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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기록 Apr 11. 2021

친척 어른이 주는 용돈은 사랑이다

친척 어른의 용돈 대차대조표




이번 달 말에 자매들이랑 대이작도로 섬 여행을 가기로 했다.

우리 자매는 통영 바닷가 출신이라 바닷가에서 조개 캐고, 고둥 줍는 어로작업을 엄청 좋아한다. 언니가 연락을 하고 지내는 서울 사는 친척 어르신에게 섬에 놀러 간다고 했더니 본인도 조개 캐고 싶다며 갈 때 꼭 데리고 가라고 부탁해서 함께 가기로 했다.  한 다리 건너 고모지만 경비는 우리 쪽에서 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언니가 먼저 돈 얘기를 꺼냈다.

“고모가 요즘 사정이 안 좋대. 경비는 우리가 내자.”

이미 마음속으로 그러기로 했고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찌뿌둥한 기분을 숨길 수는 없었다. 어렸을 때 그 고모를 몇 번 뵌 적은 있지만 용돈을 받은 기억은 한 번도 없다. 


나는 돈에 무척 예민하고 연연해하는 사람이다. 돈은 피와 땀의 결정체이므로 누군가 그 귀한 돈을 나에게 썼다면 괜히 빚을 진 것처럼 마음이 쓰인다. 

사람들은 계산적인 사람을 좋지 않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진짜 염치없는 사람을 못 만나서 하는 말이다. 살다보면 계산적이지 못한 사람에게 더 화가 난다. 상대방에게 부탁을 했다면 보답을 하는 것이 계산적인 것이다.  이유 없이 베푸는 사람은 로또 2등 확률로 거의 없기 때문에 계산적인 것이 사람된 도리다. 


오늘은 누구는 넘치게 받았거나 누구는 구경도 못해 본 친척 어른이 건넨 용돈에 대한 얘기를 해 볼게요. 


어쩌다가 통영 큰집에 가게 되면 언니들이 큰어머니께 용돈 좀 드리라고 옆구리를 찌르는데 그때 나는 마음이 무척 복잡해진다.


‘받은 게 있어야 드리지.’


내가 어렸을 때 큰댁 어른들은 울 언니와 나를 그렇게 본인 농사일에 부려 먹었다. 통영 시내에 사는 큰댁 어른들이 농번기 때 시골에 오시면 나와 언니는 큰집 논에 자동 소환 되었다.

가면 큰집 어른들이 먹다먹다 못 먹어서 남긴 충무김밥을 먹으라고 주며 해가 질 때까지 일을 시켰다. 그리고는 고생했다고 1000원 한 장을 안 주고 갔던 게 대부분이었다.

이게 바로 아동노동착취이자 곧 범죄다. 


어느 추운 11월, 유자를 수확할 때 박스에 주워 담고 버스정류장까지 리어카를 밀어드렸을 때 큰아버지는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세 장을 건넸다. 이 돈은 저축하라는 덕담도 잊지 않았고 나도 그 순간을 여태 잊지 않고 있다. 


마치 그 분은 베풀고 나는 불로소득을 얻어가는 것처럼 만들었다.

3천원은 노동의 댓가지 용돈이 아니다. 

큰집은 친척 중에서 탑으로 잘 살았다.

큰집 오빠 언니들은 시골 논두렁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 생각해보니 당시 친척 어른들의 입장도 이해 안 되는 건 아니다. 찰스램 수필선, <기혼자의 거동에 대한 미혼 남자의 불평> 편에 나오는 아이에 대한 묘사를 빌리자면,


‘아이들은 그다지 귀한 것도 아니고 거리마다 뒷골목마다 구더기 끓듯 하는 게 아이들이며 째지게 가난할수록 쪽박에 밤 담아놓은 꼬락서니다. 결혼했다 하면 최소한 이런 떨이물건 같은 것 하나쯤 못 갖는 사람이 없다. (중략) 

가령 아이라는 것이 1년에 하나밖에 태어나지 않는 불사조 새끼라면 뻐길 구실이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들이란 너무 흔해빠진 것이거늘 (생략)’ 


어른들도 아이들이 많은 친척 집에 들르는 게 부담스럽고 곤욕스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 지인은 시골 친척집에 가면 어르신들께 용돈을 드려야 하는 게 가장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 지인도 어렸을 때 받은 용돈이 없어서 5만원 앞에서도 번뇌에 시달렸다.   

나를 속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용돈을 준 친척어른들만 좋게 기억된다. 솔직히 내 이름 불러 주고 관심 가져주고 좋아해줬던 친척만 나에게 용돈을 줬던 거 같다. 용돈을 안 줬던 친척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마음 가는 곳에 돈이 간다. 세상 진리다.

어렸을 때 나에게 용돈을 준 친척이 그리 많지 않아서 어떤 분이 얼마를 줬는지 모든 기억은 흑백인데 돈 색깔만  칼라 사진 처럼 남아있다.

용돈이란 주제로 세상 착한 내 친구와 얘기한 적 있는데 그 친구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고등학생 때 유독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용돈을 잘 챙겨주던 삼촌이 계셨는데 이제 내 친구가 돈을 벌어서 그 삼촌의 자식에게 몇 십 만원 상품권을 선물로 주면서 전혀 아깝지 않았다고 했다. 


어렸을 때 친척 어른에게 받는 모든 돈은 빚이라고 생각하고 내 아이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은 네가 어려서 이모, 친척들에게 용돈을 받지만 네가 어른이 되어 돈을 벌면 그때는 네가 이모들한테 용돈을 드려야 되는 거야.”


나중에 내가 할머니가 돼서 복잡한 맘으로 건네는 조카 용돈을 받으면 그 돈이 밤송이 가시일 거 같다.


사랑도 받은 아이가 사랑을 베풀 줄 알고 돈도 받아봐야 그 돈을 다시 베풀 줄 안다.

친척 아이에게 용돈 주는 것을 아끼지 말자.

가끔 만나는 친구 자식에게도 용돈을 쥐어주자.

이런 돈은 곧 사랑이다.

애들이 더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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