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호주 남의 집에 얹혀가는 새해
저스틴 비버가 우리집에 놀러오는 꿈에서 깨어나 시계를 보니 호주 시간 9시, 싱가폴 시간 6시. 2013년의 마지막 새벽이었다.
가방 하나를 들고 내가 그의 집에 쳐들어와서 매트리스를 깐 뒤로, 그는 며칠간이나 잠을 설치고 있었다. 24시간 병원의 호출에 응해야 하는 당직의사라는 것도, 한여름인 지금 중앙 에어컨이 망가졌다는 사실도, 문을 열고 자는사이에 들어온 모기가 온 몸을 공격한다는 것도...
그 어떤 것도, 이 여자가 오피스텔 바닥 매트리스 위에서 제 집인양 잠을 자고 있다는, 그것도 새벽 세네시 병원에서 오는 호출에도 전혀 깨지않고 꿀잠을 잔다는 사실, 그리고 이 여자(나) 때문에 한 밤에 까치발을 하고 집을 나서야 하고, 샤워후에 맨몸으로 밖으로 못나오고, 슈퍼마켓에서 여분의 시리얼과 아이스크림을 사야한다는 사실보다는 불면증에 덜 영향을 미치는 듯 했다.
내 불쌍한 호주친구는 내가 눈 뜬 것을 보자, 주방쪽으로 가서 시리얼을 말아서 내주었다. 시리얼을 퍼먹으면서 어제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있는 내게 "베란다 좀 봐" 라고 한다.
거기에는 커다란 앵무새가 앉아있었다.
-쟤가... 여기 자주오니?
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한 번에 네 마리씩 와서 앉아 있어.
라고 말했다.
-야, 넌 맨날 싱가폴 좋다고 그러는데, 넌 그냥 호주에서 살아! 호주가 훨씬 이쁘구만! 새도 날아오고!
라는 나의 핀잔에, 그는
-그럴지도 모르지.
라며 내가 난리를 쳐놓은 이불을 차곡차곡 개었다.
아니나 다를까, 점심후에 그는 곯아 떨어졌다.
긴 아일랜드 주방 탁자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다리를 건들거리며 방미 언니의 블로그글을 읽는다.
-사람들은 때가 되면 오는 일 년 중 행사에 스케쥴을 맞추고 쇼핑을 하고 휴가를 가고 약속하고 놀고 먹고 취하고 돈 쓰며 즐겁게 한해를 보내는 것으로 일년을 마무리 하나? 난 여태껏 정 반대로 살아와서 어떤지를 잘 모른다. ... 난 지금 남이 휴가 갈 땐 내 일을 하며 쉬고, 남이 일할 땐 조용히 많은 사람이 없는 외국을 여행한다. 여행도 아주 장기로 가기 때문에 난 여유롭게 그 나라를 돌아보고 온다. 난 일년 중 해외 체류가 반년이 넘는다. 외국계 회사를 가지고 있으니 달라 걱정은 없다.
그래 맞아. 이렇게 대세에 역행하면서 살아야 남이 하는 걱정을 안하면서, 혹은 남이 안하는 걱정을 하면서 사는 것일게다.
- 너 정말 나 하고 같이 불꽃놀이 보러 안 갈꺼야?
응.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직도 두 다리를 건들건들 아일랜드 주방의 높은 의자에서 그네를 타며.
그는 옷을 다 차려입더니 다시 물었다.
-시드니의 환상적인 불꽃놀이 안 보겠다는 그 결심 아직도 확고 한 거야?
나는 비로소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얼굴에는 'Leave me alone'이라고 써져 있었을 테다.
나, 사람들한테 밀리고 끼고, 화장실 줄 긴 거 제일 싫어해. 그러니까, 내 걱정일랑 말고 재미있게 놀아.
그가 못미더운 표정으로 집 열쇠를 주고 나간 뒤, 나는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혼자만의 시간, 그것이 내가 원했던 것이니까.
기찻길엔 기차마저 다니지 않았고, 여름 날씨라기엔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었다.
이건 내가 생각하던 호주는 쫌 아니다..
혼자서 느긋하게 윈도우 쇼핑을 좀 하겠다며 들어간 쇼핑몰, 이것은 오후 6시의 풍경이다.
나는 아직 호주를 잘 모르는 것이다. 개미새끼 한마리가 없다. 아까 분명히 여기서 점심 먹었는데, 사람 오만명 있었는데.
언제 문을 이렇게 깨끗하게 닫았대?!
싱가폴? 백화점 10시에 문닫고 세일기간에는 12시에 닫는다.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와서 티비를 켰다.
스카이프로 통화를 두 번 했더니 어느새 티비에서는 카운트 다운을 하고 있었다.
싱가폴에 있는 그는,
-너의 뉴이어네, 잘 감상해, 싱가폴 뉴이어에 다시 전화 할께. 라며 통화를 종료했고
나는 황급히 문자를 보내
-야!! 싱가폴 뉴이어면 여기 새벽 3시에 전화하지마 절대!!
라는 달콤한 메세지를 남겼다.
Reg Mombassa-이번 시드니의 뉴이어의 크리에이티브 엠버서더인 그는 정말 천재.
이렇게 화려한 불꽃놀이는 내 생에 처음 보는 것 같다.
티비로만 봐도 이렇게 아름답고 화려한데, 실제로 보면 어떨까? 하면서 살짝 현장으로 나가지 않은것에 대해 후회하는 사이에.
그 장관을 찍고 있는 폰과 태블랫의 물결을 보며. 아. 안가길 잘했구나 다시 생각.
그렇게 한여름에 새해가 왔다.
Hornsby westfield
Townhall, Sydney
China town ,Sydney
Darling Harbour, Syd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