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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밍밍 Oct 13. 2024

지나고 보니 나에게 꼭 필요했던 이별 2

거짓말하는 남자들은 왜 화를 내지? 헤어진 남자 두 번째 이야기

 

거짓말을 하는 남자의 눈을 들여다본 일이 있을까?

눈빛이 심하게 흔들리고, 불안해 보인다.

순수하다고 해야 하나?

이것도 이를테면 큰 범위의 ‘소년미 썸띵라익댓’?


15층에서 내려다본 그의 걸음은 종종거리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에게 간절히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싸우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무슨 일이지?’


벌써 시간은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삐삐삐삐삐삐’


현관문을 열고 들어 온 그가 내가 빤히 현관 쪽을 쳐다보고 있자 깜짝 놀란다.


“아오씨. 안 자고 뭐 해?”


“잘 시간은 아니지. 오빠야말로 바깥에서 누구랑 그렇게 길게 통화했어?”


“어? 내가? 통화? 누구랑?”


당황한 낯빛을 감추려고 화를 낸다.


“누구랑 통화하는지 알았는데? 아니야? 아님 말고.”


태생이 비둘기새가슴 평화주의자 INFJ인 나는

싸움이 날 것 같은 상황을 견디지 못하므로,

상대방이 아니라고 화를 내기 시작하면 알겠다고 수긍해 준다.


“나 씻을게.”


“어. 잠깐만 근데 휴대폰은 왜 들고 들어가? “


“게임하려고.”


“씻는다며?”


“어. 게임하면서 똥 싸고, 샤워할 거야.”


“아씨 누가 그렇게 구체적으로 알려달래. 알겠어.”


나는 15평의 작은 아파트 샤워실 밖에서 이 남자가 할 일을 다 마치고 나와서 나와 이야기할 것이 있을 것만 같아 불안하게 서성거렸다.


문이 갑자기 덜컥 열린다.

뜨거운 수증기가 바깥으로 훅 끼쳐서 잠시 따뜻한 온기가 스친다.


“야 거기서 뭐 해?”

짜증스럽게 그 남자가 휴대폰을 문 앞에 내려놓는다.


좁은 화장실 안에서 샤워를 하다가 휴대폰에 물이 들어갈까 봐 문 바깥에다가 놓은 거였다.


비밀번호도 잠겨 있지 않았던 폰.

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볼 것인지 한참을 고민했다.

이 남자와 동거하는 동안,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기에.

그것은 서로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관계를 유지한 노부부처럼 서로에게 관심이 없어져 느슨한 친구 같은 사이였기 때문이다.


샤워기의 물소리가 잦아든다.

이제는 결정을 해야 한다.

‘아씨 몰라.’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사진첩에 찍힌 그의 사진.

좀처럼 어색하다며 사진을 찍지 않는 그였기에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앳된 여학생의 사진.

설마.. 그는 고등부 수학강사였다. 가르치는 학생들 중 과하게 애정을 표현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빼빼로 데이에 집으로 들고 온 빼빼로를 도토리인 양 다람쥐처럼 겨울 내내 먹기도 했으니까.


더듬이가 슬슬 촉을 내세운다.

‘물어볼까 누군지?’


샤워를 마치고 난 그가 밖으로 마침 나온다.

‘얘 누구야?’

기습적으로 얼굴 앞에 휴대폰을 들이대며 묻는 나에게, 그는 지을 수 있는 가장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응수했다.


“너 남의 휴대폰을 왜 봐?”

목소리가 떨리고, 얼굴은 잔뜩 화가 나 있다.


나는 더 이상 공격을 못하고, 주저앉았다.

왜인지 모르겠는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수업이 있다면서, 급히 나가던 그의 뒷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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