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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초 Joe Cho Mar 01. 2024

백패커에게는 호텔 같은 곳

2023년 6월 첫 번째 호잣캠

자연 깊은 곳 노지에서 세 번의 백패킹을 경험하고 나니 아쉬운 점이 확연히 드러났다. 바로 씻는 것과 용변. 이 문제가 있어 하루 이상 머무를 수가 없다. 아마도 여성 백패커라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씻는 건 샤워 티슈로, 소변은 미니 토일렛(휴대용 화장실)으로 해결하면 된다. 대변은 좀 참든가 정 급하면 땅을 파서 간이 화장실처럼 쓰는 제품도 있다. 굳이 며칠 동안 백패킹을 이어 나가야 한다면, 이러한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슬슬 몸이 편한 백패킹을 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정보를 찾던 중 호명산 자락 숲속의 한 캠핑장을 발견했다. 후기들을 보니 ‘백패커들의 성지’라고 불릴 만큼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보기에는 그냥 숲속에 있는 일반 캠핑장인데 왜 ‘백패커들의 성지’라고 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했다. 차 출입이 안 되기 때문이다. 직원 차는 출입이 가능한 것 같은데, 이곳은 캠퍼들의 차 출입은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이유는 숲 그대로를 최대한 보존하며 자연과 공존하는 캠핑을 지향하기 때문.


그래서 주차하고 모든 캠핑 짐을 이고 지고 끌고 가야 한다. 주차는 ‘상천루(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상지로64번길 77)’라는 곳에 하면 된다. 이곳에 차를 두고 등산로 진입로처럼 생긴 길을 약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한다. 배낭을 멨다면 체감 거리는 더 멀리 느껴진다. 배낭 대신 카트에 짐을 담아 끌고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길이 쉽지 않은 편이다. 특히, 비나 눈이 온 날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이런 특성 때문에 캠핑장에 피칭된 텐트의 스타일이 비슷한 편이다. 다들 최소한의 짐만 배낭에 짊어지고 온다. 배낭에 모든 짐을 담고 등산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고, 누군가에겐 그게 단점이겠지만, 평소 20㎏이 넘는 배낭을 메고 몇 시간씩 산속을 오르내렸던 백패커에겐 가끔의 휴가다. 아직도 이른 새벽 잠에서 깨어 텐트의 지퍼를 열었을 때 텐트 안으로 훅하고 들어왔던 숲의 냄새를 잊지 못한다. 이 맛에 백패킹을 한다.


그래서 이곳은 백패커에겐 ‘호텔’ 같은 곳이다. 오지까지는 아니어도 깊은 숲속 언저리에서 하룻밤을 청하면서 기본적인 문명의 혜택을 모두 누릴 수 있다. 화장실과 샤워실, 매점이 있어 며칠씩 머무를 수도 있다. 데크 하나에 최대 네 개(1인 기준)의 텐트까지 칠 수 있어 한 사람이 만 원씩만 내면 네 명이 근사한 하룻밤을 같이 보낼 수 있다. 무엇보다 합법적으로 불을 피울 수 있어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다는 점, 무겁게 물을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는 점 등등 시간만 허락한다면 몇 날 며칠이고 틀어박히고 싶은 곳이다. 우리는 첫 번째 ‘호잣캠’을 즐기고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캠핑장을, 몇 군데 만들어야겠다고.


#광고아님 #협찬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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