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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친테이블 Dec 05. 2019

알코올 없이 취하는 밤

세 번째 기억, 막걸리와 총각김치


세 번째 기억, 겨울부터 겨울까지.

첫 번째 알코올의 기억을 열여섯에서 시작했지만, 오늘은 아주 많이 어려지로 하자.


따뜻했던 방이었다. 아랫목과 윗목이 있었는데 나는 가장 따듯한 곳에 앉아 있었다.

나는  어릴 적 기억이 거의 없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그렇게 커서 여덟 살이 되어 초등학교 생존기부터 내 기억의 역사가 시작되었을 뿐 그 이전의 기억은 어렴풋이 몇 가지 감각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기억에 남은 감각 하나가,  따뜻하고 편안했던 기억이다.

아랫목을 차지하고 앉은 '겨울 삼촌'은 내게 무릎을 자주 내주었다. 아랫목의 공기는 윗목의 공기와 달라 코끝이 시리지 않다. 아랫목 군데군데 시커멓게 탄 장판의 열기는, 보이는 그대로 한 번씩 극단을 달렸다. 그런 극단을 지그시 누른 삼촌의 무릎 위는 지금까지 앉아 본 어떤 소파와 비할 바 없는 안락함이었고, 그 주변을 떠도는 적당한 온도가 결합해 온전하고도 유일한 한 가지 감각이 되었다.


나는 수줍음이 많았고, 내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 뭐가 기쁜 건지 뭐가 싫고 좋은지...... 그런 것들 표현하지 못했을 뿐이었는데 내 감정들은 그런 나를 견디지 못했다. 이불을 덮고 누우면 눈고리를 타고 눈물이 터져나올 때가 종종 있었다. 어린 내가 왜 그런 숨죽인 울음으로 감정들을 흘러보내다 잠이 들어했는지. 끔 머리끝까지 뒤집어 쓴 이불이 들썩들썩거리는 장면이 떠오를 때면 그 시절의 내가 조금 가엽다.

어른이 되어서 알게 된 것은, 내가 단지 조용한 애어른이어서 수월하게 나를 대했다는 거였다. 나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나온 감정의 배설물조차 혼자서 닦아냈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저 무난하고 무던한 아이였다. 그 조용한 모습은 때로는 무력한 아이로 보이게 했고, 때로는 그 인내를 배려라고 마음대로 생각해버렸던 거 같다. 난 그저 아이였을 뿐이었지만, 모두 서툰 어른이었기 때문에 나는 꽤 오랜 시간 무채색이었다.


삼촌은 아랫목이 유난히 뜨끈했던 집에도 왔고, 우리가 몇 번의 이사를 했을 때도 찾아왔다. 한 손에는 검은 봉지를 들은 채였다. 우리집 문을 열 때마다 수줍어했다. 바깥의 찬 공기 때문인지 볼이 빨개진 탓이기도 했을 거다. 삼촌은 겨울이면 그렇게 우리집을 찾았다.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는 검정 봉지 속 막걸리를 꺼내  마셨다.


엄마는 느닷없이 찾아온 삼촌에게  무엇이든 내오고 싶어했다.

두부를 데쳐 김치와 함께 내오기도 했고, 계란후라이 했고 오이를 버무렸다. 갓 지은 무언가를 대접하고 싶어한 엄마 마음과는 달리, 삼촌은 뭐든 듣지도 보지도 않고 한사코 거절만 했다.

엄마가 먹거리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삼촌과 마주 앉았다.

오랜만에 본 친구가 거리를 지나가면 반가운 마음이 있어도 알은 체를 하는 데에 큰 용기를 내야 하는, 너무 작은 울림통을 가진 내가 나 스스로도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삼촌은 내가 그런 용기를 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나를 먼저 불렀고, 검은 봉지 속 월드콘을 꺼내 나를 제일 먼저 챙겼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나는 단 한 번도 먼저인 적이 없었는데 삼촌은 나를 늘 먼저로 생각해주었다.

삼촌은 겨울 밤에 우리 집을 찾았다. 아빠가 있던 날도 있었고 없던 날도 있었지만 나는 늘 있었고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는 나를 보러 온 삼촌이 고마웠다.

아빠가 없는 날은 삼촌 혼자 막걸리를 마셨다. 엄마가 바로 만든 반찬은 한 두 번만 손을 대었다. 그건, 지금 생각해보면 삼촌의 지나친 배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삼촌이 맛있게 먹으면 엄마는 계속 안주를 만들게 될 거고, 그러면 삼촌이 찾아올 때마다 엄마가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삼촌은 잘 익은 총각 김치를 맛있게 먹었다.


나는  술맛을 전혀 몰랐고 당연히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술을 마시면 감정들이 들쑤시고 올라온다는 사실을 보게 된 것 같다. 적당한 삶으로 덮어둔 내밀한 감정들이 코올에 닿으면 파닥거린다는 걸 나는 눈으로 배웠다. 그리고 그 파닥거림이 생명력으로 파닥거리는 것이 아니라, 소금밭 위에 놓인 생새우의 최후같은 파닥거리늗 고통이라는 것도.


삼촌은 막걸리 한 병을 다 비워갈 즈음이 되어서야 두툼한 잠바벗어 방바닥에 두곤 했다. 삼촌이 잠바를 벗을 때, 이제 막 바깥에서 도착한 사람에게서 나는 차가움과  모래나 쇳가루 같기도 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맡을 때면 나는  삼촌의 삶은 끝까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라는 기분이 들곤 했다. 당연했다. 누군가의 삶을 우리가 감히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촌에게서 느껴지는 그 아뜩한 요원함은 어린 내게까지 전해지는 슬픔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막걸리 한 병이면 겨울삼촌의  겉옷을 벗게 한다는 사실에서, 어깨에  잔뜩서린 긴장을 녹여주는 묘한 기운이란 게 있구나 싶었다.

아빠가 술취해 들어오는 날 밤이면 어른들은 왜 술을 마실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삼촌의 막걸리를 보면, 안마기능이 있는 드링크류쯤  되어 보였다.  


막걸리를 두 병 쯤 마실 때 쯤부터 이야기를 했다.

총각 김치 한 입 베어 무는 소리, 또 막걸리를 들이키고는 소리가 참 맛있었다.  때부터 나는 알코올 없이도 삼촌의 이야기에 같이 취했다.

 

삼촌은 여동생 이야기와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신내림을 받은 어머니 이야기, 어머니가 너무 용해서 정치인들과 유명한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는 이야기. 공부를 잘 하는 여동생 이야기, 예술의 전당인지 마당 어디 쯤에서 일하 여동생이 하는 멋진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내내 집밖을 떠돌아야 했던 삼촌의 유년기는 나중에서야 엄마에게 들어야 했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와 삼촌이 단 한 번도 꺼내 본 적 없는 이름, 아버지.

"그렇게 모아진 돈이 모아질 리가 있어? 껍데기 뿐인 거지."

 그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엄마에게 화가났었고, 삼촌 어머니의 죽음 이후 삶을 깎아 먹듯이 괴팍하게 사라져버린 돈들과 거만한 운명인지 세상의 이치인지가 치떨리게 싫었다.

아빠의 고향 후배인지, 총각시절 망우리 하숙집에서 밥을 나누어 먹었다던 동생, 겨울 삼촌.

삼촌은 막노동판에서 철근을 절단하다가 사고로 오른팔을 못쓰게 되고부터, 겨울 삼촌은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삼촌은 나를 알아 보았다. 나도 삼촌을 알아보았다. 그건 불균형이었다. 삼촌이 가지고 있던 절뚝거림의 불편함과  비틀린 불균형들을.


막걸리 두 병은 절뚝거리며 단정하게 걸으려 했던 삶의 긴장을 휘청거리게 풀어냈다.


한 쪽 팔로도 술잔을 기울일 수 있겠지만 삼촌 삶에 다시 한 번 주어진 불균형은 겨울의 찬 공기를 뚫고 따뜻한 공기로 향하는 마음마저 가져가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끔씩 알코올 없이도 취하는 밤을 보내기도,

막걸리 두 병과 총각김치를 먹으며 휘청거리게 삶의 긴장을 풀어내기도 한다. 나도 삼촌처럼 서툰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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