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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벌 치어리더 Jan 07. 2016

반타얀- 그들이 사는 세상

필리핀 세부- 은퇴한 유럽인들이 사는 섬

로컬들이 타는 에어컨이 없는 버스는 분명 세 시에 출발 한다고 해놓고 두 시 삼십분에 차를 빼고 있었다. 잠시만요, 내 친구가 아직 안왔다고요, 세 시 아직 안되었잖아요? 라는 내 말은 분명히 영어 이건만, 버스안에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루시없이 갈 순 없지라고 생각하며 짐을 들고 뛰어내리려는 찰나, 그녀가 뛰어들어왔다. 이미 공항에서 버스터미널까지 오면서 하나를 물어보면 삼십가지의 다른 대답을 해주는 필리핀 사람들을 알아봤다는듯 그녀는 눈하나 깜박하지 않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 이럴줄 알았어! 제시간에 갈리가 없어라며 그녀는 화장지를 사러 터미널 일주를 한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여행은 시작되었다. 

에어콘 없는 버스 탔더니 외국인이 한 명도 없

일단 셀카를 찍자며 셀카봉을 꺼내들며 루씨는 잔뜩 신이났다. 역시 여행은 로컬과 함께 해야 제맛인거야라며. 사실 반타얀까지 가는 방법을 검색해봤을때 이 에어콘 없는 버스를 추천한 블로그는 거의 없었다. 더워죽는다는 것이었다. 무조건 에어컨 버스시간을 알아봐서 타고 가라고 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루시는 아랑곳없이 말했다. 에어컨이 없다는 건, 창문을 열고 갈 수 있다는 거잖아.라고. 

이미 마닐라에서 비행기는 한시간 늦게 출발했고, 20분이면 간다는 택시는 연휴 정체로 한 시간 20분만에 우리를 터미널로 데려다 주었다. 세 사람에게 반타얀으로 가는 항구 하그나야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는데 각각 세시간, 네시간, 다섯시간이라고 대답해주었고, 비바람때문에 실은 우리는 여섯시간이 걸려서야 하그나야에 도착했다. 그리고 항구에서 섬까지 가는 마지막 배는 끊긴 후였다. 

하그나야에서 하루 자야겠네. 루씨는 마치 여기 카푸치노 한 잔이요라고 주문을 하는듯한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나에게 이야기 한 후, 곧바로 폰으로 항구에서 가까운 호텔을 예약했다. 도미노 처럼 밀려버린 일정과놓친 페리에도 전혀 괘념치 않는 그녀의 강한 정신력이 돋보였으며, 오줌 마려운 사람처럼 섰다 앉았던 나의 마음은 다시 평온해졌다. 그리고 긴 휴가 답게 다음날 아침 느릿느릿 아침을 먹고 우리는 페리를 타고 아름다운 반타얀의 산타페 비치에 도착했다. 

하그나야 포트

배안의 화장실 - CR

산타페 비치

반타얀 아일랜드(bantayan island)  팜플렛에 의하면 최초에 여기에 살던 원주민은 비사야, 몸을 겨우 가릴 정도의 옷만 입고 살았으며, 물고기며 과일이 풍족하여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었고 사람들이 소심(Timid)하고 경작의 의지도 없었단다. 오랫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아 스페인식의 학교, 성당등이 세워졌고, 후에는 미국의 식민지가 되어 미국식을 따르게 된 부분도 많이 있다. 여러번 태풍에 강타되어 많은 건물과 인명이 유실되었다면서 태풍이 일어난 연도가 표기되어있었는데, 그 뒤에 1935년, 맥주가 섬에 들어온 연도가 함께 표기되어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리조트의 레스토랑은 한여름의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되어있었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둘러쌓여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 메뉴를 살펴보던 루씨는, 하! 여기 주인 혹시 독일인이예요? 라고 물었고 식당에 있던 직원은 Maia가 제 누나고요, 독일남자와 결혼했어요.라고 대답한다. 독일회사에서 일하며 독일 남자친구를 사귀(었)던 루씨는 이번 휴가에서 독일만은 피하겠다고 공언한 바가 있다. 그녀는 메뉴에서 독일음식을 발견하고 흐트러짐없이 가꿔진 정원을 보면서 불길하지만 확실한 느낌을 받은것이다. 

레스토랑의 트리와 정원


우리는 아무 걱정없이 비치로, 수영장으로, 선베드로 굴러다녔다. 인터넷이 안된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수영장에서 놀다가 풀밭에서 책을 읽다가 정원에서 숨을 들이쉬고, 레스토랑에 가서 필리핀 음식과 함께코코넛을 먹고 마시는 한량 생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리고 24시간 옆집의 노래방 노랫소리가 들렸다. 루씨는 '이 민족은 정말 음악을 사랑하는구나'라는 말로 이 여행을 요약한다.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며 필리핀 빙수 할로할로를 씹으며, 썰물이 된 바닷가를 걸어 조개며 게며 미역을 건져내며 반타얀의 휴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마이아의 초대를 받은 둘째날 저녁식사, 우리는 깨끗한 원피스로 갈아입고 얼굴에 약간의 화장을 했다. 우리의 방갈로에서 고작 5미터를 걸어가면 식당이지만 우리의 고민은 약속시간 6시 30분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에 있었다. 

6시 30분. 

과연 이것은 독일 시간일까, 필리핀 시간일까. 

준비를 다 끝내니 6시 20분, 루씨와 나는 최대한 천천히 걸어 레스토랑으로 걸어갔다. 6시 24분. 음식을준비하는 직원 3명 이외에는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다. 그래 필리피노 타임인가보구나, 음악을 사랑하는 민족답게 이지고잉- 시간을 좀 헐겁게 쓰나보구나, 그렇다면 일찍 가서 앉아있는 것은 무례하다. 루씨와 나는 급히 정원쪽으로 몸을 틀어서 나무 사이 의자에 몸을 숨겼다. 6시 29분, 누군가가 말을 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루씨가 어둠속에서 나를 보며 소리쳤다. "젠장, 독일 타임이야!" 식당으로 돌아가니 6시 34분, 모두가 와 있었고 우리는 4분 늦었다. 


4명의 필리핀 여인-마야,쥬비,딩, 나나-들과 그녀들의 남편인 각각 두 명의 독일인 -클라우츠, 마이크-, 오스트리아인 다니엘, 벨기에인 루크 그리고 나와 루씨, 이렇게 열 명이 식탁에 앉았다. 한쪽에는 필리핀식 국수, 샐러드, 망고를 올린 생선볼, 통 생선구이, 닭조림, 아직도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는 통돼지가 독일 바베큐 소스와 놓여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머드파이, 할로할로케이크, 캬라멜 푸딩, 그리고 각종과일이 올려져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클라우츠가 나에게 와서 물었다. 뭘로 하겠나? 물이면 되어요라는 나의말에 그는 장난하지 말라는 눈으로 다시 물었다. 맥주로 할텐가 와인으로 할텐가? 그.. 그렇다면 산미구엘 라이트로... 개구장이같은 웃음을 지으며 클라우츠는 맥주를 가져와 내밀었다. 건배! 반타얀에, 그리고 우리 리조트에 온 것을 환영하네.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해피뉴이어. 


독일어가 어지러이 오가는 식탁이었다. 벨기에인과 함께인 나나를 제외하고는 필리핀 여인들은 모두 유창한 독일어를 구사했고, 독일인과 일하고 사랑한 루씨가 가세했다. 나이차이가 나는 커플이었지만 여느커플과 마찬가지로 아내가 눈을 흘기면 몸을 움츠리고 '자자... 한 잔 하자고..' 라고 화제를 돌려버리는 장난기 가득한 유럽 남편들이었다. 은퇴후에 이 섬에 와서 각자 호텔 비즈니스를 하면서 태풍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정원을 가꾸고 바다와 필리핀 여인을 사랑하며 살고 있는 아저씨들이었다.  마이아는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고 섬의 호텔 조직을 이끌고 있는 간부였고, 쥬비역시 산타페에 있는 말린 리조트라는 규모있는 리조트를 가지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간호사로 14년간을 일했다는 딩은 결혼 후 남편에게 처음으로 필리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마이아는 필리핀의 섬 여인들이 남편들이 고기를 잡으러 간 사이에 하는것이 노름뿐이라면서 그들에게 미싱과 가방 만드는 기술, 마사지등을 가르쳐서 부수입을 얻게 하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다들 아이들은 없지만 섬의 아이들을 너무 사랑해서, 크리스마스때마다 500여개의 선물을 포장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다녔다. 


어떻게 이 유럽 남자들이 이 섬에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친구들을 만나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그리고 독일에 간 필리핀 여성들이 어떻게 지내다가 돌아왔고 리조트에 오는 손님들은 어떤지 이야기를 들으며 먹고 마시며 너무나 행복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커플들은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우리의 생각에 웃고 박수를 쳐주었다. 한국과 중국에 대해서, 그리고세계와 친구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그들은, 루씨, 릴리, 와줘서 정말 고마워. 우린 이렇게 모이면 결국에는 독일 남자들은 맥주마시면서 독일어로 이야기하고, 아내들은 비사야 (섬언어)로 이야기하게 되거든결국. 너희들 덕분에 처음으로 이 테이블이 영어로 통일 된거야! 건배. 


늦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고 맛있는 음식과 디저트, 그리고 취기어린 농담과 진담을 주고 받으며 밤이 깊어갔다. 

7천개의 섬이 있는 필리핀- 그 중 하나 반타얀에서 우리가 오늘 만난것은 어떤 우연일까, 어떤 인연일까.

반타얀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늘 마주쳤고, 그들은 언제나 그들의 식탁에 우리를 초대했고, 가장 아름다운 숨겨진 해변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마주치면 껴안고 좋아 어쩔 줄 몰랐고 산타페의 술집에서 그들의 모든 친구들을 만났다. 외국인이 몇 천명이 살고 있는 소위 '은퇴의 섬' 이었다. 술에 취한 한 이탈리아 여행자가 나에게 와서 '여기 남자들은 불알이 없어, 여자가 드세고, 그래서 그런거야, 필리핀 남자들 다 어디갔어?' 라고 묻도록, 필리피나- 서양인 커플이 가득한 곳이었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어떤 사람의 인생을, 내가 뭐라 말 할 수 있을까? 나의 마음속에는 만가지의 생각이 교차했다. 루씨는 여기서 늙고 싶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 아름다운곳에서 행복의 파랑새를 발견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기준과 시선에는 이미 굳은 살이 박혔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행복이 넘쳐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아도 좋을만큼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행복하지 않지만 최선이라고 여기고 있을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는 고통의 몸부림대신 일상의 웃음이 보였다는 것이다. 

우리의 저녁.

마이아 비치 리조트를 바다에서 바라본 것

Maia' beach resort 앞 비치

해질녁

노을


역시 셀카 못찍음

St.Peter's 성당

Maia's 앞 비치- 선셋

루씨가 그려준 나- 먼 북소리 읽는 중

파라다이스에서 마이아로 돌아오는 길

선셋

크리스마스 디너를 위해 구워진 통돼지..

필터 없는 반타얀의 비치

Maia's beach resort - 나만 알고 싶은 이 장소의 링크는 여기


리조트에서 30분간 작은 보트를 타고 가면, 천국- 파라다이스가 있다.

파라다이스 아일랜드

파라다이스 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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