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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기록 Nov 13. 2024

나의 이상적인 장례식 풍경

 



  어렸을 때 시골에서는 장례식을 집에서 치뤘다. 마을에서 꽃상여가 하나씩 지나갈 때 긴 장례 행렬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구슬픈 상엿소리까지 더해져 퍼레이드 공연을 보는 듯 했다. 마을의 유지이거나 부잣집일수록 장례 행렬은 길었다. 사람이 죽으면 으레 꽃상여를 타고 저승길로 가는 줄 알았는데 내 부모의 장례식은 남사스럽게 초라했다. 


5년 전, 후천적 인척관계로 두 번 본 젊은 여성이 돌연히 세상을 떠났다. 결혼하고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마지막으로 친지의 돌잔치에서 그녀를 봤을 때 날씬하고 예뻐져 있었다. 연한 핑크 립스틱을 바른 입술과 맞지 않게 표정은 어두웠다. 유산을 하고 한동안 마음이 힘들었다는 얘기를 툭툭 내려놓았다. 성정이 밝고 털털해서 그녀의 급작스런 죽음이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의 장례식장에 친언니가 다녀왔다. 언니는 젊은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장례식을 총평했다. 



“걔가 성격이 좋아서 친구들이 많이 왔더라. 친구들이 많이 오니깐 보기가 좋더라.”



‘보기가 좋더라.’

이런 얘기를 들으면 친구가 거의 없는 사람은 위축된다.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오래 살아서 내가 알던 사람이 모두 죽고 난 다음에 죽을까? 죽지 말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까? 

가끔 내 장례식에는 누가 올까? 궁금해진다. 몇 년 전, 우정테스트로 본인 장례식에 누가 오는지 보려고 SNS에 죽은 척 하며 부고장을 올렸다는 해외기사를 봤다. 양치기 소년이 되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짜 장례식에 와 준 친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차비라도 줘서 보냈다는 훈훈한 마무리였길 바란다. 



친구관계에 관한 어느 유튜브 영상 아래 달린 수많은 댓글 중 하나에 뜨끔 했다. 

'죽어서 친구 한 명 안 오면 친척 보기 망신이지 않냐? 인생을 어떻게 살았길래 친구 한 명이 없냐?' 

한국은 남들에게 보여 지는 체면치레가 중요한 사회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가보면 사람이 많이 와도 뒷말이 있고 사람이 적게 오면 더 많은 뒷말이 있다. 말 많은 사람들을 안심 시켜 줄, 뒷말 방지용으로 하객 알바, 조문객 알바라는 게 있다. 하객알바도 수요와 공급 법칙에 의해 공급이 넘치는지 알바비가 2~3만원으로 저렴했다. 하객알바가 께름칙한 부분이 사진촬영이다. 모르는 부부 결혼식 사진에 영원히 박제된다. 예쁘게 차려 입고 왔어도 사진촬영을 안 하면 0원. 시간, 노력, 초상권 제공 대비 손해 보는 거 같은데...



결혼식 단체사진을 보고 아이가 묻겠지.

엄마 이 사람은 누구야?

돈 주고 샀다.

뭐?

엄마 장례식장에 엄마 부끄럽지 않게 조문객 알바 10명만 붙여다오.

엄마 유언은 그거 하나다.



죽은 사람은 자신의 장례식에 올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마지막까지 배려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사돈의 팔촌까지 부르는 대규모 결혼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가족끼리 하는 작은 결혼식이 추세다. 요즘은 더 간소화 돼서 혼인신고만 하는 젊은 부부도 늘어난다고 한다. 시대에 맞게 장례식도 작은 장례식으로 갔으면 좋겠다.


옛 일본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달빛 아래, 떨어지는 벚꽃 잎을 보며, 다다미 위에서 죽고 싶다’


'자다가 죽고 싶다'며 구전민요처럼 부르는 한국 정서와는 많이 다르다. 죽음까지도 아름답게 연출하는 일본의 정서가 내심 부러웠다. 일본 사람에게 물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시도 있었냐며 처음 듣는다고 했다. 현재는 이 말을 쓰지 않는 모양이다. 저 시가 나오고 몇 세기가 지난 지금은 환한 전등 아래, 떨어지는 수액 방울을 보며 병원 혹은 요양원 침대에서 죽는 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인생의 마지막을 요양원에서 보내길 원치 않는다. 아프면 병원비로 쓰려고 돈을 꼭 쥐고 있어도 자식들이 가만 두질 않는다. 내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겠지만 고독사 하지 않고 따뜻한 방바닥의 온기를 느끼면서 죽는 게 삶의 마지막 목표다. 굶어 죽으면 죽었지, 얼어 죽기는 죽기보다 싫다. 



죽음은 내가 연출 한다 하더라도 장례식은 내가 죽은 후, 남은 자의 소관이라 어쩔 도리가 없다. 따사로운 5월의 햇살 아래 내 관 뚜껑 위는 장미꽃으로 뒤덮이고 까만 드레스를 차려입은 조문객들이 고개 숙여 울어주는 장례식을 꿈꾸지만 현실은 벽제화장터 화장로에서 2시간 만에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봐야겠지.



그나저나 죽어서 뒷말 안 나오게 조문객 알바라도 사둬야 하나?

친구가 밥 사주고 커피 사주는 건 다 자기 결혼식, 장례식에 와달라는 무언의 뇌물이다. 밥, 커피 다 얻어먹은 친구가 결혼식에 안 오면 손절한다는데 장례식에 안 왔다고 손질 할 수도 없으니 분통 터지는 일이지.



아들아, 

유언에 한 줄 추가한다.

내 장례식에 온 친구들에게

거마비 좀 챙겨드려라.



어렸을 적 봤던 꽃상여를 꾸몄던 종이꽃 색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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