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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준 Dec 12. 2019

#8 배트맨 빌런

낮에는 놀고, 밤에는 왜 회사로 돌아오는거냐!

‘올해 안에 한 번쯤은 집에서 저녁 먹기.’ 


2년차 새내기 직장인 김씨의 소원이다. 팀 내 막내인 김씨는 입사 이래, 주말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집에서 저녁을 먹어 본 적이 없다. 아니 저녁 먹기 전에 퇴근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유는 김씨의팀장 때문. 비교적 자유로운 업무환경의 직군에 들어섰지만, 막내까지 자유로운 직장은 드물다. 김씨의 부서도 마찬가지. 선배들이 하나 둘 자리를 비우고, 김씨도 자리를 비우려 6시 30분경 엉덩이를 뗀다. 



이때 귀신같이 팀장이 돌아온다.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출근시간 잠깐 이후에는 자리에 없던 사람이다. 퇴근 시간만 되면 귀가하는 가장 마냥 회사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김씨에게 묻는다. “아직 식전이지?”.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식사 후에 김씨를 오래 잡아 두지는 않는다는 점. 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 잔 하며 잠깐 말동무가 돼 주면, 9시경에는 김씨를 놓아준다. 그는 “자꾸 말을 붙이시니 일을 할 수도 없고, 괜히 그 시간 앉아있으면 시간이 아깝다. 차라리 일을 하는게 낫겠다”고 말했다. 



얄미운 팀장에게 복수하려 야근 수당도 생각해 봤지만, 역시 회사 생활의 관록은 팀장이 위였다. “밥 먹고 잠깐 이야기한 거 가지고 야근 수당 올리는 건 아니지?”라는 물음에 김씨의 전략은 원천 봉쇄됐다. 

김씨와 팀 동료들은 팀장을 ‘배트맨’이라 부른다. 낮에는 방탕한 한량이지만, 밤에는 배트맨이 돼 고담시를 지키는 브루스 웨인처럼, 팀장은 낮에는 회사 일에 관심 없는 한량처럼 보이지만, 밤에는 회사로 돌아와 사무실을 지킨다는 이유에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배트맨처럼 일 처리라도 제대로 해 줬으면 싶다. 김씨와 선배들의 메일함에는 팀장이 부하직원들에게 미룬 보고서 파일이 매일매일 풍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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