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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셔널조그래픽 Jan 27. 2024

폭설이 만든 예술

2024년 눈 덮인 제주도 1100고지

하루라도 어릴 때 최대한 높이 올라가고 싶었다. 새해의 ‘머스트 두 리스트’에 1순위로 한라산 백록담이 올랐다. 마음을 먹었을 때 이미 1월 한라산 등반 예약은 꽉꽉 차고 있었다. 몇 개 남지 않은 빈 날짜 중 25일을 골라 예약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틈틈이 산을 오르며 나름의 훈련을 했다. 그리고 디데이가 다가왔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는 지난 21일부터 한라산 일대 폭설로 삼각봉에 약 46㎝의 적설을 기록함에 따라 탐방객들의 안전을 위해 오는 26일까지 입산 전면 통제를 유지한다고 오늘(25일) 밝혔습니다.”


“[에어서울] [오후 7:49] [항공편 결항 안내] 안녕하십니까. 에어서울입니다. 01월 24일 RS905편 (김포→ 제주)이 안전운항을 위한 불가피한 정비로 결항되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입산 통제에 이어 예약한 항공편까지 결항이라니. 다행히 항공편은 다음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운항했다. 오름이라도 오를 양으로 국적기에 몸을 실었다.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 모닝캄 기내지에 1100고지 습지를 소개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누가 찍었는지 설경을 기가 막히게 담았다. 백록담의 대안은 쉽게 정해졌다.


1100고지는 말 그대로 한라산 중턱 해발고도 1,100m에 있는 지역이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도로가 이곳을 지나서 도로 이름도 1100로라고 한다. 이곳에는 12만 6,000㎡에 달하는 고산습지가 펼쳐져 있다. 275분류군의 관속식물이 조사됐고 법정보호종인 매와 두견, 한라산뒤쥐, 두점박이사슴벌레 등 멸종위기종의 희귀한 동식물이 많다. 2009년 10월 12일 국내에서 12번째로 람사르습지로 지정됐다. 겨울에는 제주도를 대표하는 눈꽃 명소로 손꼽힌다.


여기도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기상 악화로 탐방로 입구는 야속하게 폐쇄됐다. 그래도 이곳까지 온 이들은 어떻게든 설경을 즐겨야 했다. 겨울왕국 분위기만 난다면 그곳이 화장실 앞이라도 개의치 않았다. 백록의 전설비와 고상돈상 등이 세워진 곳에서 아빠들은 썰매를 끌었고, 커플들은 연신 셀카를 찍느라 바빴다. KT세오름중계소와 레이더 기지로 올라가는 길은 아쉬운 대로 짧은 눈꽃 트래킹 코스 역할을 맡았다. 이 길이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습지의 광활한 설경은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제주만의 강렬했던 눈꽃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어떤 몰상식한 이는 준비해 온 눈썰매에 아이를 태우고 이 길로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왔다. 결국 밑에서 눈꽃을 보며 감탄하던 아저씨와 부딪히고 말았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편의점(성삼재 이마트24보다 높은가?)’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1100고지의 GS25는 커피와 라면으로 추위를 달래는 인파로 북적였다.


1100로는 겨울에 수시로 결빙되는 구간이다. 고도가 높아 기온이 낮고 강풍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상 상황이 안 좋다 싶으면 미리 교통 통제 상황과 CCTV 등을 확인하고 가야 한다. 주차장에서 자리를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갓길에 세운 관광객의 차 때문에 정체를 빗기도 한다. 운전에 자신이 없다면 240번 버스를 타면 된다. 다만 배차 간격이 1시간이고 사람이 꽉꽉 들어차는 편이라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이날 택시가 거의 잡히지 않아 버스를 이용했는데, 너무 좁고 답답했다. 내려오면서 조금이라도 빨리 버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제주 시내가 보였을 때 최선을 다해 버스에서 탈출했다. 내리고 보니 앞에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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