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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벌 치어리더 Oct 19. 2015

상해, 생의 전시

롱탕에서, 구경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5시 반이 되면 해가 떨어져버리는 상해의 가을, 

더듬더듬 지도를 들고 길을 찾는 친구의 옷깃을 심봉사마냥 붙잡고 따라가 만난 아트 프로젝트 fire flies gathering. 

상해의 특이한 골목 생활양식인 롱탕 중 하나에 왔다. 

오래된 롱탕을 재개발한다며 안에 살던 사람들을 다 쓸어내버려 밤이 되면 무섭기까지 하다는 골목에 작은 랜턴들을 놓아 길을 만들었다. 


한 골목 한 골목을 지날 때 마다, 롱탕의 이야기를 읽어주는 치파오를 입은 여인들,

롱탕의 낯을 보여주는 영상이 흘러가는 벽, 춤을 추는 프랑스 무용가들, 재즈를 연주하는 음악가들 

그 사이에 약삭빠르게 맥주박스를 날라와 맥주를 파는 사람들과, 이제 몇 가구 남지 않은, 정말 이 구역의 주민들.


우리가 그들을 구경하는 사이, 그들도 우리를 구경한다. 


  



재개발 구역에 설치한 두 시간짜리 게릴라 아트, 그 안의 사람들도 전시거리가 되고 말았다는 것에, 그들의 집안에 발을 들여 놓으며 한 집에 여섯가구가 살았는데 60년을 산 이곳에서 내몰릴거라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내가 관람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두 시간동안 이곳에서 열리는 축제의 공통 언어는 프랑스어 인듯 했다.  공연하는 예술가들도, 골목들을 가득메우며 오가는 사람에게서도 프랑스어가 들려왔다.

프랑스 식 식민 건축지의 아름다운 옛 집들을 계획한 것도, 고스트타운처럼 비어버린 롱탕의 설치 예술을 만들고 즐기는 사람들도, 이 공간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그들인가보았다. 문득, 여기 사는 사람들은 갑자기 유럽으로 변해버린 이밤의 롱탕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라오스에 갔을때였다. 마사지를 받으러갔다가 만난 스무살 라오소녀는 영어를 매우 잘했다. 

산골에서 일을 하러 매일 같이 읍내로 나온다는 그녀는 한시간에 오천원인 마사지를 하며 (물론 그녀의 몫은 천원도 안될 것이다) 나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루앙프라방에 사는 그녀는 생에 처음으로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러 수도인 비엔티엔에 간다며 들떠 있었다. 비엔티엔에서 전날 날아온 내가 그곳이 어떠했다고 이야기하자 어깨를 매만지며 내게 노래를 불러주던 그녀가 조심스레 나에게 물었다. 

" 나 하나 궁금한게 있는데요...

왜 다른 나라 사람들은 라오스에 놀러올 수 있는데, 라오스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놀러가지 못하는거죠?"


새로운 것, 아름다운것, 창작, 자연, 예술, 소수민족 사는 곳을 찾아 다니지만, 

내가 구경꾼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한다면, 적어도, 그들도 나를 구경했으면 좋겠다. 나도 그들에게 관람꺼리였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다면, 너무 잔인한 생의 전시 아닌가. 


나가는 길, 랜턴 없는 어두운 길모퉁이에서 기어이 철퍼덕 넘어지고 말았다.  

나와 함께 있던 두 친구는 일순 그 길에 대자로 엎어진 나를 보고 놀라 순간 정지했고, 역시 지나가던 프랑스 남자가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는 풍경. 

창피한 마음대신 느릿느릿 나를 주워담아 앉아 청바지의 양 무릎이 보기 좋게 찢어진것을 보고 제법 스타일리쉬하게 찢어졌는걸 이라고 생각했다. 

겨우 얼마전 자전거 사고의 딱지가 다 떨어졌는데, 정확히 같은자리, 그리고 다른 쪽 무릎도 깨졌다. 


돌아가는 택시안에서 친구녀석들은 

그런데 말이야, 아까 넘어지려고 할 때 , 두 번 덤블링을 한 다음에 양 손으로 땅을 짚고 살짝 튕겨올라와서 착지한 다음에 

뒤를 안돌아보고 

'내 핸드백 좀 줘" 

이렇게 했으면 더 멋있었을 텐데 말이야. 

라는 연출을 하고 앉아있네 이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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