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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기록 Feb 05. 2021

선릉역 19금 블루스


몇 해 전 선릉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할아버지의 날카로운 호통소리가 들렸습니다.




"여기가 니네집 안방이야!!!!!"



"니네집 안방에서 해!!!!"



"지하철역에서 이러지 말고!!!!"




그제서야 저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습니다.



서로 부둥켜안고 배와 허리를


쓰담쓰담하던 커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새파란 젊은 애들이였습니다.



부러웠습니다.


농담입니다. ㅎㅎ



플랫폼에 서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커플에게 향했습니다.



나는 속으로


'이제 저 할아버지 욕 보이겠다'


나의 최신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이라도 찍어야 되나 어째야 돼나,


초조하게 다음 장면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몸을 탐닉하기에 바빴던


커플은 두 손을 말없이


내려 놓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에~헤~!'


'이런 선남선녀 같으니라구!'



실추된 동방예의지국이


재연되는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장면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저는 이처럼 얄궂습니다.



안방에서는 이러지 않습니다.


엄연히 대외용입니다.



아무튼 할아버지 이날 운 좋으셨습니다.



이날 보신 커플은 요즘 들어


보기 드문 착한 청춘들입니다.



지하철용 스킨쉽은 어디까지인지


다시 생각해 보는 날이었습니다.




지하철용 스킨쉽 메뉴얼



1. 기쁜 일이 있을 때,


기둥 뒤에 숨어서


손을 꽉 맞잡는다.



2. 연인을 위로 해 줄때,


기둥 뒤에 숨어서


어깨를 토닥토닥 해준다.



3. 서로를 갈구 할때,


기둥 뒤에 숨어서


이글이글한 눈빛을 교환한다.



4. 애인이 귀여워 미칠 때,


기둥 뒤에 숨어서


머리를 쓰담쓰담 해준다.



5. 진한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


카톡창에 내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질펀한 문장을 지어 보낸다.




지하철내에서는
애정행각을 삼가합시다




이런 식상한 문구보다


살짝 돌려보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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