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학대 조사를 받다.
스웨덴의 여름은 정말 반짝하고 사라지는 것 같았다.
가을인가 싶었지만, 여전히 찬란한 햇빛과 초록이 넘쳐나고 있었다.
스웨덴은 집에 세탁기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건물에는 거주민들을 위한 공용 세탁실이 대부분 있다.
세탁기를 예약하고, 사용 방법을 알아내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빨래가 나의 업인 것마냥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는 공용 세탁실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그날도 열심히 빨래를 집어넣고 옮기며 말리고 있는데, 다음 시간을 예약한 사람이 일찍 들어왔다.
쭈뼛거리며 빨래에만 시선을 맞추는 나에게 그녀는 다정한 웃음으로 인사를 해 주었다.
첫 만남에서 으레 주고받는 이야기를 하는데
나의 두 번째 스웨덴 사람과의 인사였다.
그런데 어라 이상하다. 무슨 우연의 연속도 이럴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이 동네의 특징인가??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시간의 1/150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나는 벌써 이혼한 2명의 사람을 만났다.
이젠 더 이상 여행객 모드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하루하루를 낯선 곳에서의 초긴장 상태로 살아내고 있을 때,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학교의 연락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어지러운데, 언어 울렁증으로 나의 의식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지금 바로 학교로 와 달라고 했다. 이유는 와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뭔가 좋은 것은 아닌 게 확실했다.
허둥지둥 뛰어 온 나를 맞아주는 학교 담당자와 아동 관리원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있었다.
대뜸 놀라지 마라고 자기들은 경찰이 아니라고 나를 보고 말했다. 이 말이 나를 더 경직되게 만들었다.
스웨덴은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통역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 ( 이런 사회적 시스템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는 스웨덴 말로 인사법을 배우기도 전에 학교에 불려 갔다.
그리고 불려 간 이유는 아동 학대의 신고가 접수되었다는 것이었다. 세상에나!
나는 너무도 놀라고 당황했다.
학교에서 아이가 "엄마테 맞았다."라고 얘기했고, 학교에서는 이런 내용을 알게 되면 스웨덴 시스템 상
반드시 신고를 해야 하고, 신고가 접수되면 즉각 조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상황 판단을 위한 인터뷰를 위해 나를 부른 것이고, 이후 어떤 진행이 이루어질지는 다시 알려준다고 했다.
아이와 나에게 각자의 이야기를 듣고 이런저런 질문을 받았다.
나는 아이를 때린 적이 있었다. 그건 한국에서였다.
한국에서의 일로 지금 스웨덴에 와서 학교에 불려 갈 일인가 싶기도 했고, 점점 인터뷰가 길어지자 무섭기도 했지만 표정 관리가 안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는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스웨덴에서는 이처럼 아동 학대 사건이 접수되었을 때, 상황에 따라 그 즉시 아이와 분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아이를 추궁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도중 자기는 엄마테 맞은 적이 있다라고 얘기했고,
선생님이 그걸 듣고, 자기에게 정말 엄마에게 맞았니?라고 물어봤다고 했다.
아이는 아직 언어를 배우고 있었기에 의사소통에 오해가 있을 수도, 그리고 스웨덴은 아동 권익을 중요하게 생각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 들어 진정이 되면서 아이에게 말조심하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이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고 여겼다. 그. 러. 나 스웨덴은 이렇게 넘어가지 않았다.
우리는 그 후 다섯 번을 더 조사(?) 받았다.
그들은 아시아 문화를 이해한다고 했지만, 아이를 때리는 것은 스웨덴에서는 범죄라고 했다.
물론 한국에서 벌어진 것이지만 그래도 조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라는 신념으로 성실하게 임했다.
문화의 차이와 과거 한국에서 있었던 일이였음을 그리고 앞으로 스웨덴 법을 지킬 것임을 피력했다.
그러나 길어지는 취조와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했던 행동에 대한 반성보다,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나는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아이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아이의 훈육 방식 때문에 스웨덴에서 아시아계 가정들이 경찰에 신고되거나, 조사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한국도 가정 학대에 대해 인식과 제도의 많은 변화가 있다.
하지만 스웨덴은 정말 집요하고 철저했다. 우리의 인터뷰는 학교뿐 아니라 관련 기관에 계속 리포팅되었고, 종료 보고서(?)가 관련 기관에서 승인되고서야 나는 이 사건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 후 우리는 학교에서 주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느꼈다.
아이가 감기로 인해 며칠간 학교를 결석하다 다시 학교에 갔을 때, 아이는 감기 근육통으로 다리를 아파했다.
그런데 그날 바로 아동 관리국에서 나에게 연락이 왔다.
학교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혹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다행히 아동 관리국은 숱한 케이스를 보면서 프로의 감이 있는 건지 그저 안부만을 물어봤지만,
학교의 의심의 눈길은 나의 위통을 유발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거의 매일 선생님께 집에서 무얼 하는지 엄마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나는 숨통이 조여왔다. 어떤 의미에서건 레이더 안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도 불편하다.
완벽할 줄 알았던 꽃 병에 금이 가는 느낌이었다.
꼬부랑 꼬부랑 스웨덴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귓등으로 넘겨 듣었던, 공부도 때가 있다는 지혜로운 조상님들의 말을 온몸과 마음으로 겪었다.
그저 눈만 뜬 상태로 교실에 앉아 있었다.
교실에는 15명쯤 되는 다양한 인종과 나라의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이 나라에 와 있었다.
선생님은 30대 중반의 열정적인 남자분이셨다.
첫 수업 날 선생님은 자기소개를 했다. 이름과 이 일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스웨덴 어디에서 자랐는지 그리고 3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혼남이라고 했다.
스웨덴은 결혼하면 모두가 이혼하는 건가??? 뭔가 우연도 아니고...
한국 사는 그 긴 세월 동안 내가 직접 아는 이혼한 사람은 딱 2명이다.
인생 망했다고 울면서 절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아 달라던 초등시절 친구와 회사에서 유명했던 그분.
그런데 얼마 지내지 않은 여기에서 알게 된 사람들의 70~80%가 이혼을 했다.
하물며 스웨덴어 교재의 자기소개 부분에는 ( 4가지 다른 교재를 본 결과이다. ) 꼭 이런 문장이 나온다.
한국어로 이혼이라는 단어보다 스웨덴어로 이혼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말했다.
이혼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의 소개가 되었다.
한국에서 나는 "결혼했어요."는 자연스럽게 이야기했지만, "이혼했어요."는 결점 같았고 굳이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요즘 한국은 많은 것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TV에서 이혼 남녀의 데이트 프로그램도 나오고, 이혼 한 연예인들의 삶과 이야기를 보여주는 프로그램 등
시대가 바뀌어가고 있었으나, 불행히도 나의 삶은 바뀌기 전에 진행되었었다.
- by E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