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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Oct 17. 2024

슬픔에서 천천히 빠져나가기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나의 개가 나의 곁을 떠났다.

라고 이제는 쓸 수 있다.


 외출하고 오면 중문 앞에서 웅크리고 자면서 나를 기다렸는데 그 자리가 텅 비었다. 까미는 아프기 시작하고 몇 주 동안은 나의 짧은 외출에도 늘 현관 중문 앞에서 기다리다 짧은 꼬리를 열심히 흔들어 주었다.

 까미는 두 달 전 아침에 갑자기 고기 인형을 입에 물고 나에게 왔었다. 큰누나가 사다 준 고기 인형은 병원에도 가져갔던 애착인형이다.

 늙어서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문득 어릴 때 생각이 났던 걸까. 고기 인형을 물고 놀자고 한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까미는 딸들이 초등 3학년, 5학년일 때 우리에게 와서 두 누나가 다 직장인이 될 때까지의 오랜 기간을 함께 살았다. 모두에게 무덤덤하게 잊을  수 있는 세월이 아니다.

 나는 까미와 함께 하면서 사람의 일생을 보았다. 공원 바닥의 배수구 철망이 무서워 건너지 못하고 낑낑대던 강아지에서 왕성하게 뛰고 먹고 컹컹 짖던 청년 개로 자랐다가 생의 마지막 한 달은 쇠약한 생명이 사라지는 모습을 빠른 속도로 쏟아냈다. 

 심장병 진단을 받고 가까운 미래에 이별의 순간이 온다는 것은 알지만 두 번째 입원 후 하루 만에 떠나버렸다.


 그래도 온 가족의 배웅을 받고 떠나 줘서 고맙다. 까미는 힘든 숨을 고르면서도 회사에 있던 큰누나, 작은누나까지 집으로 달려온 후에 눈을 감았다. 

 마지막 순간이 너무 고요했어서 고맙다. 나는 차마 볼 수 없어서 멀리 떨어져 울고만 있었는데 곁을 지키던 가족들의 마음이 편하도록 소리도 없이 갔다.

 오래 아프면 저도 힘들고 가족도 힘든데 세상에 그런 효자가 없다. 어른들이 바라는 이별이 딱 그렇다고들 하던가. 자식들 고생 안 시키고 조금만 앓다가 보고 싶은 얼굴을 다 보고 깔끔하게 떠나는 것이 가장 행복한 마지막이라고.  


 까미가 떠난 후로도 며칠간 나는 잠이 막 들 무렵이나 새벽에 설핏 잠을 깰 때 개가 내는 소리를 들었다. 작고 검은 발톱으로 톡톡톡 방바닥을 디디는 발소리, 루틴처럼 온 집안 새벽 순찰을 마치고 우리 침대 아래에 깔아준 이불에 돌아누우며 내는 숨소리 같은 게 어렴풋하지만 분명히 들렸다.

 늘 듣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어, 까미는 이제 없는데, 하며 정신을 차렸다.

 남편도 그렇다고 했다.

 

- 새벽에는 까미가 내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몽골 사람들은 개가 죽으면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믿기 때문에 슬퍼하지 않는다는 다큐를 봤다. 죽은 개의 꼬리를 잘라 머리맡에 두고 다음 생에 꼬리 없는 사람으로 태어나길 기원한다.

 환생을 믿는 마음은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된다. 나는 윤회와 환생을 믿고 싶었다. 

 

 가을 나들이로 아산에 하루 다녀왔다. 혼자 공세리 성당과 고찰 봉곡사에 차례로 들렀다.

 공세리 성당에서는 나의 편안한 마음을 위해 향초를 켰고 봉곡사에서는 축생을 끝낸 우리 개의 회를 빌었다. 봉곡사의 아담한 대웅전에서는 석가모니불 앞에 자유롭게 화로에 향을 밝힐 수 있었는데 그 기회가 참 감사하고 좋았다. 

 아무도 없는 대웅전에서 향을 피우고 기원했다.


 - 부처님, 우리 까미를 꼭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 금수저도 필요 없어요. 화목한 가정에 태어나 사랑받고 지원받는 아이로 살면 좋겠어요. 맘대로 냉장고를 열어 좋아하는 것을 꺼내 먹고 이 세상 어디든 마음대로 돌아다니다 따뜻한 집에 돌아올 수 있는 인생을 살게 해 주세요.


 대웅전에 한참 앉아있다가 나오는데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보고 주저 없이 다가왔다. 고양이들이 내게 다가온 일이 한 번도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그러더니 내 옆에 와서 등을 보이고 앉는 것이었다. 오늘 잠깐 부처님을 찾은 주제에 마음속으로 뻔뻔하게 항의했다.

 

 - 제가 여태껏 우리 개를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빌었는데 설마 고양이가 된 건 아니죠?


너 까미니? 아니면 저리 가 주라.

 

 간밤에 꿈을 꾸었다. 봉곡사에 다녀온 지 이틀만이다. 꿈에 우리 집 거실에 남편과 나 그리고 큰딸이 있었다. 내가 남편에게 '까미는 어딨냐'고 물었더니 '주사를 맞고 있다'고 대답했다. 

 조금 있다가 목줄도 하네스도 하지 않고 옷도 입지 않은 까미가 소파 위로 올라와서는 내 쪽을 향해 얼굴을 두고 편안하게 누웠다. 꿈속에서 나는, '쟤가 주사를 맞더니 아프지 않고 편히 자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다가 스르륵 일어서더니 가뿐히 뛰어내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큰딸은 내 옆에 등장만 했지 내내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개가 사라진 쪽을 눈으로 좇다가 잠이 깼다. 

 

 작은딸이 만들어다 준 미니어처를 가만히 바라본다. 생전의 모습과 닮은 듯 다른 듯 귀엽고 저런 게 있구나 싶어 웃기고 또 너무나 보고 싶다. 

 그렇지만 네가 어젯밤에 '이제 나는 잘 간다'고 인사하러 왔는데 그만 보내줘야겠지?

 개의 생을 털어내고 멋진 남자로 태어나 살아라. 

 나도 네가 없는 슬픔에서 천천히 잘 빠져나갈게.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

기억 공간과 미니어처 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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