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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초 Joe Cho Feb 26. 2024

여기는 북한이 공격을 안 할 거다

2023년 5월 모악산에서 두 번이나 길을 잃었다

전주에서 맑은 날에는 저 멀리 큼지막한 산 하나가 보인다. 바로 모악산이다. 모악산은 전주와 완주, 김제에 걸쳐 있는 산이다. 처가인 전주에 올 때마다 한 번은 올라가 봐야지 하다가 13년 만에 올랐다.


모악산 자락에 있는 전주 예고를 졸업한 아내의 말에 따르면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모악산에는 김일성 조상 묘가 있어서 전쟁이 나도 북한이 여기는 공격을 안 할 거다”라고 종종 말씀하셨다고 한다. 실제로 모악산에는 전주 김씨의 시조이자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의 32대 조상인 김태서의 묘가 있다. 그래서 전주 사람들은 이곳의 ‘기가 세다’고 한다. 별개로 정상에는 송신탑이 있어 전파력은 확실히 세다. 1977년 KBS 전주 방송총국이 세운 송신탑으로 정상 표지석도 이곳 송신탑 안에 있다.


이날 모악산은 여름의 조짐을 강하게 알렸다. 다람쥐 사진을 찍는 그 찰나에 정체 모를 날벌레에 팔을 두 군데나 쏘였다. 힘들어서 잠시 쉴라치면 드론 소리를 내뿜으며 날벌레들이 달라붙었다. 쉴 수 없어 계속 걸었다. 숲에서는 여름 향기가 쏟아졌다. 위가 뻥 뚫린 헬기장에 다다르자, 솜 뭉치 같은 새하얀 구름이 흡사 손에 닿을 것 같았다. 정상에서는 전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예수병원 재활의학과에서 클린 산행을 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 멀리 암벽 봉우리 위에는 사람이 한 명 올라앉아 있었다. 저기에는 어떻게 올랐을꼬?


이번 산행에서는 길을 두 번이나 잃었다. 한 번은 올라가다 편백숲에 홀려 주 능선으로 가는 길을 놓쳤다. 하산 중에도 엉뚱한 길로 빠져 가장 험한 깔딱고개를 두 번이나 넘어야 했다.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버릴 생각을 털어내려 시작한 등산인데, 이번엔 잡생각에 너무 집중한 탓이다. 아니면 정말로 산의 기가 세거나.


모악산은 꼭 정상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산기슭에만 머물러도 꽤 근사한 휴식이다. 들머리 중 하나인 모악산 도립공원 주차장에서 출발하면 방대한 규모의 편백숲을 만날 수 있다. 나무들이 쏟아내는 피톤치드에 취해 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쏘다니다 보면 등산로를 놓칠 수도 있다. 또한, 제주 올레길 같은 모악산 마실길이 조성돼 유유자적 시골길을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김제와 완주에 걸친 대장정의 코스도 있지만, 전주의 소소한 마을을 잇는 간편한 코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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