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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벌 치어리더 Dec 07. 2016

파리, 쌩뚜완

프랑스, 파리의 벼룩시장

룩셈부르크 정원 어땠어? 비스듬이 기대서 '뚜르드 프랑스'를 보며 프레드가 물었다. 
- 응, 좋았어. 아 그리고.. 나 벼룩시장에 갔었어. 
-아 그래? 여기 근처에 있는거?
잠시 머뭇거린 후, 나는 
-아니 St Ouen.. 
그는 의자에서 튈듯이 상반신을 일으켜세웠다. 
-뭐라고? 썡뚜앙? 미쳤어? 거기가 어디라고 가?
나는 복화술로 '네가 이럴 줄 알고 이야기 안한거지' 라고 중얼거린 후 덧붙였다.
-알아, 네가 왜 이러는지. 알아...


처음 파리의 골동품/ 벼룩시장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였다. 
뭔가 파리에서 해야 할 일 중 하나로 꽤 상위에 많은 사람들의 wonderful! good find! Vintage lover's paradise, tresure hunting 등등의 평과 함께 추천되어있었다. 먼저 '인사이더 투어'를 한다는 웹사이트(http://paris-flea-market.com/)를 알게 되었고, 결제를 하려다가 계획을 금방 세울 수 없어서 그냥 혼자서 가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떠나기 전날 금요일이었고 시장은 토, 일, 월만 연다. 나에겐 토요일 오전 밖에 없었다. 


금요일 전날 가는 방법을 조금 찾아두고 아침에 집을 나섰다. 프레드는 집 청소를 하고 이발을 하러가겠다고 했고, 나는 룩셈부르크 정원에 가서 꽃구경을 하고 올텐니 내 걱정은 말라며 지도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St Ouen, 혹은 Clingancourt flea market이라고 불리는 그곳은 북쪽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까운 역에 내렸다. 


처음으로, 이번 프랑스 여행에서 처음으로, 나는 가방을 꼭 여미고, 주변을 살피며 두리번 거리며 걷게 되었다. 왠지 공기가 달랐다. 사람들의 복장이 달랐고, 사람들의 태도가 달랐다. 무엇인가 음산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에서 보면 매부리코의 흐트러진 머리의 마녀, 혹은 치아가 누런 악당이 등장하지 않는가. 정말 그런 풍경을 내 앞에서 본 것이 처음이었다. 집시와 부랑자, 그리고 고물상인들. 무엇인가 여태까지의 파리의 기운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문득 프레드의 말이 생각났다. 파리 외곽으로 갈 수록 이민자들이 많이 산다고. 파리에 도착한 후로 연일 터진 니스 테러, 알프스의 네 모녀 칼 음해 사건, 뮌헨 쇼핑몰 테러, 독일 기차 도끼 테러등으로 프레드는 이민자들에게 매우 날이 서 있었다.  하지만 몰랐다. 17구의 아름다운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테라스가 있는 프레드의 여동생의 아파트에서 파리전경을 보면서 케익을 먹고, 에펠탑 근처에서 꽃 수업을 듣고, 생제르망과 마레지구에서 쇼핑을 하고, 샹젤리제에서 차를 마시고, 개선문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세느강의 알렉산더 다리 클럽에서 와인을 마시고, 바티뇰에서 브리타니에서 그날 올라온 싱싱한 굴과 바닷 가재를 먹었으니까. 
몰랐다. 나는 처음으로, 혼자서 토요일 아침 일찍 부지런을 떨며 벼룩시장에 나온 것을 후회했다. 정신없이 버스 정류장을 찾아 이 슬럼가를 빠져나가 다시 다운타운으로 갈 채비를 했다. 그러다가 다시 가방을 움켜잡았다. 여기까지 왔잖아. 보고 가야지. 


천막들이 들어선 벼룩시장안으로 들어가자 이제 막 좌판을 깔기 시작한 상인들이 보였다. 딱히 잡아 채는 사람도 없건만, 조악한 옷들과 잡화, 그리고 목이 잘린 인형들과 중국에서 생산한 것 같은 싸구려 악세사리들, 그리고 쓰레기 더미 같은 중고 옷들이 진열되고 있는 것을 보며, 그리고 너무 이른 아침이라서 다른 관광객도 없는 사잇길을 걸으며, 왜 혼자서 여길 왔는지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무섭게 생긴 사람들이 봉쥬르 마담, 혹은 어이 예쁜 아가씨 라고 부르면 흘러내리는 티셔츠를 여미고 선글래스로 가린 얼굴을 더 가렸다. 도대체 왜 이런 곳에서 마지막날 아침을 보내기로 한 것인지, 나는 다시 한 번 나와 트립어드바이저의 리뷰어들을 원망했다. 
 
가방을 끌어 안은채로 토요일의 아침을 걷고 있는 동양여자, 짧은 반바지와 흘러내리는 티셔츠, 골동품 수집가처럼 보이지도 않으며 돈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주춤거리는 꼴이 불어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이 벼룩시장을 단시간내에 성공적으로 빠져나가는 것만이 이 여자- 나-의 미션인것이다. 


햇볕이 조금 더 잘 드는 다른 길로 나가니, 좌판에 조금 더 귀여운 악세사리나 빈티지 옷 가게가 있는 것이 보였다. 봉쥬르 마담. 같은 봉쥬르 마담이지만 조금은 덜 음침한 인사들이었다. 주춤거리며 다가가서 이것저것 뒤적거려봤다. 나에게는 생소한 빈티지 제품들과 재미있게 생긴 악세사리들. 누가 썼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녹이 슨것도 있었지만 재미있었다. 중간에 맘에 드는 반지가 있어서 상인에게 반지를 샀다. 5유로라고 했다. 후에 이 상인이 대단한 횡재를 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이틀전 Sylvian le hen 머리핀을 이미 55유로를 주고 샀기 때문에 5유로쯤이야... 상인은 자기 친척 중에 한국에서 입양되어 온 사람이 두 명이나 있다며 반색을 했다.  피에르와 마리 , 한 사람은 변호사이고 한 사람은 의사다. 그리고 나는 맘에 드는 반지를 발견해서 대단히 만족한다. 상해에서 이런 디자인의 반지는 열 배의 가격을 주고 사야 한다. 



볕이 잘 드는 곳으로 걸어서 진주 귀걸이를 2 유로에 샀다. 브로치도 2유로, 녹이 슬었지만 예쁜 목각 머리핀도 3유로에 샀다. 그리고 드디어 이 시장을 빠져나간다. 


룩셈부르크 정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고, 한 시간이 걸려서 센느강을 다시 건너, 그리고 노트르담 성당을 지나 정원으로 간다. 정원으로 가는 내내, 처음으로 내 앞에서 본 집시들과 넝마주이들,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는 이민자들의 눈빛을 떠올렸다. 프레드가 알게 된다면 화를 낼 것이다. 


어제 17구와 18구 사이에서도 그랬다. 17구에서 18구로 넘어가는 경계선에 있는 카페에서 해산물로 저녁을 먹기로 했다. 허리가 드러나는 탑과 긴 치마를 입었는데 프레드가 18구에서는 조심해야 해, 미친 소리 같겠지만 17구와 18구는 달라. 여기 이 경계선을 중심으로 18구와 17구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인지 네가 알아야 해. 라고 말한다. 어벙벙한 나의 표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나가는 남자가 내 팔을 만지더니 미소를 날리고  간다. 성난 표정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더니 그와 그의 친구는 '네가 어쩔 건데?' 라는 표정으로 나를 되 쏘아보았다. 앞장서서 걷던 프레드가 뒤돌아서 성난 표정의 나를 보더니 '뭐야? 저 자식이 뭘 한거야?' 라면서 뒤따라 가더니 이내 되돌아와서 말했다. 말했잖아. 여기선 조심해야 한다고. 개자식들. 밖으로 향하는 테이블에 앉아서 와인과 싱싱한 굴을 기다리는 동안 경찰관이 한 흑인 남성을 잡아서 몸 수색을 하더니 저항하는 그의 몸에서 망치를 꺼내는 것을 보았다. 프레드는 다시 화가 났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거야!' 


파리가 몹시 맘에 들었던 나였지만 아니, 도시에서 가장 화려한 골목길에서 일도 안하고 돈만 쓰는 관광객이 뭐가 맘에 안들겠는가. 게다가 음울한 겨울도 아니고, 눈부신 썸머타임에 파티하고 꽃만들고 커피마시고 디저트 사냥하고 다녔는데. 조심해야 할 것은 거리의 개똥밖에 없었는데.


마지막 날, 장밋빛 파리의 꿈에 찬물을 끼얹은 벼룩시장, 그래도 한 번은 가야만 했을 것이다.


룩셈부르크 정원에 도착하자 너무 배가 고파 정원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정원 바로 앞의 관광객 상대 음식점에 들어가기도 싫어서 또 한참을 걸어서 뒷 골목의 로컬 카페를 찾았다. 샐러드와 구운 감자를 먹고 드디어 정원 입성, 아름 다운 꽃들과 궁전, 그리고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로 물론 정원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정원 한가운데에 있는 아이스크림집에서 먹은 캬라멜 아이스크림 콘은 여름 정원의 하이라이트였다. 


이제 그의 아파트에 돌아와 공항 갈 채비만 남은 나에게 벼룩시장 이야기를 들은 프레드는 짜증을 억누르며 '얼른 가서 손 씻어' 라고 말한다. 내가 쿡하고 웃자 '우리 엄마가 그랬어, 밖에 나갔다 오면 손 꼭 씻으라고' 라고 멋쩍게 변명한다. 그래, 엄마 말은 언제나 옳지. 샤워를 하고, 이제 나는 파리를 떠날 준비를 한다. 


이 시장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었기에 링크 
http://blog.naver.com/cottins/220403811445

                

[앤티크시장/파리여행] 쌩뚜앙 벼룩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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