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생긴 일
나의 결혼식의 로망이라면, 일단 연희동의 마리아칼라스에서 친한 사람 30명만 모인 자리에서 한 사람이 그랜드 피아노를 치면 다른 사람들은 흔들흔들 춤을 추고 우리 모두
통유리 벽으로 스며드는 낮과, 저녁과, 밤을 함께 보고 마음껏 웃는 것.
그리고 (좀 거리가 되니 동시에 하긴 힘들겠지만) 전주 한옥마을 마당에서 신랑을 가운데 세워놓고 나는 장구춤을 추면서 등장하고 친구들 다같이 '어화둥둥 내사랑~' 이런거 단체로 부르고,
외국 친구들 본인 전통의상입고 와서 마을 잔치 하는 것.
지나가는 사람들도 잔치국수 한그릇씩 말아주고 덕담듣고. 신나겠다. 할로윈 인 줄 알면 더 재미있겠다.
-절벽위에서 결혼하기로 했어. 울루와뚜로 와.
직장동료로 만났지만 결국은 친구가 되고만 자카르타 출신 아만다가 결혼을 한다고 했다.
울루와뚜라는 이름도 생소하지만, 절벽위라고 하니 취향도 특이하다 했다.
친척들과 친구들, 다 해서 50명쯤만 모이는 결혼식이라며 나를 초대하는 그녀의 말투는
'안오면 알지?' 라는 듯 다정단호했다.
연애초기, 사실 난 그녀에게 '왠만하면 다른 남자를 찾으라' 고 조언했었다. 결국 그녀는 내가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던 그 남자와 이 파빌리온에서 결혼 하게 되었으니, 나는 앞으로 더 남의 인생에 감놔라 배놔라 하지 말아야겠다. 사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그렇다.. 정말 그렇다니까.
그렇지않다면 내가 왜 지금 서울-싱가폴-발리-싱가폴-대만의 표를 끊어서
발리를 걸쳐서 대만을 가겠느냐는 말이다.
핑크혹은 퍼플이라는 컬러 테마를 완벽하게 잊어버리고 정성스럽게 갈색 드레스를 챙겨 온 나는,
놀면서 입으려고 했던 어두운 회색에 가까운 인디안 핑크의 면드레스를 계속 핑크나 퍼플과 비슷하지 않냐고
우기며 결혼식에 나타났다.
절벽 아래의 아름다운 파도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동료들은 이쪽에, 정말 제대로 갖춰입은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인 신부측 가족들은 저쪽에, 한 눈에 봐도 일본인이다 싶은 일본인 신랑측 친구들은 다른 한 쪽에, 새하얀 발리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결혼 진행 발리사람들은 파빌리온 앞에서 식이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리넬리 저리가라의 성가대의 맑은 음색이 울리고, 목사님도 자리에 섰다.
유리 파빌리온 밖으로 더 없이 아름다운 발리의 하늘과, 그 밑으로 펼쳐진 바다가 함께 들어와 반짝였다.
신랑이 들어와서 선다. 신랑측 하객의 휴대폰이 일제히 올라갔다. 나는 쿡 웃으며 핸드폰을 가방에 집어 넣었다.
아름다운 순간을, 숨쉬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새하얀 발리 전통의상을 입은 작은 여신들이
신부들어올 길에 팬지패니를 뿌려 꽃길을 만들었다.
그 와중에 뒤에서 싱가폴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배고파 죽겠어
신부가 들어오지 않는다.
신랑은 몇 번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신부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나도 뒤를 돌아 말했다
-팬지패니라도 좀 먹고 있을래?
그의 특징인 멍때리는 듯한 당황한 표정이 지루함으로 바뀌어갈 때 쯤.
노래가 들려왔다.
I would bet my life, like I bet my heart
That you were the one, baby
I've never been so sure of anything before
It's driving my heart crazy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구에 선 신부의 계속 되는 고백
'이젠 빼도 박도 못하네요'
I can't hold out, I can't hold back now
Like I've done before
짧은 홀을 아버지의 손을 놓고 혼자 노래를 부르며 걸어간 신부는
신랑 앞에 섰다.
Darling, look at me
I've fallen like a fool for you
Darling, Can't you see
I'd do anything you want me to
그는 눈을 몇 번이고 깜박였다.
그는, 순둥이 일본남자는
울고 있었다.
I tell myself I'm in to deep
Then I fall a little father
Every time you look at me
-Carrie Underwood 'Look at me'-
장장 9시간 동안 계속 된 결혼식과 리셉션, 스피치, 퍼스트 댄스.
사람들을 비행기타고 오라 불러모으니 일찍 뜨는 사람 없고 다른 스케쥴 없어서 더 완벽했었던.
아름다웠던 발리의 Destination Wedding.
*이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마리아칼라스는 문을 닫고 그자리에 신축 원룸이 들어선 모양이다.
장구춤이나 연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