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는 성장했을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괴로움과 외로움이 뒤섞인 순간들이 물을 더 많이 섞어서 색을 점점 읽어가는 물감처럼 옅어지고 있다. 아무리 탁한 색의 물감이라도 물을 섞을수록 투명해지고 밝아지고 만다.
이 당연한 진리가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도 통했다.
탁한 물감을 흐려지게 도와준 물은 무엇이었을까.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싶은 마음을 어루만져 준 수많은 책들.
아침에 일어나 정신이 들기도 전에 써 내려간 모닝페이지.
건강을 담당한 걷기와 산책.
잠들기 전 천장을 바라보며 애써 찾아야 했던 감사 기도.
그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아이의 마음 살피기였다.
일곱살, 여덟살이 지나 이제 아홉살이 되는 동안, 작은 아이의 마음에 생긴 커다란 생채기를 조금이라도 보듬어 주기 위해 나 자신을 깨고 또 깨야만 했다.
육아서 몇 권을 탐독하고 실천하고 다시 읽고 적용해보기를 반복하는 동안,
나의 육아 방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아이의 마음도 조금씩 변화하는 것 같다.
평범하기만 해도 행복할 유년 시절일텐데.
엄마랑 껴안고 울고, 힘들고, 서러웠을 아이에게
내색은 잘 안하지만 한없이 미안할 때가 많다.
그리고 반대로 나의 부모님께는
내게 행복한 유년 시절을 선사해주셔서 뒤늦게 한없이 고마움을 느낀다.
나이 마흔이 넘어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인생은 공평하다는 것.
삶의 어떤 순간에 점을 찍어보면 누군가는 행복 곡선에 상승중이고 누군가는 불행 곡선을 타고 하향중이지만,
결국은 그 곡선들이 반복되고 교차된다는 것.
그래서 아이가 지금 겪는 상처도
단단한 딱지가 되어 나중에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아이 본인의 몫이라는 것도.
어찌보면 나의 나약함과 순진함 때문에 겪는 지금의 상황이
어렸을 적 별 걱정 없이 컸던 탓도 있었으리라.
내 인생의 첫 20년은 행복의 무채색이었다. 그래서 잘 몰랐다. 그게 행복이었는지.
지금도 가끔씩 물감 본연의 강한 색이 툭툭 튕겨오는 순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문자 하나, 전화 한통화, 영상통화 너머 보이는 찰나의 얼굴로도
금새 그 색은 선명한 아픔이 되어
마음 깊숙한 곳을 뒤흔든다.
하지만 얼마나 다행인가.
그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생겼으니.
이걸 Resillience project 라고 붙여야하나..
적어도 나에게는 긴 여정의 프로젝트였고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다른 색의 물감으로 내 삶이 채워지는 순간도 오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