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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초 Joe Cho Feb 25. 2024

홋카이도 땅끝 마을에서 소고기를 외치다

2018년 1월 홋카이도 로드트립 ep.7

대한민국과 일본의 시차는 없다. 하지만 일몰과 일출 시각에는 차이가 있다. 일본이 더 동쪽에 있어 해가 더 일찍 뜨고 진다. 도쿄가 서울보다 약 1시간 정도 해가 더 일찍 저문다. 그래서 밤도 더 빨리 찾아오고 특히, 겨울엔 일본의 낮은 귀하다. 어영부영하고 있다간 금세 어둠이 깔린다.


오호츠크해와 맞닿아 있는 홋카이도의 땅끝 마을 시레토코(知床)는 서울보다 약 한 시간 반 정도 더 빨리 어두워진다. 비에이를 예정에 없게 두 번 방문하느라 출발이 늦어졌다. 눈에 보이는 아무 식당에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고 부랴부랴 차를 북동쪽 끝으로 몰았다. 비에이에서 목적지인 우토로 마을까지는 5시간이 넘게 걸린다.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야속하게도 해는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 근처에서 붉게 힘을 주고 있었다.


시레토코는 아이누어로 ‘땅이 끝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도시와 많이 떨어져 있어 자연경관이 끝내주고 생태계 또한 잘 보존돼 있다. 2005년 유네스코는 시레토코반도 지역을 세계 자연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 주된 이유는 오호츠크해에서 떠내려온 유빙 위를 성큼성큼 걸어보기 위해서다. 2011년에 <무한도전>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시레토코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고속도로가 없어 저속 1차선 도로 위주로 가야 했다. 폭설에 날까지 저물었다. 구글 맵까지 말썽을 부려 위험천만한 순간도 몇 번 겪어야 했다. 체력이 임계치에 다다랐을 때쯤 잘 닦인 해안도로가 나왔다. 우토로 항구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옆 해안가에 유빙은 보이지 않았다. 뭔가 느낌이 싸했지만 허기와 스트레스로 일분일초라도 빨리 숙소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노블 호텔 근처 불 켜진 상점이라곤 저 멀리 편의점 하나뿐이었다. 숙소를 예약하면서 근처 마땅한 맛집이 보이지 않아 석식과 조식을 같이 예약한 게 신의 한 수였다. 짐을 풀고 따끈한 물로 샤워하고 나오니 프런트에서 전화가 왔다. 저녁 식사를 차려 놓았다고 했다. 우리 일행은 한 상 가득 정성스럽게 차려진 밥상의 모습에 일동 탄성을 내지르며 앉았다. 잘 달궈진 소고기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여기까지 이곳까지 오면서 겪었던 그 고생이 버터 녹듯이 사그라들었다. 식사는 모든 노고를 위로해 주었고 입 안에서 파바박 터지는 맥주의 탄산은 신나게 환영 인사를 건넸다.


다음 날 아침, 우려대로 유빙은 오지 않았다. 투어 업체에서 아침 일찍 연락이 왔다. 지구온난화로 유빙이 떠내려오는 시점이 점점 늦어지고 있다고. 시레토코에서 유빙을 보려면 2월 중순 정도를 추천한다. 아쉬운 마음은 호텔에서 내놓은 조식이 다시 달래주었다. 차린 건 별로 없지만 이상하게 어딘가 감동적이고 정갈한 맛과 구성이었다. 여느 유명한 호텔 뷔페가 전혀 부럽지 않았다. 디저트까지 해치우고 7층에 있는 사우나로 향했다. 사우나에는 아무도 없었다. 탕에 몸을 담그고 창밖을 바라봤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홋카이도가 더욱 좋아졌다. 비록 유빙은 보지 못했지만, 지난 여정의 총점은 썩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부르고 등이 따신 덕분일 수도.


밖으로 나가 바다를 보니 저 멀리 하얀 띠가 보이긴 했다. 오호츠크해 유빙이다. 유빙 대신 항구와 고질라 바위 등을 구경하며 얼어붙은 우토로 마을을 산책했다.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바로 어제 무슨 일이 생겨 모두 마을을 버리고 어디론가 가버린 듯했다. 고요하다 못해 지독히도 고독했던 걸음을 마치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시간만 더 있었다면 유빙이 떠내려오는 걸 며칠 더 기다리며 국립공원을 둘러봤을 텐데. 시레토코엔 곰∙여우∙부엉이∙사슴∙연어∙바다사자∙고래∙흰꼬리수리 등의 동물이 서식 중이다.


삿포로로 다시 돌아오는 길은 한결 수월했다. 오는 길에 워셔액을 모두 사용해 위험하긴 했지만, 편의점에서 금방 보충했다. 로드트립 내내 곳곳의 편의점들은 꽤 유용한 보급소였다. 다시 삿포로의 밤과 조우했다. 거리를 꾹꾹 눌러 걸으며 떠남의 아쉬움을 달랬다. 걷다가 기가 막힌 냄새를 뽐내는 어느 꼬치구이 집으로 홀린 듯 들어갔다. 그곳에서 일행과 저녁 식사를 하며 우리의 여행을 복기했다. 식당 사장님은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 서비스로 주먹밥을 구워주었다. 그 맛을 아직 잊지 못해 캠핑에서 시도하려고 항상 벼르고 있다. 아직도 그 진했던 겨울의 내음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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