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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Dec 29. 2020

발목에 금이 가다

내 생일을 하루 앞둔 2주 전... 유치원 계단에서 발목을 접질렸다. 오른발이 안쪽으로 90도 꺾이면서 우두둑 소리가 들렸다. 너무 아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물이 나도 모르게 주룩주륵 흘렀다. 지난여름에는 가만히 서 있다가 자전거에 부딪혀서 오랫동안 아팠는데... 또 이렇게 사고가 나니 억울함이 밀려왔다. 왜! 왜! 왜! 나한테만 사고가 끝이지 않는 거야!! 아픈 것보다, 억울함과 분함 때문에 눈물이 주르륵...


나를 본 유치원의 엄마들이 놀라서 달려왔다. 나를 부축해서 일으켜주며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갈 수가 없었다.

"막내가 지금 집에서 자고 있고, 봐줄 사람이 없...."

말을 끝까지 잇기 힘들었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내 상황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나를 애잔하게 바라보는 엄마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발목이 뻐근했지만, 막내가 그 사이 깰까 봐 집으로 서둘러 갔다. 집에 도착하니 막내는 아직도 꿀잠을 자고 있다. 안도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발목에 통증이 밀려왔다.


바닥에 철퍼덕 주저 앉았다. 다시 일어서려고 해도 발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너무 아팠다. 다시 한 번 더 눈물이 났다.

"병원에 가고 싶어. 흑흑 흑흑"


엄마가 서럽게 우니, 첫째는 엄마 괜찮아?를 반복하며 물었고, 둘째는 실실 웃기만 한다. 아픈 엄마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나는 억울함과 처량함과 통증이 합쳐져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남편이 생각이 나서, 카톡으로 연락을 했다.

'오빠 나 다리를 삐었어. 너무 아파서 걸을 수가 없어.'

'빨리 병원 가!'

'애들이 있는데 어떻게 병원 가는데!!'

심신의 위안을 얻고자 했던 나의 시도는 남편에 대한 분노만을 불러일으키고,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내 신세를 몰라주는 남편이 야속했고, 그런 내 신세가 한탄스러웠다.


이웃에 사는 분들에게 연락을 했다.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감사하게도 나를 도와주러 한달음에 와주셨다. 이웃집에 아이들을 맡기고 또 다른 이웃 언니가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주었다. 의사가 말하기

"발목에 금이 갔습니다."


나는 반깁스를 하고 있다. 5주 동안 깁스를 해야 한다는데 2주밖에 지나지 않았다. 집에서는 바퀴 달린 의자를 밀고 다니고, 병원 갈 때는 목발을 짚고 다닌다. 다리 하나를 쓰지 못하니 일상을 영위하는 일 모두가 도전이다. 화장실 한번 가는 것도, 손을 씻는 것도, 반찬을 만드는 것도, 옷을 갈아입는 것도. 발목에 뭔가가 닿지 않도록 천천히 움직이며 온 신경을 써야 한다. 첫 일주일은 너무 피곤해서 목과 혀가 붓고 귀가 아팠다.


내가 움직이질 못하니 산책 가길 좋아하는 셋째가 매일

"산책 가고 싶어"

라고 말한다.

"엄마가 발이 아파서 못가"

라고 말하면 셋째는 내 발에 호~해주며

"여기가 아파? 내일 산책 가자. 내일."

이라고 말한다. 그런 셋째를 보며 미안함이 밀려온다. 엄마는 내일도 못가는데...


마당에라도 나가고 싶어 하는 셋째.  나가지 못하는 엄마. 엄마를 대신해서 둘째가 셋째의 신발을 신기고 손을 잡고 마당에 나간다. 첫째는 친구들을 쫓아 뛰어간다고 동생들은 안중에도 없다. 다섯 살 둘째가 세 살 셋째를 챙긴다. 그러다가 10분도 안돼서 우는 셋째 손을 잡고 둘째가 들어온다.

"엄마, 나 인이때문에 너무 힘들어. 놀 수가 없어. 오빠는 인이 안 챙겨."

둘째도, 셋째도 짠하다. 둘째에게

"엄마가 인이 볼 테니깐 율이는 나가서 놀아. 인이 봐줘서 고마워."

둘째는 홀가분하네 날아간다. 나는 울먹이는 셋째를 무릎에 앉혀 꼭 안아주니 셋째가

"쎄쎄쎄 하자"

나는 얼른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아침 바람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셋째는 어느새 눈물을 그치고 손바닥에 글 쓰는 동작을 기다린다.

"우리 선생님 계실 적에 엽서 한 장 써주세요."

셋째는 웃으며 엄마 손에, 자기 손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린다.


발목이 다친 나는 많은 것을 못하게 되었다. 영양가 있는 반찬도 못하고 집을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하며 같이 놀아줄 수도 없다. 또 머리도 예쁘게 빗어주지 못하고, 아이들이 왜 우는지 볼 수도 없고, 대신 뭔가를 해줄 수도 없다. 그저 지금의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울며 오는 아이를 안아주는 것. 못 하더라도 지켜봐 주는 것. 이해할 수는 없지만 재밌다고 말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이다.


내가 왜 다리를 다쳤을까... 를 생각해봤다(생각해내지 않으면 억울함에 잠을 못이룰 것 같아서). 내게는 엄마로서 가졌던 수많은 의무들이 있다. 예상치도 못하게 그 의무들을 다 하지 못하는 상황이 왔다.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해줘야 한다... 는 의무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니, 내게 남는 것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견디는 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배운다. 그간 나는 아이들이 우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아이들을 기쁘게 해 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다치기 전 몇 주 전의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나는 아이들이 울어도 그저 안아줄 수밖에 없고, 아이들이 심심해해도 기다려줄 수밖에 없고, 아이들이 기뻐하면 지켜볼 수밖에 없다. 상황을 바꾸는 것보다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큰 인내를 요하는지 하루에 수백번 경험하고 있다.  나는 지금 아이들이 스스로 만든 상황을 지켜보고 믿어주며 견뎌내는 시간을 배우는 중이다.


신이 저기 저 멀리서 나를 내려다보며 '쯧쯧, 그렇게 말을 해줘도 못알아듣네. 애는 다리가 다쳐봐야 신뢰와 인내를 배울 수 있겠어. 이 고집불통'이라고 여겼나보다.

하하하하하. 신은 너~~어~~무 나를 사랑하셔. 버거울 정도로 말야.


다사다난했던 2020년을 이렇게 버라이어티하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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