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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초 Joe Cho Mar 01. 2024

'퐌타스틱' 직소폭포 가는 길

2023년 6월 변산별곡

산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정상에 올라 성취감과 쾌감을 느낄 수도 있고, 산자락 어귀에서 캠핑을 즐길 수도 있다. 둘레길이나 올레길과 같이 잘 닦여진 산책로를 가볍게 거닐 수도 있고, 아이와 함께 숲 체험도 할 수 있다. 정상까지 오르내리는 등산이 부담스럽다면 한 가지 팁을 알려 드리겠다. 바로 폭포를 보고 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산은 크든 작든 깊은 땅에서 뽑아낸 맑디맑은 지하수를 떨어트리는 폭포를 품고 있다. 그중에서도 근사한 주변 풍경과 옛날이야기, 오랜 역사를 자랑해 이름 붙여진 폭포도 꽤 많다. 폭포는 대체로 산기슭에 있어서 가는 길이 완만한 편이다. 목적지를 산꼭대기가 아닌 폭포로 찍고 숲으로 들어가 보시라. 유명한 폭포가 주는 경관 또한 정상이 주는 선물 못지않게 판타스틱하다.


지금껏 가본 폭포 가는 길 중에 ‘최고의 길’을 꼽는다면, 단연 내변산의 직소폭포다. 과거 제주도와 울릉도에 처음 가봤을 때 ‘이렇게 훌륭한 섬이 우리나라 영토라 정말 좋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 길 또한 그러하다. 국내 내로라하는 유명한 산의 명성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해 속이 좀 상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만 아는 명소로 남겨두고 생각날 때마다 호젓하게 유유자적 걷다 오고 싶기도 한 곳이다.


직소폭포로 가는 길은 여러 루트가 있다. 보통 내변산 주차장에 차를 두고 간다. 주차장이 널찍하고 화장실도 있어 편하다. 최단코스는 사자동과 실상사, 자연보호헌장탑 등을 거쳐 가는 길이다. 길이는 약 2.5㎞다. 변산의 꼭대기인 관음봉(424m)까지 정복하고 내려오는 길에 직소폭포를 보고 오는 길도 추천한다. 주차장을 기점으로 순환하는 길이라 코스가 단조롭지 않다.


자연보호헌장탑까지는 길이 매우 평탄하고 순조롭다. 산딸나무와 호랑가시나무 등 일상에서 보기 어려운 식물도 볼 수 있다. 명암과 채도가 제각각인 녹음 아래의 산책길은 꽤 싱그럽고 향긋했다. 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들숨의 용량이 커져갔다. 아주 잠시였지만 세상의 시름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여유가 된다면 실상사와 원불교 성지까지 둘러볼 수 있다. 이 길에선 멀리 400m 두께의 거대한 응회암이 보인다. 바위 피부로 드러난 주상절리가 멀리서도 뚜렷하게 보인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급격하게 식어서 생긴 다각형 기둥이다. 용암은 식을 때 수축하며 갈라지는데 이때 보통 6각형 모양으로 갈라진다. 가뭄 때의 논바닥이 갈라진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주상절리가 계곡에 생길 경우 폭포가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직소폭포가 바로 그 예다. 직소폭포는 풍화작용으로 주상절리가 떨어져 나와 만들어진 여러 단의 30m 단애(斷崖) 아래로 변산의 지하수를 박력 있게 쏟아붓는다. 응회암은 화산 분진과 쇄설성 퇴적물이 굳어 생긴 바위다. 그렇다. 변산반도는 백악기 때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지형이다. 직소폭포로 가는 길에서 내변산의 화산암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친절한 길이 끝나면 어디선가 졸졸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변산에는 9개의 계곡이 흘러 봉래구곡이라고 한다. 직소폭포는 넘버 2다. 넘버 5 봉래곡 너른 바위 위에는 ‘逢萊九曲(봉래구곡)’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유학자 동초 김석곤의 암각서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한을 풀기 위해 전국을 유랑하며 이렇게 흔적을 남겼다.


직소폭포에서 흘러나온 물이 모인 직소보는 분옥담이라고도 하는데 마치 커다란 호수 같다. 이 보를 따라 나무 울타리가 둘러진 흙길은 직소폭포 가는 길 중에 가히 최고다. 그리고 원시림 같은 숲속 길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드디어 마침내 직소폭포가 나온다. 물이 바위에 걸리지 않고 곧바로 소(沼)로 떨어지다고 하여 직소폭포라고 한다. 옛날부터 유명한 곳이라 역사적인 작품에도 종종 등장했다. 조선 후기 화가 표암 강세황은 <우금암도>에서, 순국지사 송병선은 <변산기>에서 직소폭포를 그려냈다. 다행히 며칠 전에 비가 내려 폭포수의 물살은 거셌다. 그 기세가 들려주는 콰과광 서라운드 사운드가 미묘한 힐링과 청량감을 선사한다. 폭포의 아래 끝에 무엇이 있든 오랫동안 저 물살을 이겨내진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직소폭포 아래에는 실상용추라고 부르는 깊은 소와 함께 침식작용으로 생긴 항아리 모양의 포트홀(Pot hole, 돌개구멍)을 볼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폭포는 세월이 갈수록 서서히 뒤로 이동한다. 낙수가 조금씩 암석을 깎아내기 때문이다. 지금의 직소폭포 역시 과거보다 더 뒤에 있다.


변산이 좋은 이유는 직소폭포 이외에 주변에도 있다. 바로 근처 채석강(採石江)이다. 채석강은 격포항에 있는 길이 약 1.5㎞의 해식 절벽이다. 백악기와 선캄브리아대의 다양한 지질이 퇴적됐다. 보고만 있어도 경이롭다. 이곳까지 오기 위해 큼직한 바위 위를 성큼성큼 걸을 때마다 놀란 작은 게들이 사사삭 빠르게 자취를 감춘다. 처음에 채석강은 영락없이 강 이름인 줄 알았다. 누가 이름 붙였는지는 모르지만, 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강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은 채석강과 비슷하다고 같은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중국의 채석강과는 한자와 이름도 다르다. 이태백이 놀던 채석강은 장강변의 채석기(采石磯)다. 금나라와 남송의 전투가 벌어졌던 채석지전이 일어났던 곳이다. 이름의 유래야 어쨌든, 변산반도가 품고 있는 소중한 강(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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