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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 Feb 27. 2022

나는 이혼녀, 너는 ADHD 6

6. 낙인

시간을 늘 그렇듯 하루는 힘들지만, 일 년은 어느샌가 흘러가 버린다. 

그렇게 새 학년이 되었고,

일주일에 한 번 아이를 데리고, 가볍지만은 않은 발걸음으로 놀이치료를 다닌 지 1년 가까이 지나고 있었다.

아이는 치료 선생님과 놀이 수업을 했다. 거기서 마주친 부모들에겐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다.

피곤해 보였고, 기다리는 동안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서로를 의. 식. 적.으로 의식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1학년 때와 같은 연락은 없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을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렸다.

나는 그저 나와 아이가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길, 않는다고 여기며, 하루하루 지내갔다.


회사와 마찬가지로 이 넓은 아파트 단지에 이혼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

모두 양쪽 부모가 있는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드러난 홀 가정은 없었다. 

나도 절대 드러나면 안 되었다. 

' 왜? 그냥! 아무도 없으니깐! 왜 숨겨? 이혼한 게 뭐 어때서? '

머리로 이해되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안된다. 

가족 이야기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회사나 동네나 내 입으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사람은 알게 된다. 그것은 다른 의미로 힘들었다. 

이혼을 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살고 있는 내 모습과 내 선택을 나는 숨기고, 부정했다. 




가을 낙엽 색이 예쁜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아이의 우는 목소리가 수화기 뒤로 들려왔다.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고, 집에도 못 가겠다고 하니 아이를 데려가라는 거였다. 

서둘러 학교로 뛰어갔다. 회사에게 어떻게 나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모두 하교하고, 텅 빈 교정의 한 귀퉁이에 화가 나신 담임 선생님과 아이는 그 뒤로 눈이 퉁퉁 부은채 흐느끼며 서 있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다음에 얘기하자고 하셨고,


"엄마 왔으니깐 이제 그만 울고 가라. 오늘은 선생님도 너무 힘들었다. 내일은 우리 웃으면서 만나자 "


뭔지 모르지만 너무도 죄송스러운 마음에 어쩔 줄 모르고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오려는데, 

지나가는 학교 보안관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 저런 애 처음 보네. 선생님이 그만 우라고 해도 계속 울어. 선생님이 얼마나 힘들겠어 "


아이는 그 순간  ' 그만하세요! '라고 소리쳤다.


" 저렇게 대드니 선생님이 혼내지! " 

보안관 아저씨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나는 우는 아이 손을 끌고 서둘러 학교 밖으로 나왔다. 차에 태워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물었다. 


" 무슨 일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앙칼진 목소리였을 것이다. 

너무 울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아이는 말했다.

수업 시간에 혼났고, 울었고, 선생님이 혼내면서 자기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고, 

찍지 마라고 손을 흔들다가 선생님 핸드폰을 쳐서 망가트렸다는 거다.


너무 울어 머리가 훅훅 돌아가는 아이를 보면서, 내 마음은 혼란스러웠고 아이가 불쌍했다. 

그런데 한다는 말은 그저 이게 다였다. 


" 오늘 학원 갈 거냐?"

" 아니요 " 

" 아이스크림 먹을래? " 

" 네 "




선생님과 면담

아이가 수업 시간이 떠들었고, 혼냈고, 아이가 울었고, 그만 우라고 해도 계속 울어서, 

엄마에게 보낸다고 하면서 동영상을 찍었는데 아이가 하지 마라고 하면서 손을 쳐서 핸드폰이 떨어져 액정이 깨졌고, 그 후에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집에도 못 간다고 해서 나에게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하며, 핸드폰 수리 비용이 얼마인지 여쭈어보며, 선생님과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보험 처리했으니 괜찮다고 하시며,


" 아이가 손을 휘젓다가 핸드폰이 떨어진 거니 보험 처리했어요. 

비용은 안 주셔도 돼요. 애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아요. 

새 학기에 OO이가 우리 반이 되었을 때, 다른 선생님들이 주의를 하던데

결국 이런 일이 생겼네요. "


잘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이는 블랙리스트로 학교에서 오르내리고 있다는 것을 안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그렇구나. 아이는 이미 학교에서 꺼려지는 아이, 문제아로 찍혀 있구나.

선생님도 어렵겠지, 아이가 달라질 수 있을까? 내가 무얼 더 할 수 있을까? 아이가 잘못된 건가? 아이가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도 쭈욱 계속 찍힘에서 시작하는 건가?

지옥 속에 떨어진 것 같은 나의 마음은 절망스러웠고, 내가 할 수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 떠나자. 

이혼했다고 수군댈까 봐 불안 해 하고, 학교에서 불리는 것도 싫다. 

그냥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시작하자  "


                                                                                                                                                        - by 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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