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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빈대디 Jan 18. 2023

'스크린골프' 필드보다 더 재밋게 치는 법

스크린골프가 행복골프인 이유



한 달에 한 번 만나 골프를 하는 모임이 있다. 그 모임이 골프를 하는 곳은 필드- 진짜 골프장 -  아닌 서울 한복판에 있는 스크린 골프장이다.


스크린 골프 멤버들은 모두 소위 싱글 골퍼- 아마추어 골프고수 -라는 나름 한가닥 했다는 골프 마니아들이다. 이제는 예전만은 못하지만 여전한 골프 실력을 지키고들 있다. 각자의 골프역사가 이십 년이 넘는 사람들이라 힘이 부치면 요령으로라도 자기 타수를 지키는 고수들이다. 그들은 웃고 떠들다가도 골프 타석에만 올라서면 금세 싱글골퍼 포스를 뿜어내는 아직도 투쟁심과 승부욕이 식지 않은 진짜 골퍼들이다.


우리가 매달 하는 이 스크린골프 라운드- 골프에서는 경기하는 것을 라운드라 부른다 -게임 방식은 예전부터 즐겨하던 스트로크 돈내기 경기- 각 홀 마다 각자가 친 타수의 차이만큼 패자가 승자에게 돈으로 예의를 표하는 내기 방식 -로 개인 간 우열을 가린다. 그리고 동시홀마다 오버파(over par)- 기준타수 보다 더 많이 친 타수 -만큼 벌금을 내게 해서 공통경비를 모으는 경기 규칙을 적용한다. 예전 한창때와 달라진 것은 골프장이 필드에서 스크린으로 바뀐 것과 오고 가는 지폐의 주인공이 세종대왕에서 퇴계이황으로 바뀐 것뿐이다. 그래도 라운드가 끝나고 나면 제법 벌금이 쌓여서 술 한잔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라운드가 시작되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차이 없이 경기는 치열하고 시끄럽다. 한 타 한 타에 여기저기서 환호와 탄식이 터지고, 순간순간에 각종 구찌들- 상대 플레이어가 샷을 할 때 옆에서 이런저런 말을 해서 상대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플레이를 잘 못하도록 견제하는 행위 -이 난무한다. 그렇게 경기가 진행되는 스크린골프 방 안은 후끈 달아오르고 왁자지껄 시끄럽다. 멤버 모두가 오랜만에 승부가 주는 짜릿함을 맘껏 즐긴다.


아침 일찍 시작한 경기는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늦게 네다섯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끝이 난다-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 수에 따라 소요시간이 다르다.


라운드가 끝나면 우리는 모두 근처 단골식당으로 향한다. 그날 모인 두 번째 이유를 위해서다. 늘 그랬듯이 식당 한쪽의 구석진 자리를 잡고 식탁에 둘러앉는다.


그 모임이 있는 날은 우리 모두 그야말로 술꾼을 자처한다. 하루 동안이지만 술 좋아하던 리즈시절의 우리들로 돌아간다.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첫 술잔은 꼭 거치는 전통(?) 같은 게 있다.


맥주잔을 사람 수만큼 나란히 줄을 세우고, 소주잔을 이용하여 소주 한 잔씩을 각각의 맥주잔들에 부어 일층 바닥을 만들고, 그 위에다 맥주를 소주잔으로 두 잔씩 부어 이층을 이룬 후, 마지막으로 역시 소주잔을 사용해 사이다 한 잔을 토핑 하듯 맨 위에다 살짝 부어 삼층을 만든다. 주의할 것은 절대 흔들거나 휘둘러서 부어진 삼층의 술들이 섞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이름하여 '친친주'의 제조가 완성된다. 친친주는 '한 잔 마시면 금세 친해져 친구가 되는 술'이라는 뜻을 가진 3종 폭탄주이다.


우리들은 조제자가 준 친친주 한 잔씩을 높이 들어 올리고 함께 술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외친 후 꺾지 않고 한 번에 들이킨다. 그것이 그날 술자리의 시작 선언식이다. 그리고 그 후로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소주나 막걸리의 부어라 마셔라가 이어진다.


술이 어느 정도 돌고 나면, 어떤 이는 대학 때부터 수십 년 간 연구해 왔다는 그만의 사주풀이로 우리네 남은 인생을 거창하게 풀어내어 술맛을 돋아 준다. 다른 이는 한 번도 실행에 옮겨보지 못한 남도 골프여행을 당장 함께 떠나야 한다고 목청을 높여 주장한다. 늘 재방송되는 그의 유쾌한 술버릇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의 이야기가 끝도 없이 뒤를 는다. 이렇게 각자는 자기의 이야기를 계속한다. 긴 시간들이 그렇게 흐른다. 모두 다 시간의 존재마저 놓쳐버리고, 시간조차 술기운에 취해 버린다.  


부어라 마셔라의 순환이 쌓여갈수록 사람들의 귀는 점점 더 멀어지고, 점점 더 들리지 않은 소리를 잡으려 자기도 모르게 내뱉는 목소리들도 커져간다. 제아무리 신경을 써봐야 소용이 없다. 시끄러운 민폐는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늘 식당에 들어설 때 식당의 사장을 찾아 약간 시끄럽더라도 이해해 달라는 양해를 미리 구해 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가 주변 식탁까지 큰소리로 넘어가지 않도록 애를 쓰는 역할이 당연한 나의 일이 된 지 오래다. 나이 좀  사람들이 여럿 함께한 자리가 조용한 술자리로 유지되도록 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미션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우리도 그 예외가 되지 못한다.


어둠이 내리고, 우리도 식당문을 나선다.

그렇게 우리의 시끌벅적했던 스크린골프 모임도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행복한 하루가 그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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