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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치찌개 May 04. 2019

담담한 위로가 필요할 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퇴사 후, 다음날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여행 첫날 갑자기 비염이 심해져 콧물과 재채기로 숨을 쉬기 힘들었다. 약기운에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오름을 걷고 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는데 다행히 손님이 많지 않아 조용했다. 게스트하우스 안에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작은 다락방이 하나 있었다. 게스트하우스는 이용 규칙이 까다로운 편이었는데, 다락방만은 소등시간 없이 누구나 계속 이용할 수 있었다. 나는 짐을 풀자마자 잉여룸이라는 이름의 다락방에 올라갔다. 그곳에는 만화책이 작은 벽을 가득 채우고 있고, 오래된 테이프와 카세트가 있었다. 주로 90년대 힙합 음악이 많은 것으로 봐서 주인장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오락기와 피규어들이 가득했고, 코타츠(테이블에 담요를 덮어 사용하는 일본식 난방기기)와 좌식의자가 있었다.


나는 왠지 그곳이 매우 끌렸다. 사실은 하루 종일 그 방에 틀어박혀 만화책만 보고 싶었다. 그러나 모처럼 친구들과 함께 간 여행이니 시간이 아까워 하루 종일 제주도를 누비고 다녔다. 저녁식사 후 친구들이 잠자리에 들 때쯤 나는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코타츠를 따뜻하게 데워놓고 손에 만화책을 들고 있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거기서 처음 ‘마스다 미리’를 만났다. 마스다 미리의 책 여러 권이 책장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별생각 없이 제목에 이끌려 “아무래도 싫은 사람”을 집어 들었다. 아마 나는 그때 누군가를 떠올렸던 것 같다. 내가 몇 달 동안 지옥 속에 사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 사람. 결국 퇴사를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사람. 어떻게 이렇게 섹시한 제목을 지었을까 싶었다. 나는 단숨에 책을 다 읽어버렸다. 다음날엔 “주말엔 숲으로”를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또 다른 누군가를 떠올렸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며 유쾌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처럼 혼자 시골에 내려가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이 떠올랐다.


'공기같은 협박'이란 말이 가슴에 꽂혔다. 아무래도 싫은 그 사람이 자주 쓰던 방법!


마스다 미리의 책에는 몇몇 인물이 등장하는데, 모두가 주인공인 느낌이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고, 그 안에 삶의 무게와 쓸쓸함, 그리고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마스다 미리는 살면서 느끼는 어려운 감정들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그 너머에 작은 즐거움을 보게 해 준다. 여행에서 만난 이 두 권의 책으로 마스다 미리는 나에게 인상 깊은 작가로 남게 되었다.


방법이 아니라 어딜 가고 싶은지가 포인트!


집으로 돌아와 백수의 시간을 보내던 중, 우연히 마스다 미리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담담한 이야기가 또 듣고 싶어서 바로 서점으로 향했다. 제목은 “걱정 마, 잘 될 거야”. 직장생활을 하는 세 명의 여성이 등장하는데, 조직 내에서 세대별로 느끼는 감정을 다루고 있다. “아무래도 싫은 사람”처럼 강렬한 제목은 아니지만, 가부장적인 동양문화에서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의 지점들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걱정 마, 잘 될 거야”를 읽으면서 백퍼센트 모두 공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일반적인 기업이 아닌 분야에서 일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2년 차, 12년 차, 20년 차 직장인 세 명을 주인공으로 해서 세대별로 느끼는 어려움들을 그려낸 점이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세대 간 갈등을 겪고 있지만, 그걸 객관적으로 놓고 이해하려는 노력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연차별로 다른 태도를 갖고 다른 어려움을 느끼겠지만, 그것 또한 세대별로 다르고, 지금도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그 사람의 현재가 나의 미래임을 깨달았을 때 절망감이 든다면, 퇴사해야 할 때!


이전 직장에서 나는 확실히 밀레니얼 세대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희생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선배 세대들은 그들이 만들어놓은 시스템 속에서 내가 느끼는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했다. ‘말’로는 이해한다고 했지만, 몸으로 보여주는 ‘행동’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입으로 ‘말하는 것’과 ‘보여주는 것’이 다른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것이 위선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동안 몸과 마음이 다쳤다.


작가 은유는 <다가오는 말들>에서 “삶은 그저 살아가는 것이지 불행해지기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듯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 충족은 또 얼마나 금세 냉소로 식어버리는가.”라고 했다. 나는 이런 담담한 말들에 위로를 받는다. 섣부른 희망과 과장된 의미들은 늘 삶을 지치게 만들었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그런 담담한 위로와 같다. 거창한 에피소드도 허세도 없지만, 일상의 피로를 유쾌하게 넘기는 당당함 같은 게 있다.


퇴사 후 몇 달 동안 아픈 몸을 치료하고, 내 마음이 왜 힘든지 들여다보며 지냈다. 또다시 상처 받고 싶지 않아서 아직도 겁이 난다. 그래도 마스다 미리의 담담한 독백이 위로가 되었다. 마음이 아플 때 마스다 미리를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마스다 미리, "걱정 마, 잘될 거야", 2019, 이봄.

마스다 미리, "주말엔 숲으로", 2012, 이봄.

마스다 미리, "아무래도 싫은 사람", 2013,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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