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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훈 May 05. 2023

01. 계약일

그 망할 화성에서 길을 잃게 된 한 주인공이 이러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


그곳이 저 하늘 저편의 화성인지 이 나라의 경기도 화성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멀지 않은 모 도시에서 저 세 문장을 다시 읊는다.


아무래도 나도 좆된거 같다.

그것이 내가 별생각도 하지 않고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된 것이 분명하다.




주변에 법무사나 변호사 직업을 많이 만들어 둘 것을 후회 중이다. 아, 사회에 갓 기어나온 대학생이 그러한 인맥을 어떻게 만들어둘 수 있을 것인가. 


처음 모 도시에 올라왔을 때에는 새로운 학교에서의 생활과 홀로 서기를 해본다는 감격에 온몸에 전율이 흐르며 4년, 아니 그 이상동안 기거하게 될 집을 찾는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때가 2019년도 02월달이었다. 


골목골목을 돌아 그 음산한 도시에서 찾아낸 고시원 하나. 세 개의 각기 다른 브랜드의 편의점의 가운데에 위치한 그 고시원 단칸방 하나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다른 낡은 집들에 비해서 잿빛의 색이 칠해져 있고 꽤나 멀끔해 보이는 그 집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같이 들락날락할 학교까지의 거리는 십오분정도. 단칸방에 불과했지만 그것이 어딘가, 이것부터 차례차례 넓혀나가자란 가난한 주인공이 나오는 어딘가의 삼류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대사를 가슴에 새기며 그 집에서 살겠노라 부동산에 발을 내딛였다.


검은 건 글자, 흰 건 종이, 빨간 건 도장 자국임은 자명했다. 각종 권리관계들과 용어들이 난립하는 계약서에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내가 물을 수 있는 건, 이거 안전한 건물이죠가 전부였다. 혹은 어려운 말들 속에서 그저 입을 꾹 닫고, 그냥 서명하라는 곳에 적당히 아무개란 이름을 적고 이름을 흐려서 스스로 멋들어지다고 생각하는 서명같지도 않은 서명을 하며, 막도장이나 근처 도장집에서 한자로 새로 팔까라는 시덥잖은 생각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아무개는 자신의 이름으로 처음 주택을 빌려살게 되었다. 필로티 구조의 2층부터 시작하는 주택의 가운데 층, 3층 가장 구석에 방 한 칸. 전기 인덕션하나, 에어컨, 침대와 책상, 드럼 세탁기가 하나 놓여져 있는 그 작은 방 하나.


그 방 하나가 자신의 것이, 물론 자신의 것이 아니지만, 되었다는 그 고양감에 몇 날 간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아무개의 머릿속에서는 그날 들었던 선순위 채권과 선순위 임차인에 대한 것들이 계약서 상 대리인이었던 공인중개사가 말했던 안전하다, 아무런 문제 없을 거다, 이정도 융자는 잡혀있어야 집을 사고 팔기 편하다라는 지금에야 감언이설임을 알게된 그 말에 빗물에 도로가의 쓰레기가 휩쓸려 쏟아지듯 사라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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