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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친테이블 Nov 16. 2020

소주 한 병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무게에 대하여



나한테 소주는 먼저 생각나는 술은 아니다.


안주가 술을 부르기도하고 술이 안주를 부르기도 하는데, 소주는 처음에는 안주가 부르는 술이었다가 나중에는 오로지 소주를 위한 로만 남는 마력을 지다. 마치 게스트로 출연하였다가 호스트가 되는 격. 게스트로 초대된 소주는 가볍게 휘발되어 버리는 이야기를 던지다가 어느새 호스트가 되고 무게를 실어 이야기를 풀어낸다. 삶의 언저리의 이야기는 신철규님의 시의 구절을 감히 인용해도 될지 모르겠지마는,

'어떤 눈물은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처

그렇게 한바탕 눈물을 떨구는 무게를 지녔다.


술자리의 최고 진상 중의 하나인 주사를 부리고 난 다음 날이면 부은 얼굴로 머쓱해지기도 하지만

전날의 서사는 알코올과 함께 휘발되고 함께 나눈 이야기에서 느낀 감정의 연대로 똘똘하게 뭉쳐진 마음이 된다.  그게 소주의 매력이다.


연어와 광어를 포장한다. 회는 흔하게 먹는 안주는 아니지만 흔하게 먹는 횟감에 소주 한병을 들고 병목을 잡고 뜨르르륵, 시원하게 돌린다.

그리고 첫잔을 따를 때의 공기반, 소리반의 청아한 소리를 듣는다.


나도 k도 그 소리를 좋아한다.

술 한잔을 따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맛있는 저녁과 함께 소주 한잔을 곁들일 수 있는 일상에 대한 감사.


K에게 한잔의 술을 더 따랐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을

오늘, 하지 않기로 한다.

나도 다시 한잔을 더 받는다.

기울어진 병목을 바라보면서

별로 죄송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숙이며 일했던 순간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귀가

소주병에 새겨진 것을 보면서

어떻게 된 영문일까 생각하다가,


'하루가 저무는 저녁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어쩌면 그러한 사색은

소주한병으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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