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크리스마스다. 평상시 같으면 다이어리가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과 만날 약속으로 가득 차 있을 텐데 올해는 썰렁하기만 하다. 이게 다 코로나 19 때문이다. 만날 수 없다. 만나서는 안된다. 전화로 목소리를 듣거나, 카톡과 소셜 미디어로 안부를 전하거나, 팀즈나 줌 등으로 랜선 회식을 하며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가족과 함께하는 조촐한 홈파티는 더없는 즐거움이 된다. 특별한 음식으로 식탁을 차리고, 평소와 다른 와인으로 분위기를 내 보는 것은 어떨까. 혹은 늦은 저녁 한잔 술과 함께 허전한 마음을 달래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쨌거나 가무는 포기해도 음주는 포기할 수 없는 게 바로 당신 아닌가. 그런 당신에게 두 가지 주정강화 와인을 추천한다. 조촐한 홈파티를 위해, 혹은 혼술을 위해.
즐거운 홈파티엔, 뮈스카 드 리브잘트(Muscat de Rivesaltes)
마트에서 가장 잘 팔리는 와인 중 하나가 바로 모스카토 다스티(Moscato d'Asti)다. 향긋한 꽃향기와 달콤한 과일 풍미, 가벼운 기포가 실어오는 적당한 단맛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싫어하기 어려운 직관적으로 '맛있는 와인'이다. 혹자는 '최고의 작업주'라고도 하던데 거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5% 안팎의 알코올로는 쉽게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 작업주로 기능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을 맞춰 주는 와인이 있으니, 바로 뮈스카 드 리브잘트다.
뮈스카 드 리브잘트는 뮈스카 블랑 아 쁘띠 그랭(Muscat Blanc à Petits Grains)과 뮈스카 달렉산드리(Muscat d'Alexandrie) 품종으로 양조한다. 뮈스카 블랑 아 쁘띠 그랭은 바로 모스카토 다스티를 만드는 모스카토 비앙코(Moscato Bianco)와 같은 품종. 잘 익은 뮈스카를 수확해 발효가 끝나기 전 순도 높은 알코올을 첨가해 발효를 멈춰 단맛을 얻는다. 이렇게 포도 자체의 당분을 남겨 단맛을 내기 때문에 뱅 뒤 나튀렐(Vins du Naturels = natural sweet wines)이 되는 것이다. 완성된 와인은 최소 15%의 알코올과 리터 당 100g 이상의 당분이 있어야 한다. 지나치게 달콤하기만 한 건 아닐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알코올을 강화하면 당연히 도수가 올라가지만, 풍미 또한 동반 상승하는 마법을 일으킨다. 조금 단순화하자면 모스카토 다스티의 농축 버전이랄까. 뮈스카 품종의 향긋한 꽃향기와 달콤한 포도, 살구, 복숭아, 열대과일 풍미 등이 정말 화사하게 피어난다.
뮈스카 드 리브잘트의 크리스마스 에디션도 있다. 뮈스카 드 노엘(Muscat de Noël). '성탄절의 뮈스카'라는 뜻인데 보졸레 누보처럼 수확한 해의 11월 셋째 주 목요일부터 판매된다. 숙성 기간이 짧기 때문에 뮈스카 품종 특유의 밝고 화사한 풍미가 더욱 부각된다.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에서 뮈스카 드 노엘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반적인 뮈스카 드 리브잘트도 크리스마스 음식과 함께 즐기기엔 무리가 없다. 현지에서는 주로 푸아 그라, 치즈 등과 함께 아페리티프로 즐긴다. 케이크나 쿠키, 슈톨렌이나 파네토네 같은 크리스마스 디저트와 즐기기도 안성맞춤이다. 어떻게 즐기든 밝게 빛나는 금빛 액체에서 뿜어 나오는 끝없이 달콤한 맛이 홈파티의 분위기를 한껏 띄워줄 것이다. 백화점이나 단골 와인샵에서 뮈스카 드 리브잘트를 발견하면 크리스마스, 혹은 연초의 가족 모임을 위해 한 병쯤 사 두는 것은 어떨까. 모임 분위기를 제대로 띄워 줄 것이다.
고독을 즐기며, 호주 에이지드 토니(Australian Aged Tawny)
혼술용으로 추천하는 주정강화 와인은 조금 짙다. 짙은 컬러만큼이나 풍미도 깊다. 에이지드 토니. 이름에서도 뭔가 완숙함이 드러나지 않는가. 소개하는 호주의 에이지드 토니는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주정강화 와인 에이지드 토니 포트(Aged Tawny Port)와 유사한 스타일이다. 원래는 '토니 포트(Tawny Port)'라는 이름을 달고 시장에 출시됐지만 요즘은 유럽과의 원산지 보호 명칭 문제로 '포트'라는 이름을 쓸 수 없게 됐다. 그래서 포트는 빼고 토니까지만 표기한다. 그렇다고 호주의 에이지드 토니를 에이지드 토니 포트의 짝퉁 정도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호주는 와인 양조가 태동하던 시기인 18세기 말부터 200년 이상 주정강화 와인을 만들어 왔다. 그냥 만든 정도가 아니라 와인 산업의 핵심이었다. 1960년대까지 전체 시장의 80%를 주정강화 와인이 차지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현재까지도 수준급 주정강화 와인을 생산하는데, 뮈스카를 5년 이상 장기 숙성해 만드는 루더글렌 뮈스카(Rutherglen Muscat)와 함께 프리미엄 주정강화 와인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에이지드 토니다.
호주의 에이지드 토니는 포르투갈의 그것에 비해 신맛은 적은 대신 더욱 원만한 과일 풍미가 일품이다. 또한 높은 평균 기온의 영향으로 유사한 숙성 기간이 표기된 경우 오크 숙성의 영향이 더욱 도드라지는 편이다. 보통 솔레라 방식을 통해 풍미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생산자에 따라 10년, 15년, 심지어 50년 이상 숙성한 올드 토니를 출시하는 경우도 있다. 펜폴즈(Penfolds), 쏜 클락(Thorn Clarke), 그랜트 버지(Grant Burge), 하셀그로브(Haselgrove), 앙고브(Angove) 등 국내에도 잘 알려진 빼어난 생산자들이 만드는 에이지드 토니가 국내에 수입되고 있으니 선택해 볼 만하다. 추운 겨울 긴긴밤, 예쁜 접시에 믹스넛이나 말린 과일 덜어 놓고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며, 혹은 재미있는 소설책 한 권 읽으며 조금씩 홀짝이다 보면 노곤한 심신에 충분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남은 와인은 냉장고에 보관하면 한 달 이상 거뜬히 즐길 수 있다. 겨우 내 즐길 수 있는 한 잔의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