝내 못 만나면 혼자 사는 거지.

 자녀를 가질 거면 젊을 때 낳아 얼른 키우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늦게 낳아 키우는 경험을 내가 못 해 봤으니 그것도 단정할 수는 없다.

 한 달 남짓한 여름방학 계획도 내 맘대로 안 되는데 인생의 중대사라면....    

 

 현재 나의 두 딸 중 일에 열심인 하나는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고, 연애 중인 하나는 결혼은 하더라도 자녀를 갖지 않을 거라고 한다. 작년 이맘때까지도 살짝 염려스러웠다가 어느새 그것도 좋다 싶었는데 이제는 대놓고 기쁘다.

 내가 노년에 이런 복이 있구나 싶기도 하다. 은근히 불편할 '사돈'이나 내리사랑의 결정체인 '손주' 같은 경쟁 상대 없이 딸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할머니가 되는 일만 남은 것 같아 행복하다.


 그렇지만 비혼을 표방하던 딸이 갑자기 누구를 데리고 오거나, 비출산주의라던 딸이 저 닮은 딸을 셋 낳는다 해도 당황하거나 섭섭해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원래 인생은 맘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저, 비어있는 방들은 항상 너희들 이름으로 예약 중이니 언제든 오고 싶을 때 와서 있고 싶은 만큼 있다 가면 된다,고 속으로 말하며 딸들을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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