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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Aug 09. 2023

[책리뷰] 쇼코의 미소, 최은영

그녀와 그녀와의 공감

제목만 보고 일본 소설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은 최은영 작가가 쓴 우리나라 소설이며, 총 7개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집이다.


목차


쇼코의 미소

씬짜오, 씬짜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한지와 영주

먼 곳에서 온 노래

미카엘라

비밀


쇼코의 미소 줄거리


'쇼코의 미소'는 쇼코라는 일본 교학생이 주인공 소유의 집에 잠시 머물게 된 인연으로 시작된다. 쇼코는 소유보다 어른스러운 분위기의 미소를 띤 신비스러운 성격이어서, 그녀의 미소는 소유에게 마치 어른이 아이를 보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짧은 만남이었지쇼코는 일본에 돌아가서도 주인공과 주인공 할아버지와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이후 대학생이 된 소유는, 편지가 끊긴 쇼코의 일본 집에 방문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우울증으로 정신이 약간 이상해진 쇼코를 보게 된다. 쇼코는 쇼코네 할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합격한 도쿄의 좋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시골 자택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깊이 실망한 소유는 즉시 한국으로 돌아와 버리지만, 한편으로는 쇼코의 무너진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대학 진학 후에도 꿈꿔오던 영화감독이 되고자 노력하던 소유는, 현실의 벽과 재능의 한계를 느껴 자취방에서 좌절하고 있었다. 어느 비 오는 날, 할아버지께서 서울 자취방으로 찾아오셨다. 할아버지는 쇼코의 편지가 왔다는 얘기를 해 주면서 영화감독으로 노력하는 소유가 자랑스럽다고 하고 바로 시골로 돌아가신다. 평소 무뚝뚝했던 할아버지의 예상치 못한 방문에, 처음에는 데면데면하던 소유도 이내 울면서 따라 나가 우산을 건넨다.


이후 할아버지는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소유에게 소식을 들은 쇼코가 한국을 방문한다. 그녀는 소유에게 그간 소유의 할아버지와 주고받은 편지를 전한다.

그녀는 전보다 훨씬 나아진 모습이었으며 자신의 할아버지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우리는 이제 혼자네."


일본으로 돌아가는 쇼코의 미소를 보면서, 소유는 어린 시절 쇼코의 미소를 보았을 때 같은 감정을 느낀다.


© benblenner, 출처 Unsplash


여린 사람들의 표현법


쇼코의 미소에서 가장 주된 중심축이 되는 것은 쇼코와 소유와의 우정이다. 그러나 이 정서적 교감은 우리가 흔히 아는 아주 친한 친구와의 친밀함 또는 가까움과 조금 다른 분위기를 띤다.


쇼코는 말이 별로 없고 조용한 성격임에도 편지로 많은 대화를 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줄곧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뿐이며, 그녀가 소유의 할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쓰인 아름다운 이야기와는 사뭇 거리가 있다.


쇼코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내밀한 우정을 쌓는지 알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속을 열어 보이지 못하는 대신 살을 부딪치면 만날 필요가 없는 외국인에게 외국어로 편지를 써서 보내는 방법을 택했다. 만약 내가 일본인이었고, 쇼코의 주변에 사는 사람이었다면 쇼코는 내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둡고 우울한 쇼코도 쇼코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는 쇼코도 쇼코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모습을 다 보여주지 못한다. 멀리 떨어진 외국인에게도,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을 선택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화상 통화도 이메일도 되는 시대에 굳이 시간을 들여 정제된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 손 편지를 택한다.  


이는 소유의 할아버지와 같은 성격이다. 할아버지는 함께 사는 소유와, 딸인 소유 어머니에게 하지 않는 많은 이야기를 쇼코에게 한다. 자신의 투병 소식도 손녀인 소유보다 쇼코에게 먼저 알린다.


쇼코와 할아버지는 다치고 싶지 않았던 것 아닐까. 우리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면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가까운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감정은, 머나먼 타인에게 오는 그것보다 깊고 더 아프다. 그런 두려움이 쇼코와 할아버지처럼,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떨어진 거리감에서 오히려 안정을 느끼고 마음을 열게 하는 것 같다.


기댐과 기댐


쇼코와 소유는 환경적으로 비슷한 면이 많다. 둘 다 세심하고 조용한 성격에 각자의 할아버지와 산다. 또한 소유는 영화감독, 쇼코는 도쿄 상경을 꿈꾸지만 좌절된다.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길을 걸으며 두 사람은 성장하지만, 자아의 진폭은 서로 엇갈린다.

학생 때 쇼코는 소유가 보기에 강하고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대학 이후 찾아간 쇼코는, 소유에게 일본에 와서 살라고 매달릴 정도로 나약했다. 그러나 이후 소유가 좌절된 꿈에 절망할 때, 그간 알지 못했던 할아버지에 대한 속마음을 알게 된 것은 쇼코 덕분이었다. 쇼코에게 보낸 할아버지의 편지에, 소유를 향한 자랑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소유를 찾아 한국에 온 쇼코는 많이 성장해 있었고 그녀의 미소는 다시 예의 그 서늘함이 담겨 있었다.


소유와 쇼코는 서로 인생의 굴곡을 겪으며 함께 성장해 나간다.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그 둘은 정서적으로 공명하고 있었다. 서로는 서로에게 그저 스쳐가는 한 사람이 아닌, 어떤 의미였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 애가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쇼코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쇼코에게 내가 어떤 의미이기를 바랐다. 쇼코가 내게 편지를 하지 않을 무렵부터 느꼈던 이상한 공허감, 쇼코에게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정신적인 허영심.


© this_misty_garden, 출처 Unsplash



감정의 유대


쇼코의 미소뿐만 아니라, 책의 다른 이야기들도 대부분 여자들 간의 정서적 교감을 축으로 한다. 크게 기승전결이 뚜렷한 이야기들이라기보다는, 인물 간의 순하고 담담한 정감이 중심이 되는 단편들이 많다. 그 인물들은 국적이 다르기도 하고 세대가 다르기도 하고 처음 본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관계에서나 쇼코와 소유처럼 속 깊은 공감을 바탕으로 한다.

후 출간된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는 여성 간의 연애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니, 아마 이러한 감정의 유대감이 최은영 작가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인 것 같다.


또 한 가지 특징은 많은 등장인물들이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20대를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고는 하지만, 나도 그렇고 내 친구들도 그렇고 20대에는 대체 이게 왜 좋다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될 정도의 흔들림을 겪었다. 지금이야 돌아보면 그 흔들림마저 아름다워 보이지만 말이다.

쇼코의 미소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그러한 우울을 끌어안는 따뜻함이 있다. 그게, 그냥 덮어놓고 다 잘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 류의 따뜻함이 아니라 그저 이해해 주고 받아들여 주고 정서적으로 옆에 있어주는 조용한 따뜻함이 드러난다.

나의 약점을 드러내도 받아들여질 것 같은 그런 따뜻함. 그러한 이해받음을 느꼈기 때문에 쇼코는 소유에게 보낸 편지에 우울한 이야기를 안심하고 풀어놓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책 마지막에 서영채 문학평론가의 해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절망도 우울도 사람의 삶인 한 불가피한 것임은 누구나 알고 있으므로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순순하게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내 것으로 느끼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들과 마음을 함께하는 정도로 일단은 족하지 않을까 싶다. 그 대상이 무엇이건 간에, 공감이야말로 모든 것의 출발점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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