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결정하다
계속 일을 해 왔다. 출산 휴직 4달 외에는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경제적으로 대신해 줄 사람이 있는 것도, 여유롭거나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책임질 아이도 있는데, 안정적이고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떠난다는 것은 너무도 위험스러웠다.
모두들 걱정을 하고 만류했다.
스스로에게 이것저것 이유를 붙이기 시작했다.
물론 한국에서 대안학교, 다른 지역 학교도 찾아보고 고민해 보았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외국에서의 삶을 더 원하고 있었던 것 같다.
혼자였을 때 했어야 했던 것인데, 그때는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도 책임져야 하는데, 나는 이미 작정을 하고 발을 옮기고 있었다.
아이의 기질을 이해해 주고, 나와 아이가 평범하고 평이하고 지낼 수 있는 곳이 있을 것 같았다.
여러 나라를 두고 이리저리 재고 따지고 생각했다. ( 그 당시 겉에서 보기엔 나는 행복한 고민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지만, 모두 알고 있지 않는가! 멋져 보이는 SNS 사진 뒤의 모습들을.....)
첫 타자로 고려해 본 미국.
여기도 경쟁이 심하고, 한국 사람들도 많으니 한국과 별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영국, 독일, 유럽.. 지도를 펼치고 나라를 살피고, 검색창에 즉흥적인 단어로 ( 행복한 나라, 살기 좋은 나라 ) 검색을 하고 그렇게 시작했다.
먼저 가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고, 이민 업체들도 만나보고 그렇게 외국의 삶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결정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맞겠다고 생각되어 결정한 나라 스. 웨. 덴.
살면서 발생될 현실적인 문제들은 다 저 멀리 집어던졌다. 갈 수 있는 방법들과 이유만을 찾았다. 무모함의 최고봉을 보이면서 한 발자국씩 전진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오면서 쌓아온 것들을 다 내어놓았다.
언어도 배워야 하고, 가지고 있는 것 들을 처분하고 초기 정착을 위한 비용을 준비했다.
내가 상상하는 스웨덴은 아이에게 최적일 것 같았다.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 1위였다.
아이 하나하나를 그대로 존중한다고 했다. 그로 인해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권리가 주어져 어른의 설 자리가 없다는 걱정스러운 시각이 있을 정도로.
나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가장 큰 장애는 경제력과 거주 허가를 위한 비자이다.
나는 영혼의 티끌까지 끌어모아서 얼마간은 버틸 수 있었고, 비자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걱정과 계획은 발생될 수 있는 리스크를 줄여줄 수 있지만, 아예 움직이지 못하게 할 수 도 있다.
나는 초기 정착 자금과 유효기간이 있는 비자 이 두 가지만 들고 사표를 던졌다.
당장 떠오르는 50개도 넘는 걱정거리들은 스웨덴에 먼저 보내 두었다. 수취인 불명으로....
이렇게 준비하는 동안 아이의 학년은 바뀌었다. 학교를 그만두기 위해 새 담임 선생님께 면담을 신청했다.
아이가 잘 지낸다는 말에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것이었는데, 내가 너무 성급하게 결정했나 하는 마음과 처음으로 느껴보는 아이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면담에 기분이 묘했다.
그러나 아이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이야기되고 있었고, 더 눈에 띄는 다른 아이로 인해 묻혀있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지 않게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는 아이와 나는 떠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다시 한번 되새겼다.
- by E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