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려있는 빨래에 중독되는, 홍콩
-언니, 홍콩이 그렇게 좋아요?
미국에서 살다가 싱가폴로 이사 온지 2년쯤 된 동생은 홍콩 홍콩 노래를 부르는 내게 100점짜리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언제든, 홍콩이 왜 그렇게 좋은지 말해줄 수 있다.
반짝거리는 빌딩, 하늘의 거울이 되는 호텔,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서 까치발도 안들고 나 홍콩인데, 뭐. 라는 듯 키작은 낡은 건물 옥탑에 차려진 작은정원.
호텔을 빠져나와 걷기 시작한 셩완의 아파트에는 집집마다 빨래가 걸려져 있고
더위에 웃옷을 벗어제낀 아저씨들 너덧을 만나며 골목길 뒤로 접어들면, 이렇게 아주머니가 말린 도마뱀 (?)
을 꼬챙이에 가지런히 끼워 상자에 담는것을 보게 되지. 음.. 꼭 상자 안으로 골인시키지는 않으시더라.
주택이랑, 상점이랑, 나무와, 전봇대, 사람들이 아무런 일관성 없이 섞여있는 거리를 걷고 걸으면
빨랫감 대신, 맥주캔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란콰이퐁에 온거다.
홍콩의 도시계획은 누가 했는지 몰라도, 일관성 없이 빌딩을 짓는게 계획의 일부였냐고 묻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그것이 홍콩을 너무나 매력적으로 만드니까. (그렇다고 철저하게 간척되고 계획된 아름다운 섬 싱가폴의 매력을 저평가 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홍콩이 매력적이라는거다) 마치, 어떤 사람에게는 가지런한 치아보다 작은 악마같은 덧니가 너무 잘어울리는 것처럼.
어떤 빌딩에는 약속이나 한것처럼, 빨래가 하나도 널려있지 않다. 외국인이 많이 사는 곳인가보다.
싱가폴 생활 4년차, 100번을 걸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마리나 베이처럼, 홍콩 침사추이의 하버도 영원히 사랑스러울까?
마리나베이의 싱가폴 강가를 채우는 사람들의 반은 싱가폴에 머무는 익숙한 외국인들이다. 이곳 홍콩의 하버를 뒤덮은 사람들은 홍콩에 처음와봤을, 그리고 다시는 안 올지도 모를, 그래서 오천장의 사진을 찍어야만하는, 그래서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말을 걸어야만 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싱가폴 리버에서는 혼자여도 좋았지만, 홍콩 하버에서는 혼자이고 싶지 않아진다.
정말 내가 홍콩에 돌아 온 건가. 새벽 다섯시에 눈을 떠 바라본 창 밖은 산과, 바다와, 빌딩과,불빛과, 도로.
홍콩 마카로니를, 죽을, 딤섬을, 길거리 음식을 먹고 싶어서 한끼 한끼가 아쉬웠음에도 꼭 한끼를 희생하여 들러야만했던 cafegray는 끝간데 없는 로맨스와, 럭셔리와, 내가 본 화장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뷰를 가진, 항상 아주머니가 손씻고 나오는 나에게 수건을 건네주기위해 기다리고 계시는, 메뉴판의 가격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 그리고 아무도 사진을 안찍는 분위기여서 나만 찍는, 그런 곳.
그리고 다시 다음날이 되면, 빨래가 주렁주렁 달린 아파트를 지나 그 아래에 있는 프랑스 레스토랑 앞에서 샹송을 듣다가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베트남 음식점 나트랑에서 포멜로 샐러드와 게살 쌀국수를 먹고, 300원을 내고 트램에 올라 종점까지 가며 마천루와, 시장과,골목길과, 아파트와, 오래된 트램길을 지나서 낚시를 하고 앉아있는 아저씨를 보러 내렸다가, 2천원을 주고 속옷 한장을 사고, 필리핀 헬퍼들이 반상회를 하는 필리핀 수퍼마켓을 또 기웃거리다가 비를 피해 처마 밑으로 내달려 백화점으로 들어가서 사지도 않을 옷을 뒤적이다가, 애플스토어에가 애플 지니어스 (고객 서비스팀)을 만나러왔다고 하고 커다란 애플 옆에서 사진을 찍고는 뱅커들이 드레스 셔츠깃을 풀어헤치고 맥주를 마시는 헐리우드로드를, 몸을 동그랗게 말아 요리저리 빠져나가, 기차에 몸을 싣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의 집에 놀러를 간다. 친구 남편이 해준 라볶이와 갈비(옆에 있는 당면)와 팥죽을 먹고, 친구 아가 배를 살살 긁어주다가 사는 이야기를 하며 친구의 눈을 바라보면 이미 시계가 내일이 되어있는 홍콩.
홍콩에서 내가 가장 사랑 한 것은 낡은 건물 한켠에 있는 세련된 레스토랑과 바들. 그리고 고고한 와인바 위층에 너무나 당당하게 걸려있는 무심한 빨래들. 다시 그, 빨래들.
브런치레스토랑에서 5계단 내려오면 시장 국수집
집에서 3분 거리의 일본 가정식 요리집
일주일치 빨래를 3천원에 처리해주고 배달까지 해주던 나의 세탁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