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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훈 Jun 01. 2020

트위치와 유튜브 : 동물화를 이끄는 플랫폼 (1)

트위치와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듀라한 스트리머와 오타쿠 문화를 중심으로


Ⅰ. 도입 및 개론


트위치(Twitch) 로고


트위치는 종합 게임 방송을 전문적으로 송출할 수 있는 방송 플랫폼으로 2011년 트위치TV라는 이름으로 게임 송출 플랫폼을 만든 이후 아마존으로 인수되었다. 당시의 트위치TV는 창업자였던 저스틴 칸과 에멧 쉬어의 라이프 로깅 프로젝트로 자아정량화의 측면에서 개인에 대한 데이터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개념으로 시작되었으나, 이 부분에서 게임을 하는 부분만을 보여 주는 채널을 분리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트위치TV의 시작이 되었다.


트위치는 자신의 플레이 모습을 타인에게 자랑하고자 하는 게이머들의 심리를 잘 파고들어, 소위 게임을 잘 알고, 잘 하는 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 내었고, 자연스럽게 이들의 인정 욕구와 자랑의 심리는 타인의 뛰어난 게이밍 스킬을 모방하려는 수많은 이들을 시청자로 만들어냈다. 더불어 이들 간의 경쟁심리를 통하여 게이밍 스트리머와의 플레이에 채팅과 같은 형태로써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였다. 


이러한 트위치 플랫폼은 국내에서 가파르게 성장하여 나가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트수(트위치 백수)’라고 부르면서 모든 스트리머들을 아우르는 트위치만의 ‘밈(meme)’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이러한 트위치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이들 시청자 및 스트리머간에는 일종의 강력한 소속감이 생성되었으며, 2016년에 발생하였던 또 다른 방송 플랫폼인 ‘아프리카TV’의 갑질 논란을 통하여 많은 BJ들이 트위치 플랫폼의 스트리머 체제로 이전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결과로 인하여 트위치는 종합 게임 부분에서 커다란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트위라는 게임 중심의 플랫폼의 특성에 대해서는 변혜린과 유승호(2019)의 저서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카보드 크레인을 쫓는 목 없는 기수>


필자는 이러한 트위치 플랫폼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유튜브 플랫폼과의 연계와 이들 플랫폼에서 나타나는 얼굴 없는 방송, 소위 ‘듀라한(Dullahan)’ 방송의 성장에 대하여 짚어보고자 한다. 듀라한이란 아일랜드 등지에서 나오는 목이 없이 말을 타는 요정을 의미하는 단어로 대중문화, 특히 트위치와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에서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채로 방송을 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대부분의 이러한 스트리머들은 자신들의 캐릭터를 설정하여 이를 일러스트화한 모습을 화면 전면에 세워둔 채로 방송을 진행하거나 자신의 신체 일부분, 흔히 목 아래까지만을 송출하는 방식으로 방송을 진행한다. 이러한 방송 양식은 위에서 언급했던 아프리카라는 개인 방송 플랫폼 등지에서 시작되어 트위치와 같은 종합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퍼져나갔다.


이들의 대한 특징으로 종합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트위치를 방송 플랫폼으로 이용하고 이에 대한 다시보기 및 영상 콘텐츠를 유튜브로 편집, 업로드하는 체계적으로 이분화된 구조의 채널을 운영하는 것에 있다. 이들의 규모는 몇 만에서 몇 십만까지에 이르며 유튜브 내에서의 게임 카테고리의 인기 동영상 순위에도 어렵지 않게 진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트리밍 생방송 시청자 측면에서는 인기 스트리머의 경우에는 오천 명 안팎의 시청자를 보여주고 있으며, 평균적으로 천여 명 안팎으로 나타난다. 이들의 구독자 규모는 십 만 단위를 상회한다.

이러한 듀라한 스트리머는 위에서 서술했던 것과 같이 자신의 캐릭터를 사용하고 게임과 기존의 트위치 플랫폼의 분류인 ‘IRL(In Real Life)’, 현 ‘Just Chatting’ 중심의 방송을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의 기세는 점점 확장되며 새로운 콘셉트를 가진 스트리머가 점차적으로 유입되고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가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듀라한 스트리머들과 이들의 시청자에 대한 오타쿠적 특성을 오카다 토시오(2000)와 아즈마 히로키(2007)가 제시한 오타쿠의 개념과 이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엄밀하게 오타쿠와 그들의 특성에 대해 정의하고자 한다. 이후 아즈마 히로키가 주장했던 오타쿠에 대한 Kojève(1981)의 동물화 개념의 적용과 확대의 측면에서 이들의 방송 사례를 데이터 분석 기법으로 분석해보고, 두 플랫폼이 인간에 대한 동물화를 이끌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선행 연구 및 개념 설명

1. 오타쿠와 문화산업


오타쿠라는 단어의 기원은 일본 케이오우 대학 부설 유치원 출신들에게서 발생하였다는 것이 애니메이션 및 게임 업계에서의 정설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들의 경우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콘텐츠 및 만화 콘텐츠에 대한 정보 교환의 필요성에 의하여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많았고, 타인에 대한 경칭이기도 한 ‘오타쿠(お)’라는 단어가 편리하게 사용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후 일본에서 ‘도쿄․사이타마 연쇄 유아납치 살해사건(東京・埼玉連続幼女誘拐殺人事件)’이 발생하고 가해자 미야자키 츠토무(宮崎 勤)의 방을 매스컴이 취재를 하게 되면서 이를 ‘오타쿠식 범죄’라고 단정하게 되었고, 오타쿠라는 단어는 불순한 의미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일본 국민들은 오타쿠의 뜻을 집에 틀어박혀 사회로 나오지 않는 사람들로 오해했기 때문인데, 애초에 처음 만났던 사람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기 위한 하나의 호칭에 불과하였던 오타쿠라는 단어는 위사건 이후 사회적인 관계 요소가 상실된 채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게임을 좋아하고, 집에 틀어박혀 사는 관계성이 결여된 사람이라는 오해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1995)는 계몽의 변증법의 문화 산업, 대중 기만으로서의 계몽의 지면을 빌려 개성이라는 것이 더 이상 개체의 특성이라는 고유한 의미를 상실하였다고 주장한다. 사회와의 거리감은 죄악이 되기 때문에 타인과 같은 표준적인 행동규범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문화산업에 산업에서 이러한 개성은 개체의 특성이라는 의미를 상실해버렸고, 대중들은 문화의 흐름에 편승하여 대세라고 하는 것을 추총하기에 이른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대세를 따르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버려지게 되고 이들은 표준화된 사회에서 그들이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악인의 취급을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현대 문화산업에 대해 면밀한 분석을 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주장은 오타쿠라는 존재에 대해 적용해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일종의 주류 문화가 아닌 만화, 애니메이션과 같은 오타쿠적인 특정 개성을 지니고 있는 문화를 향유하는 오타쿠를 주류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는 이들의 행위를 폄훼하고 죄악시하기에 이른다. 이는 당시 발생했던 연쇄살인 사건과 연계되어 일본 국민들의 정서를 이들에게 반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였고, 오타쿠라는 존재가 당시의 일본 사회가 그러하였듯이 오타쿠라는 개념이 도입된 한국의 사회에서도 이러한 오타쿠에 대한 혐오와 비아냥거림의 발언들은 끊임없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 도입 초기에서도 이러한 발언은 계속 존재했는데, 오타쿠라는 단어가 소개된 경향신문(1990)의 기사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단어를 처음 쓴 사람은 수필가 나카모리(中森明夫)씨로 내향적이고 개인적이며 사회문제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日本 현대젊은이들의 풍조를 강조하는 말로 점차 자리잡아 가고 있다.
「오타쿠族」의 특징은 우선 만화라든가 비디오, 영화, 음악, 전자오락, 심지어는 기차모형등 다양한 분야 중 하나에 일반인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깊은 취미를 갖고 있다.
(생략)
어떻게 보면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지만 현재 일본에서 이 「오타쿠族」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생략)
사회와의 관계를 끊은 젊은이라고도 할수 있는 「오타쿠族」의 장래에 대해 기성세대들의 걱정은 태산이다.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오타쿠를 특이 취향의 이들로서 몰아가고 있으며, 일반인과의 차별성을 중심적으로 설명하여 나가고 있다. 더불어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며, 사회와의 관계를 단절한 이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 사회에서의 부정적인 의미의 오타쿠의 의미를 한국사회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오타쿠라는 인식의 측면을 변경하여 놓은 사람이 바로 가이낙스(ガイナックス)라는 애니메이션 회사의 창업자 중 한사람이자 비평가인 오카다 토시오(岡田斗司夫)이다. 그는 오타쿠를 영상시대의 생존경쟁에서 진화한 자로 바라보았다.


그에 따르면 당시 오타쿠는 애니메이션 작품 속에서 왠지 다르다 싶은 부분을 감지해내고 이러한 차이를 제작 스탭에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오타쿠들은 필사적으로 눈을 부릅뜨고 애니메이션의 스탭 명단을 적어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그들은 작감에 따른 내용 차이뿐만 아니라 원화맨의 개성의 차이를 연구하며, 작감, 원화, 동화라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연구하기에 이른다. 이에 그들은 프레임으로 보는 시점을 습득하게 되었으며 몇 번씩 화면 정지를 하지 않더라도 한 프레임씩을 포착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내용에서 다시 문화산업 체제 아래에서 벗어난 오타쿠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예술의 목적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문화산업의 목적에 대해서는 자명하다 주장한다. 그들은 문화산업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윤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들은 문화상품의 속성을 제작물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하여 민첩성과 관찰력 등의 사전 지식을 요구하지만, 이와 상관없이 관객으로 하여금 재빨리 스쳐 지나가는 사실들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사유하는 것을 불가능하도록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았을 때 오타쿠적인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기존의 문화 산업을 향유하던 대중들과 꽤나 큰 간극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간극에서 주류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과의 특이점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우노 츠네히로(2018)가 주장하였던 주변의 공기를 읽는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회의 공기 바깥에 설 수 있는 사람들로 이야기되는 오타쿠의 정의도 나름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태초의 정의에서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정보 습득을 위하여 한정적으로 사회와의 관계를 맺어왔으며, 비록 사회의 영역에서는 ‘도쿄․사이타마 연쇄 유아납치 살해사건’과 아사하라 쇼코(麻原 彰晃)에 의하여 설립된 ‘옴진리교(オウム真理教)’의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東京地下鉄サリン事件)’같이 오타쿠적인 기질을 매개삼아 사회로의 침입을 통해 새로운 문화와 사회현상을 만들어내는 상황을 발생시키기도 하지만, 충분히 문화 산업의 영역으로 한정하여 주류 사회의 흐름 바깥에서 그들만의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로 인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오타쿠는 팬이나 마니아라는 개념과 많이 혼합되어 사용되는 면이 많지만 오카다 토시오에 의하면 이러한 점에서도 오타쿠만이 가지는 특성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오타쿠는 고도의 백과사전적인 능력을 가지는 인간이라고 이야기한다. 흔히 특정분야에 놀랄 만한 상세하고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가리켜 오타쿠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가 이야기한 고도의 백과사전적인 측면이라함은 어떤 특정 장르에 갇히지 않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세간의 평가대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좋아하니 오타쿠라는 평가는 그가 주장하는 오타쿠의 특성에는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단순하게 애니메이션이나 특정 분야만을 좋아하는 사람을 일컬어 팬이나 마니아라고 하지만,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오타쿠는 장르를 뛰어넘어 그 사이의 연관성을 간파하고 이를 향유하는 사람이자 태도라고 이야기 한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여 그 작품이나 분야를 계속하여 탐구한다면 다른 오타쿠적인 장르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오타쿠가 향유하는 오타쿠계 문화는 과연 서브컬쳐의 한 분야로 보아야하는 것일까. 이러한 오타쿠계 문화를 서브컬처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경우도 많지만 과연 이들의 문화는 진정으로 서브컬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노 츠네히로는 자신의 저서에서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의 발언을 언급한다. 그는 강하고 굳센 존재로써 정의를 지킨다고 생각했던 일본의 젊은이들의 생각이 일본이 패전하며 그 양상을 뒤바꾸었으며, 일본을 ‘12세 소년’이라 평가하며, 일본의 공업 기술 및 군사력은 크게 발전했지만 일본은 유례없는 경기 호황기인 버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고, 신체만이 성장하여 버린 일본은 성적인 능력만이 발달한 유형성숙의 모습이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에서 오타쿠계 문화, 그 중 만화와 애니메이션 산업은 아동용으로 시작되었지만 사회적인 시선을 피하여 자신이 그리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그려낼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오타쿠계 문화는 카운터컬처, 서브컬처와는 다른 변화의 양상을 보여준다. 기존의 문화는 귀족층이나 경제력이 있는 계급의 전유물로 비추어져 왔다. 미학적 탁월함이나, 인간의 근본 조건의 탐색을 그 과제로 삼았다. 이러한 문화는 교육받은 소수의 관객들이 향유하였는데, 시민 계급의 형성에 따라 이러한 문화가 대중들에게까지 개방되기에 이른다. 대중화된 이러한 문화를 습득하였는지에 대한 논의는 우량 계급의 시민의 여부를 가리는 잣대로 변화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계급적 사회에 반대하는 이들은 이러한 문화들을 반대하고 대항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었는데, 이것이 카운터 컬처이다. 하지만 전후 미국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사회로 변모는 이러한 계급의 요인이 사라지게 되었고, 카운터 컬처에서 중요한 구심점이 되었던 계급이라는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에, 당시의 사회적 기득권에 대한 반항의 형태로, 기득권이 보기에는 불온시 되는 존재로 그 모습을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른바 서브컬처가 도래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타쿠계 문화가 만들어지던 일본 사회에서는 패전 이후 미국의 문화를 모방하고 하였다. 일본의 서브컬처는 위와 같은 대립과 반항의 사상에서 이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미국에 대한 모방적인 서브컬처로 직계를 함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오타쿠계 문화는 일본의 단절된 전통 문화에서 나타난 애니메이션, 장난감, 만화와 같은 어린이 문화의 발전에서 기인한다고 보며, 이러한 문화는 어린 채로 어른이 되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향유하는 문화의 의미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위에서 언급하였던 기사에서도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난다. “지금까지의 族들이 나름대로의 젊음을 발산하고 기성세대에 반항하는 몸짓을 보여주었다고 한다면 「오타쿠族」은 조금 다르다.” 이러한 서브컬처와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어린이 문화에서 비롯된 이러한 오타쿠계 문화는 위에서 언급하였던 일본문화의 유형성숙의 문제와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2. 오타쿠와 동물화     

(1) 데이터베이스화되는 문화산업


[네이버 북]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오타쿠계 문화의 큰 특징 중 하나는 2차 창작의 활발함이다. 오타쿠의 전유물이라고 이야기되는 동인지나 동인게임, 피규어, 팬아트들이 이러한 2차 창작의 차원으로 존재하며, 오타쿠계 문화는 이러한 특징을 통하여 어떠한 한 사람의 창작자에 의해 창작되는 작품의 범위를 뛰어넘어 작품에 대한 무수한 모방이나 표절의 바다에서 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아즈마 히로키는 실제 오타쿠계 장르에서는 리얼리즘 의식이 희박하여 원작 작품조차 선행 작품의 모방이나 인용으로 만들어지는 일이 많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현실세계를 참조하지 않고 원작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존재하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 사이에서 동인의 활동들이 개입되며 작품이 더욱 다양해지고 소비되기에 이른다. 그는 이러한 오타쿠계 소비자가 진정으로 구매하는 것은 작품 자체가 아닌 작품을 관장하는 설정이나 세계관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소비자의 모습을 그는 포스트모던의 세계의 데이터베이스 모델의 2층 구조라고 이야기한다. 즉 표층에 나타난 겉모습을 결정하는 심급이 심층이 아닌 표층 부분에, 감춰진 내부의 정보가 아닌 읽어내는 소비자의 역할에 달렸다는 것으로, 소비자에 의한 읽어내기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데이터베이스적 소비의 중심에는 모에(萌え)요소가 대표적으로 이야기될 수 있다. 아즈마 히로키가 이야기하였듯이 모에요소는 단순한 페티시의 측면이 아닌 시장 원리에서 생성되어진 기호이다. 모에요소는 오타쿠계 문화에서 소비자에게 유력한 요소들을 샘플화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재조합하면서 만들어진 요소들인 것으로,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캐릭터나 인기 연예인을 향한 소비자의 관심이자 허구적인 욕망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이러한 것은 시각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그래픽의 측면에서 만들어지지만 캐릭터의 성격이나 설정, 특정한 말버릇이나 스토리의 전개 유형, 피규어의 곡선과 같은 시각적 측면을 뛰어넘은 설정의 측면이나 청각적인 측면까지도 그 요소가 포진되어 있다.


이러한 모에요소는 오타쿠계의 문화산업의 기존 형식까지 바꾸어놓았다. 즉 이야기를 통하여 탄생하던 캐릭터의 구성이 아닌 캐릭터를 통하여 탄생하는 이야기의 형태로 변화한 것이며, 이러한 방식은 한국의 웹툰 산업이나 스토리 산업에서도 현재까지 권장되는 방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작품의 완성도를 중요시하는 경향에서 캐릭터의 매력을 중시하는 문화산업의 풍조를 만들어내었으며, 오타쿠계 문화에서는 이러한 캐릭터의 매력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모에 요소의 기술이 점차 쌓여가며, 아즈마 히로키의 단어를 빌려 데이터베이스화되는 것이다.


그의 단어를 통하여 캐릭터에 대한 모에란 감정이입이라는 측면에서 해석되야하는 것이 아닌 캐릭터와 모에요소라는 2층 소비의 구조를 통해 지탱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소비자는 이러한 캐릭터에 대한 몰입을 통하여 그 대상을 분석하고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모에 요소를 찾아내며 데이터베이스화 시킨다. 즉 이러한 분석에 과정에서 오타쿠들의 모에 요소들은 캐릭터의 차원과 모에 요소의 측면으로 이중화되며 분리되어버린 두 차원에서 모에의 대상을 바꿔나갈 수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이 진정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은 캐릭터와 분리된 모에 요소이며 캐릭터는 일종의 모에 요소를 담고 있는 형태가 다른 포장에 불과하다. 오타쿠들은 스스로의 만족을 달성시켜주는 모에 요소를 찾아내기 위하여 작품을 소비하고, 이러한 요소들은 새로운 요소가 발견됨에 따라 이야기와 캐릭터의 대세가 변화하고 유사한 작품이 대량 생산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2) 동물화하는 오타쿠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인 코제브(Alexandre Kojève)은 헤겔 철학을 통하여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밝혀낸다. 먼저 헤겔(G. W. F. Hegel)의 경우에는 인간이 주체로의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처한 외적의 환경인 자연(Nature)을 부정하며 동물적인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내적존재인 욕망을 행동(Desire)을 통해 끊임없이 투쟁하며 스스로의 주인으로의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을 획득해야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자기의식의 획득 과정이 역사가 되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코제브는 이러한 욕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Such a Desire can only be as human Desire, and human reality, as distinguished from animal reality, is created only by action that satisfies such Desire: human history is the history of desired Desires.
(생략)
All the Desires of an animal are in the final analysis a function of its desire to preserve its life. Human Desire, therefore, must win out over this desire for preservation. In other words, man’s humanity “comes to light” only if he risks his (animal) life for the sake of his human Desire.
(생략)
Man’s humanity “comes to light” only in risking his life to satisfy his human Desire―that is, his Desire directed toward an-other Desire.
(생략)
I want him to "recognize" my value as his value. I want him to "recognize" me as an autonomous value. In other words, all human, anthropogenic Desire―the Desire that generates Self-Consciousness, the human reality―is, finally, a function of the desire for "recognition." And the risk of life by which the human reality "comes to light" is a risk for the sake of such Desire.     


그는 인간이란 생명을 유지하려고만 하는 동물적인 욕망을 목숨을 거는 한이 있더라도 극복해야지만 자기의식을 발현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더불어 이러한 자아실현을 통하여 인간의 욕망은 다른 사람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는 것이다. 그는 인정을 받고자하는 욕망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즉 타인이 자신의 가치를 타인 스스로의 가치로 인식하기를 원하는 것이며 모든 인간의 욕망, 인위적인 욕망, 자기의식이나 인간 현실을 생성하는 욕망은 결국 이러한 인식에 대한 욕구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동물의 경우에는 이와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동물은 그저 “negating―or better, a transforming and assimilating―action”을 취하는 존재이다. 주어져있는 환경을 그저 생존을 위하여 부정하거나, 좀 더 나은 것이라면 변화시키고 동화시키는 존재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것은 특정한 주어져 있는 대상을 가지고 그것과의 관계만으로 충족되는 단순한 욕망으로 이러한 것이 채워지더라도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인간의 욕망 구조와는 차이점을 보인다. 인간은 이러한 자아 간의 욕망을 통하여 사회관계를 맺어왔으며 동물의 욕망은 이와 달리 자기의식을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타자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사실 포스트모던 시대에 인간의 이러한 동물화는 계속해서 개량되고 있어왔다. 이미 소비자에 요구에 따라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없이 얻을 수 있는 식사를 통하여 식욕을 충족시켜왔으며, 성적인 행위의 파트너도 아무런 커뮤니케이션이 필요 없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오타쿠의 태도는 지극히도 포스트모던 시대에 어울리며 동물화의 길을 걷고 있다. 그들은 손쉽게 자신의 감성적인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허구의 요소를 포함한 작품을 찾아 소비한다. 그러한 소비 가운데에는 자기의식은 제외된 채로 정보 및 상징만을 교환하기 위한 인위적인 커뮤니케이션만이 존재한다. 그들은 기존의 작품, 즉 기존의 환경에 싫증이 나서 거부하거나 새로운 작품들을 스스로 만들어내어 기존의 작품 환경을 스스로 변화시키고 모에 요소등을 동화시키는 행위는 하지만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인간사회의 관계에서 벗어나 단순히 동물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즉각적으로 취하려는 존재가 되었다. 


인위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대중들은 그들을 사교적인 집단으로 오해할 수 있겠으나, 그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자기의식과는 큰 차이를 가진다는 것이 중요하다. 허구에서 리얼리티를 찾는 그들은 사회관계를 현실 속에서 발생되는 필연적인 요소에서 가지는 것이 아닌 특정한 정보에서 그 관계의 필요성을 가진다. 더불어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획득하기 위하여 사회관계를 맺지만 언제나 빠르게 거리를 만들어 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들의 경쟁이나 비방과 같은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은 본질적으로는 언제나 유보가 가능한 흉내 내기에 불과하며 그 형식만이 남은 존재인 것이다.



참고문헌


변혜린, & 유승호. (2019). 슈퍼 팬덤의 커뮤니티, 트위치 : 특화하고, 장악하라. 서울: 스리체어스.

강전두사부, 김승현, 오카다 토시오, & Okada Toshio. (2000). 오타쿠 /. 서울: 현실과미래,.

동호기, 이은미, 아즈마 히로키, Azuma Hiroki, & 東浩紀. (2007).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오타쿠를 통해 본 일본 사회. 파주: 문학동네.

Kojève, Alexandre et al. Introduction to the Reading of Hegel .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1981. Print.

호르크하이머막, 아도르노테, 김유동, 주경식, 이상훈, Horkheimer, M., & Adorno, T. (1995). 계몽의 변증법 /. 서울: 文藝出版社,.

李東柱. (1990. 03. 27). 日열도「오타쿠族」등장. 경향신문. 19.

우야상관, 김현아, 주재명, 우노 츠네히로, & 宇野常寬. (2018). 젊은 독자를 위한 서브컬처론 강의록. 서울: 워크라이프,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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