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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회동 Dec 17. 2018

미디어가 묘사하는 여성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방송을 꿈꾸며

 한 사회에서 내가 속하는 집단이 어디인가를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는 역으로 내가 그 사회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우리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크게 남성과 여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내국인과 외국인,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등으로 나뉜다. 그리고 각 집단은 저마다 사회적 입지와 특정 이미지를 가진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다수’와 ‘소수’로 다시 한번 나뉜다. 여기에서의 ‘소수’란 신체적⋅문화적으로 구별되는 집단이며, 수적으로나 사회적 지위 및 권력에서 주변부에 속한 집단을 말한다. 이를테면 장애인과 비장애인 중에는 장애인, 내국인과 외국인 중에는 외국인이 소수자에 속한다. 사실 이는 어찌 보면 미디어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미디어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수’와 ‘소수’의 관계를 드러내며, 그 권력 차이를 부각하고 또 이용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여성과 노인, 장애인과 외국인은 미디어에서 소비된다.


 그렇다면, 그중 미디어에서 가장 많은 소비의 비중을 차지하는 집단은 누구일까. 바로 여성이다. 흔히 인류의 반이 여성이라고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여성이 갖는 사회적 지위와 권력으로 미루어 볼 때 여성은 명백한 소수자이며 동시에 사회적 약자다. 소수자는 모름지기 국가 정책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며, 여기엔 사회의 지속적 관심과 개선 노력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디어에서만큼은 ‘도마’ 위에 가장 먼저 오르게 되는 것이 여성이다. 현시대의 대중문화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활발하고 교묘하게 여성을 ‘요리’한다. 특히 시각적 이미지가 주가 되는 TV 매체에서, 그중에서도 예능이라는 장르에서 그러한 작업들이 가장 많이 이뤄지고 있다. 주로 여성의 외모를 비하하거나, 가부장 사회에서의 가치를 여성에게 강요하거나, 남자 친구를 닦달하는 매서운(혹은 예민한) 여성을 보여주거나, 비싼 백(bag)을 사달라는 속물적인 여성을 거론하는 식이다. 이 같은 예능 요소가 위험한 이유는 유머와 풍자라는 이름하에 범람하여, 자칫 시청자들로 하여금 해당 내용이 모든 여성들에 대한 일반화로 인식되거나 나아가 여성 혐오로 번지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미디어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사례들이다.


개그 프로그램, 누가 누가 여성 비하 더 잘하나


여성의 외모 비하


 주로 개그 프로그램에서 자주 다뤄지는 소재다. 뚱뚱하거나 못생긴 역할은 대개 여성들의 몫이며, 외모 비하 발언의 주체는 남성 코미디언이다. 〈웃음을 찾는 사람들〉(SBS) ‘성호야~’ 코너에서 남편 역할을 맡은 코미디언은 아내 역할을 맡은 코미디언의 뱃살을 쥐고 흔들면서 “힘이 여기서 나오는 것 같다”, “자전거가 무슨 죄냐” 등의 발언을 한다. 이내 아내 역의 코미디언이 기죽지 않는 태도를 보이지만 콩트의 웃음 포인트, 즉 뚱뚱한 여성에 대한 비하와 조롱이 이미 이뤄진 후다. 못생긴 여성 역시 이 화살을 피할 순 없다. 〈개그콘서트〉(KBS) ‘도찐개찐’ 코너에서 한 남성 코미디언은 여성 연예인의 한복 사진 3장을 잇따라 보여주면서 “신민아는 아름답고 윤아는 단아한데 이영자는 빽도”라며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문제는 여성 코미디언 역시 희화화된 여성의 외모 비하에 일정 부분 동참한다는 것이다. ‘나미와 붐붐’ 코너에서 한 여성 코미디언은 방청객에게 “저 닮은 딸 낳길 원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웃음을 유도한다. 단순히 외모를 희화화할 뿐 아니라 스스로 예쁜 여성 코미디언과의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며 미모가 곧 여성 서열의 척도라는 분위기나 인상을 남긴다. 비단 이 사례들만이 아니다. 대다수의 개그 프로그램이 코너를 막론하고 전반적으로 여성의 외모를 소재로 한 개그를 선보인다. 이쯤 되니 이제 한국의 코미디는 누가 더 여성의 외모를 통쾌하게 비하하느냐를 겨루는 일종의 오디션 프로그램 같다. 이와 관련해 한 방송 관계자는 “여성을 희화화하는 소재만 고집하니 갈수록 코미디가 낡아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편협하고 획일한 코미디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 자체가 예전만큼 재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엔 더더욱 그러하다.


토크쇼, 남자가 말하는데 어딜


여성에 남성 가부장적 가치 적용


 요즘은 다소 줄었지만 한때 과거 예능 프로그램에서 호통⋅버럭 개그의 일환으로 여성에 남성 가부장제의 가치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부장제란 가장이 가족 구성원에 대하여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가족을 지배⋅통솔하는 가족형태를 말한다. 문제는 가장이 주로 아버지나 장남 등 남성이라는 점이다. 방송인 장동민은 〈마녀사냥〉(JTBC)에 출연해 모델 한혜진을 두고 “색다른 매력이 있다”면서도 “나랑은 맞지 않는다.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고, (남자가 싫어할) 모든 걸 갖췄다”고 말했다. 장동민 특유의 과장되고 과격한 농담으로 스튜디오에서 웃음을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곧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자 장동민은 개인 SNS에 해당 발언에 대해 사과를 했다. 그러나 과거 발언들(장동민은 그간 여러 방송에서 ‘남자가 말하는데 어디서 여자가 끼어들어’ 등과 같은 맥락의 남성 중심적인 발언을 해왔다)이 화두에 오르며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아직 유교 문화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과거 가부장제도의 흔적이 남아있다 한들, 이를 방송에서 여성을 상대로 고함을 지르거나 발언권을 자제하려는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다. 출연자 본인의 문제가 가장 크지만, 양성평등에 대한 재고와 노력이 부족했던 제작진의 탓도 있다. 결국 장동민은 프로그램을 하차하고 제작진은 깊은 사과와 반성을 표했다. 웃자고 던진 농담에 죽자고 달려들지 말랬지만, 정도가 심하면 예외는 없다.


예능 프로그램, 여자들은 원래 그래


여성에 대한 인식 일반화 & 프레이밍


 가장 두드러지는 미디어 속 여성의 모습은 특정 성향과 성격, 그리고 신체적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힙합 래퍼 산이는 〈4가지 쇼〉(Mnet)에 출연해 자신이 진행을 맡았던 〈언프리티 랩스타〉(Mnet)에서 참가자 지민(AOA 멤버)을 편애했다는 비판에 대해 부정했다. “남자들이면 또 상관이 없는데 여자분들은 그런 거에 또 되게 예민하잖아요”라고 웃어넘긴 것. 적어도 산이가 만나온 여자들에 한해서는 예민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마치 모든 여자들이 예민한 듯 내뱉는 일반화 발언은 그 자체도 문제지만 미디어를 거쳐 전파를 탄다는 점만으로도 많은 우려를 낳는다. 더군다나 최근 힙합 콘텐츠를 소비하는 대다수는 10대라는 점을 놓고 볼 때, 산이의 발언은 본인이 가진 영향력과 책임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데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이국주와 이상준이 이끄는 〈코미디 빅리그〉(tvN) ‘오지라퍼’ 코너에서도 성별에 관한 일반화는 다뤄진다. 남녀의 메신저 대화 내용을 두고 ‘여자는 이렇고, 남자는 저렇다’며 이른바 ‘여자 어(語)’와 ‘남자 어(語)’를 규정한다. 특정 성(性), 특히 여성을 주로 한 일반화는 각 개인의 이성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이외에도 여성에 대한 일반화를 이용, 시청자들의 웃음을 이끌어내는 사례는 많다. 〈진짜 사나이-여군 특집〉(MBC)에서 여성 출연자들이 둔갑한 ‘여군’은 사실상 전략적으로 실패했다. 여성성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바람직하지 않은 프레이밍의 결과다. 여군 특집의 기획이 무엇이든 간에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시청 후기는 ‘여자가 군대를 가니 웃긴 장면이 많이 나온다’였다. 중대장은 계속해서 여성 출연자들을 향해 “여자인 척하지 마” 소리치며 여군은 성별이 없음을 알려준다. 어설프게 팔 굽혀 펴기를 하던 맹승지가 “여자는 이렇게 한다”며 울자 소대장은 “여자가 그렇게 하는 거지 군인은 그렇게 안 한다”며 단칼에 끊는다. 하지만 남군 특집에서 샘 해밍턴과 헨리가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일 땐 그 누구도 “남자인 티 내지 마”라고 혼을 내지 않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애초에 남군 특집 자체가 없었다. 남군 특집은 성별의 특수성을 내세운 여군 특집이 방영된 후에 이와 구별 짓기 위해 명명한 것이다. 결국 여군 특집은 여성 출연자들의 (남성 출연자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실수를 모두 여성성으로 규정한 셈이다. 물론 여성 출연자들을 교육하던 중대장과 소대장 역시 여성이었다.


콩트, 비하와 풍자는 깻잎 두 장 차이


속물적인 여성, 그리고 여성 혐오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2〉(tvN)에서 극 중 가난한 프리랜서 작가는 말한다. “내가 이 우울한 삶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겠냐? 조건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는 거, 그거 말고 더 있겠냐? 김치녀, 된장녀라고 욕해도 상관없어. 그게 현실이니까.” 꿈을 좇던 그녀로 하여금 거친 단어를 내뱉게 만든 현실에 대한 원망도 잠시다. 이는 대사의 의도와 목적이 어찌 되었든 여성이 스스로에게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를 지칭하면서 그것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을 내비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현실을 꼬집는 대사라는 점에서 가치는 있지만, 여성 스스로 그러한 단어와 어울린다는 것을 자처하며 자칫 왜곡된 여성 프레임을 심어줄 부정적인 영향이 더욱 크다.

 날 선 풍자와 선정적인 개그로 사랑받는 〈SNL:Saturday Night Live〉(tvN). 작가이자 방송인인 유병재는 코미디 극 중에서 지질하고 힘없는 남성으로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주로 센 여성 캐릭터들이 그와 호흡을 맞춘다. 후배 여학생이 복학생 유병재에게 조르르 달려와 밥을 사달라고 조르거나 잔심부름을 부탁(사실상 강요에 가까운)한 뒤 정작 유병재의 진심은 짓밟는다. 결국 유병재는 여성 출연자에게 비프 음이 뒤섞인 욕설을 내뱉으며 연기를 마무리한다. 이러한 극 설정은 여성에 대한 편견을 조장할 뿐 아니라 여성 혐오를 심어줄 수 있다. 꼭 〈SNL〉처럼 수위가 높은 개그 예능 프로그램뿐 아니라 현 대중매체 전반에 이러한 콘텐츠들이 즐비하다. 혹자는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콘텐츠들이 남성은 물론이거니와 일부 여성들의 공감 또한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극이라는 설정 아래 펼쳐지는 여성의 속물성과 여성 혐오 이야기는 현실에서 남성들이 느끼는 감정을 재구성하고 여성에 대한 그릇된 가치관을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현 사회에 충분히 위협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세상은 이미 모 커뮤니티를 비롯한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서 양성 간 혐오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까.


어떤 채널을 틀어도 다 함께 웃길


 여성은 사회적 약자인 소수자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러하다. 한국은 2000년부터 2012년까지 OECD 국가 중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였으며, 2014년 세계경제포럼(WEF)의 발표에 따르면 국가별 성 평등 순위 역시 142개국 가운데 최하위권인 117위를 기록했다. 언론은 남편에게 구타를 당하거나 애인에게 살해된 여성 관련 사건을 연달아 보도한다. 데이트 폭력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가해자 중 대다수가 남성이다. 이 사회에서 여성은 차별과 폭력에 신음한다. 남성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왜곡된 인식이 가장 큰 문제이며, 이를 부추긴 요인 중 하나가 미디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소수자들이 주체적으로 사회적 입지나 권력을 찾아가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여성이 다른 여성을 선망한다는 뜻의 합성어 ‘걸 크러시(Girl Crush)’가 상용되고 있고, 〈님과 함께 시즌2-최고의 사랑〉(JTBC)에서는 김숙이 윤정수에게 “남자는 자고로 집에서 조용히 있으며 아내에게 순종해야 한다”며 ‘가모장’적인 발언으로 큰 인기몰이를 했다. 하지만 이미 고착화된 한국사회에서 정부의 정책이나 미디어의 자체 노력 없이 이러한 움직임은 오래가지 못한다. 정부는 소수자를 단순히 약한 존재가 아닌,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주체로 인지하여 배려하고 지원해야 한다. 또 미디어는 여성을 포함한 노인, 장애인 등의 소수자 문제를 결코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언론은 소수자 관련 프로그램 콘텐츠를 그저 재생산하는 안일한 태도를 멀리 해야 한다. 모두가 웃으며 시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그만큼 만들기 어렵지만, 가치 있고, 그래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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