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굳게 세워진 디지털 척화비
대다수 사무실에 개인용컴퓨터가 도입된 지 30년이 다 돼간다. 그러나 여전히 컴퓨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도 회사 업무를 하다 보면 알음알음이라도 흉내는 내게 된다. 업무를 맡은 지 오래됐다면 수족처럼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루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구한말 척화비를 세운 흥선대원군처럼 새로운 기술의 습득을 배척하고 등한시하는 사람도 있다.
공직에서 4년째 일하고 있는 임모(30·여) 씨는 올해 새로 온 팀장의 지시에 아연했다. 자신이 회의 때 발표할 자료라며 임씨에게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해달라고 지시한 것. 별다른 내용은 없었지만 문제는 표였다. 워드프로세서로 깔끔하게 정리된 문서 가운데 단 한 장만 수기로 작성돼 있었다. 워드프로세서에서 표를 그릴 줄 모르는 팀장이 손으로 표를 그려 넣은 것이다. 임씨는 “이렇게까지 워드프로세서에 서툰 직장인은 예능프로그램이나 시트콤에만 있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팀장의 서툰 컴퓨터 활용 능력 때문에 업무가 지연된다는 사실이 윗선에 알려졌고, 결국 임씨는 팀장에게 틈틈이 워드프로세서를 가르치게 됐다. 지난달 또 사건이 터졌다. 일을 하던 팀장이 임씨에게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팀장은 임씨가 자신의 컴퓨터를 만진 뒤 고장이 났다며 길길이 뛰었다. 아침까지 포털사이트에 로그인이 됐는데, 임씨가 다녀간 뒤 전 사이트에 로그인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일을 수습하러 팀장 자리로 가 키보드를 본 순간 임씨는 왜 로그인이 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Caps Lock’ 키에 불이 들어와 있었던 것. 그는 “가르쳐드리면서 이 키를 누르면 대문자로 고정된다고 분명히 설명했는데 그걸 끄지 않아 사달이 났다. 한마디 쏴붙이고 싶었지만 일이 커질까 싶어 그냥 몰래 ‘Caps Lock’을 다시 눌렀다”고 밝혔다. 그러자 팀장은 “이상하다. 내가 할 때는 안 됐는데”를 반복하며 임씨를 자리로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