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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벌 치어리더 Mar 12. 2017

런던, 플래쉬백

일하러 간 런던에서 있었던 일

무심한 표정으로 다시 샤워젤을 수트케이스에 넣고 있는 나에게 그는 다시 말했다. 
 -I said, it smells nice.
 하루종일 사람들의 면세 영수증을 검사하면서 이거 샀다는 것 보여줘, 저것 보여줘 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130파운드 어치의 목욕용품이 24개 아이템으로 나뉜 러쉬의 긴 영수증을 보더니 그는 여기 이 16파운드짜리 샤워젤 보여주겠어요? 라고 물었다. 
 꾸역꾸역 물건들을 우겨넣은 수트케이스를 열어 샤워젤을 꺼내어 그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가 무슨말인가를 했지만, 그거, 좋은 냄새가 나요. 라고 말했을 줄은 몰랐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은 냄새가 난다고 말했어요. 면세 서류에 도장을 찍는 그를 돌아 보았다. 아 그렇죠?
 

 입국카운터를 지나서 가게에 들러 동료가 부탁한 조 말론 향수들을 샀다. 중국에서는 두배의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고, 디자이너들은 내가 런던에 갈때마다 항상 향수를 주문하곤했다. 향수를 포장한 점원이 다른것은 필요없으신가요? 라고 물었을때, 향수 옆에 있는 커다란 캔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거.. 얼마인가요? 250파운드요. 얼추 40만원이었다. 아 그럼 필요없어요.
 조말론을 나와 초컬릿과 사탕을 파는 가게에 들러 하리보 스머프 버전을 샀다. 그리고 런던에서의 쇼핑은 끝이 났다. 
 

 9일간의 일정이었다. 매우 바쁠 것을 알고 있었다. 금요일에 도착하면 그 밤에 닉을 만나기로 했었고, 토요일에도 그와 아침을 먹고 공원이나 박물관을 가기로 정해두었다. 토요일 오후에는 영어스터디를 하고, 이어 블로그 한국모임을 예약해 두었다. 그 저녁에는 루카를 만날 예정이었고, 일요일에는 회사근처 호텔로 돌아가서 일할 준비를 해야 했고, 밤에 한국 마케팅 언니와 만나기로 했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패션쇼 때문에 잠을 거의 자지 못할 것이었고, 수요일에는 숨을 조금 돌릴 수 있을까, 목요일, 금요일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아마 금요일쯤에는 그나마 정리가 좀 되었을 테니 토요일에는 최근에 회사를 이직한 직장동료를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상해행.
 

 도착하자마자 닉에게 바람을 맞았다. 비행기가 내리자마자, 급한 일이 생겼다는 그의 음성메세지를 들었다. 괜찮다고 내일 만나자고 답장을 하고나서, Wildesten junction까지 가는 길을 찾았다. 익스프레스로 패딩턴까지 가서 다시 윌스턴 정션, 그리고 거기서 택시를 탔다. 지난번에 돌스톤까지 멋모르고 블랙택시를 탔다가 100파운드가 나온일때문에 공항에서 택시를 타는게 무서웠다. 게다가 우버도 작동하지 않았다. 열차안에서 다시 닉에게 메세지를 했다. 
 우리 내일도 만나지 말자. 나 다른 약속이 있어. 닉은 나에게 ‘꼭 만나고 싶어, 오늘만 아니라면 다른 아무때라도 좋아’ 라고 했다. 그러나 런던 도착을 바람으로 장식한 그의 매우 ‘전형적인’ 습관에 진절머리가 난 나는 ‘나 내일도 너에게 바람 맞고 싶지 않아. 지금부터 다른 약속 잡을꺼야’라고 답장했다. ‘Please...’라는 그의 메세지에 ‘닉, 나 너 만날 시간, 없어. 미안해’ 라고 말했다. 알겠어..라는 그의 메세지, 아마도 우리의 마지막 메세지였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에어비앤비의 숙소,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3층짜리 건물에는 나말고도 이탈리아 남자, 그리고 주인 고양이밥을 주러온 쉥스가 있었다. 산디라의 드래곤 룸에서 쉥스와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내 문을 노크하는 그의 기척에 잠을 깨서 그와 아침을 먹으러 갔다. 운전을 하는 동안, 그는 자신의 앨범을 틀어주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음악, 아시안, 아프리칸, 웨스턴, 그리고 독특한 음색의 보컬.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해쉬브라운과 빈, 서니사이드업, 베지테리안 소시지, 잉글리쉬티를 앞에두고 그는 나에게 물었다. 왜 이곳을 찾아왔느냐고. 나는 산디라를 만나고 싶어서 에어비앤비를 택했다고 말했다. 산디라는 자유롭고 행복해보였다. 나는 행복의 파랑새를 찾으러 왔고, 이번 런던에서 파랑새의 깃털이라도 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산디라는 호주에 사는 92세의 아버지를 만나러갔고, 쉥스와 내가 만나게 되었다. 그녀가 혼자서 어떻게 이렇게 자유롭게 행복할 수 있는지, 아니면 정말 행복한것인지, 나는 그에게 대신 물었다. 산디라는 행복한가요? 그는 산디라가 여기있다면 아마도, 그렇다고 말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그는 나에게, 결혼이 뭐지? 누군가와 영원히 함께 한다는 것이뭐지? 그녀는 그녀 자신과 결혼해서 행복한거야. 약속하고 깃발꽂지 않아도 자신은 영원히 자신과 함께 하니까 라고 말한다. 그토록 오래 연애하고 제일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가 서로를 이렇게나 증오하게 되는 것이 결혼이라면 유지해야 할 이유가 뭐지? 이 세상은 거짓말로 뒤덮여 있어.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거야. 넌 말이지, 다른 사람이 무어라 하던지, 너의 인생을 살아. 누가볼까 누가 안볼까, 누가 이상하다 할까 누가 추하다고 할까 너를 대신 걱정하던지 말던지, 거짓에 속지 말고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 이 세상은 거짓말로 이루어져있고, 그 모든 계약과 규범, 규칙들은 사람들에게 똑같은 삶을 강요해. 그리고 거기서 피어나는 스트레스를 먹고, 부자들이 돈을 불려가고 있어. 
 그럼... 쉥스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그 거짓으로 둘려쌓인 세상에서.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스트레스 받지 않을꺼야. 다 거짓말이니까. 

Sandira의 airbnb https://www.airbnb.com/rooms/11823061/

 놀랍도록 좋은 날씨를, 우버를 타고 달려 Hally’s 에 도착했다. 공원이 있고, 예쁘고 작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Fullham의 거리에 캘리포니아 인테리어의 카페. 거기서 한국 사람 9명을 만나기로 했다. 4명 자리를 일단 차지 하고 앉아있다가 한사람, 한사람, 결국에 9명이 모두 나와 앉았다. 점원이 신기한 듯, 동양 사람들이 들어오는 족족 우리 테이블로 보내주더니, 급기야 중앙에 제일 큰 테이블로 우리를 옮겨주었다. 샐러드와 티, 그리고 쿠키등을 먹으며 우리는 런던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어제 저녁에 맞은 바람을 메꿔주기라도 하듯, 한 명도 중간에 약속을 바꾸거나 말없이 안나오지도 않았다. 보통 급만남을 하면 당일날 취소를 하는 사람이 꼭 나오기 마련인데, 토요일 3시에 모두가 나와주다니, 감격할 일이었다. TV프로듀서, 변호사, 한국어 교수, 프로그래머, 쥬얼리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SEO마케터, 회계사 수험생으로 각 런던에 온지 한 달에서 10년이 되는 사람들이었다. 날씨, 문화, 회사, 연애, 정착, 차별 그 모든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그 가게 문닫을때까지 떠나지 않았다. 
 
Hally's : http://www.hallyslondon.com/

 에이스호텔은 이전 런던 출장때 이미 와 보았다. 라운지에 랩탑을 들고와서 일하는 무리들과, 술을 마시는 무리들이 함께 있었다. 루카는 그곳에서 나를 만나자고 했고 나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버스에서 내린직후 반대방향으로 걸어가다가 다시 돌아오느라고 그를 걱정시켰다. 그와는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아니라면 아닌 방식으로 만났다. 1년전 그가 링크드인으로 쪽지를 보내와 자신은 내 친구이기도 한 클레어와 대학을 같이 다녔으며 상해에 출장을 오는데 점심때 미팅을 하지 않겠느냐고 했고, 지지리도 무료했던 나는 그러마고 흔쾌히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우리 회사 앞 일식집에서 만나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셨고, 저녁을 먹었고 술을 마셨다. 그는 영국에 사는 프랑스 사람이었고, 클레어의 친구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으나, 그녀와 잘 아는 사이인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어쨌거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까. 
 작년 쇼때 왔을때 그와 연락이 닿아 또 만났다. 그와 나는 예약없이 소호의 금요일밤에 떨어져있었고, 정처없이 소호를 헤매다가 간신히 닐스야드의 한 비건 레스토랑을 찾아들어가 그의 인생 처음으로 비건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나는 파리에서 나를 만나러 오는 마린을 마중나가러 킹스크로스의 유로스타로 가려는 참이었다. 그가 갑자기 유로스타로 따라오겠다고 했다. 왜? 그도 심심했던 거다. 
 유로스타가 1시간 반 연착되었을때 그의 존재가 사뭇 소중해졌다. 우리는 근처 카페로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함께 마린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와 마린이 드디어 만났다. 그 다음주에 그가 한 번 회사 근처에 있는 호텔 근처로 나를 찾아왔었다. 무언가를 바라면서 온 것 같아서 돌려보냈다. 하지만 왜인지, 그가 밉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런던, 그와 또 만나기로 했고, 나는 에이스호텔 라운지에 도착했다. 
 그는 다섯명의 프랑스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에이스호텔 : http://www.acehotel.com/london

 그들 모두 영어를 구사했으나 내가 화장실을 다녀오면 불어를 쓰다가 다시 영어로 바꾸는 그런 식의 분위기였다. 내가 배가 고프다고 하자 루카는 나에게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었다. 이탈리안. 
 그는 두말도 않고 쇼디치에서 가장 맛있다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밤 10시에도 대기줄이 있었다. 조금은 어색하게 대기줄에서 서성이다가 마침내 자리를 잡았다. 그는 피자를, 나는 파스타를 시켰다. 우리는 새로나온 앱에 관해서 이야기하다가 그가 내 전화기를 가져갔다. 뭔가를 한참 타이핑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자식이 뭘하고 있는거지 라는 느낌이 들어 뭘하냐고 물었다. 그는 ‘티나가 누구야?’라고 물었다. ‘친구’라고 대답하니 그는 이어 타이핑을 해나갔다. ‘뭘해?’라고 물으니’ 티나와 이야기하고 있어’ 라고 했다. 뭐라고? 전화기를 낚아 챘다. 게임은 이미 끝났다. 
 그는 이미 티나와 5분간 메세지를 주고 받고 있었다. 나인척 하면서. 놀라운 사실은, 티나가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티나에게 ‘나 지금 프랑스 남자와 데이트 중이야’ 라고 시작해서 ‘오늘밤은 그와 보내고 싶어’로 대화를 마무리 했고, 티나는 흥분해서 나에게 하트를 보내고 난리였다. 나는 머리를 감싸쥐며 그에게 소리쳤다. 넌 왜 나한테 관심도 없으면서 이런 장난을 치는거야?! 그는 내눈을 바라보았다. 사실은 나 너 오기전에 저녁 먹었어. 
그의 피자 접시는 거의 비어있었다. 

로소포모도로 : http://www.rossopomodoro.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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