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오키나와 투어 ep1.
오키나와 남부가 유명한 관광 명소로 화려하다면, 북부는 고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즐길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모토부 반도에 있는 나키진 성터다. 2019년 1월 말, 대한민국은 한파가 몰아쳤을 때 이곳엔 벚꽃이 피었다. 매년 1월부터 2월까지 나키진 성터에서는 벚꽃 축제가 열린다. 날씨가 워낙 온화해 일본 열도에서 가장 먼저 벚꽃이 핀다.
나키진 성터는 그 이름처럼 성의 터만 있다. 슈리성처럼 멀쩡한 성채가 있는 게 아니라 성벽과 성이 있었던 흔적만 남았다. 2000년 오키나와의 옛 성터와 건축물 7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는데, 나키진 성터도 그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오키나와는 지금은 일본에 속해 있지만 약 200년 전만 해도 독립된 왕국이었다. 1879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되기 전까지 450년간 류큐 왕국이었다. 그 수도가 지금 관광 명소로 유명한 슈리성이다. 나키진 성은 류큐 왕국보다 더 오래됐다. 류큐 왕국이 들어서기 전 오키나와는 세 명의 왕이 성의 북부와 중부, 남부를 나누어 다스렸다. 나키진 성은 그 중 북부를 지배했던 북산왕, 일본어로 호쿠잔 왕의 성이 있던 곳이다. 약 600년 전의 일이다.
성터의 정문에서는 가이카쿠엔 발굴 조사가 한창이었다. 이곳엔 과거 주택들이 모여 있었다. 입구로 들어가기 전 여행객의 목을 적셔주는 사탕수수 주스 파는 곳이 있어 반가웠다. 달짝지근하게 입구로 들어서면 벚꽃 나무가 하나둘씩 모습을 나타내며 분홍빛을 발산한다. 정문에 해당하는 헤이로몬을 지나면 그야말로 핑크의 향연이 시작된다. 만개한 꽃봉오리도 있고, 아직 틔울락 말락 하는 봉오리도 있다. 각종 크기의 벌들이 이꽃 저꽃을 오가며 꽃가루와 꿀을 모으느라 바쁘다.
메인 스트리트라고 할 수 있는 돌계단 위로 벚나무들이 아치를 이루며 심겨 있다. 이 길은 1960년대에 정비됐다. 그런데 메인 스트리트라고 하기엔 너무 좁다. 이유인즉슨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일부러 좁게 만들었다고 한다. 계단 끝에는 넓은 광장이 나오는데, ‘우미야’라는 곳으로 정치적 혹은 종교적 의식을 치른 곳으로 추측 중이다. 바로 그 위에 ‘우치바루’라고 전망이 끝내주는 곳이 나온다. 과거 궁녀들이 사용하던 공간이라는데, 성내에서 가장 신성한 ‘우타키’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시야가 탁 트여 성터의 성벽이 모두 보인다. 수호신 같아 보이는 나무 한 그루 아래로 오키나와의 쪽빛 바다가 펼쳐진다. 근처에 떠 있는 작은 섬들도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은 날엔 22㎞ 떨어져 있는 요론섬도 보인다고 한다. 발아래 펼쳐진 숲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수백 년의 세월이 느껴졌다. ‘우시미’라는 곳으로 내려가 봤다. 가장 높은 돌담이 쌓아 올려져 있는데, 전쟁에 대비해 병사들이 훈련하고 말을 키우던 곳이다. 군대로 따지면 연병장 같은 곳. 수백 년이 지난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았는데, 아직 발굴 조사도 시작하지 않아 기대를 모으고 있는 곳이다.
한겨울에 봄 날씨를 만끽하며 이른 벚꽃 구경을 실컷 하니 목이 탔다. 나오는 길에 오키나와의 아이스크림 브랜드인 블루실의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어 더위를 식혔다. 한쪽 구석에 붙여진, 클래식카 랠리 홍보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이런 날씨에 이런 곳에서 톱이 활짝 열린 클래식카를 몰고 다니는 일상은 얼마나 근사할까? 오키나와의 멋들어진 라이프 스타일은 화장실에서도 티가 났다. 야외에 지붕만 얹어진 화장실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그 어떤 화장실의 환기 시스템보다 더 강력하게 작동 중이었다. 자연 그대로의 벚꽃과 야자수는 이국적인 정취를 한 큰술 더해주었다.
★★★★☆ · 역사적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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