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은 아이를 초대하는 일, 나는 내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직장인 박모(30) 씨는 연말 송년회가 불편하다. “아이는 언제 갖느냐”고 물어보는 주변인들 때문이다. 결혼 전 “언제 결혼하느냐”는 지청구에는 “결혼을 혼자 하느냐”고 맞받아칠 수 있었지만, 아이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기가 어렵다. 본심대로 “당분간 생각이 없다”고 대답하면, 다시 질문이 꼬리를 문다. 박씨는 “‘출산율도 떨어지는데 결혼한 젊은 사람들이 힘을 내야지’ 같은 얘기를 듣고 있자면, 도대체 당신은 국가를 위해 뭘 얼마나 했느냐고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신혼부부의 40%가 현재 자녀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한다고 반드시 출산을 하는 것은 아닌 상황. 물론 급등하는 주거비, 사교육비 등으로 결혼과 출산을 전부 해내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통계를 보면 단순히 경제적 이유만으로 신혼부부들이 출산을 꺼리는 것은 아니다. 소득이 높을수록 출산율은 낮아진다는 통계도 있다. 결혼생활이 길어져도 출산율은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다. 경제력과 무관하게 신혼부부의 출산을 막는 다른 원인이 있다는 의미다.
서울 송파구 위례신도시 ‘수서역세권 신혼희망타운’ 본보기집을 찾은 신혼부부들이 아파트 단지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박씨가 아직 출산 계획을 세우지 않은 이유는 집 때문이다. 신혼집 마련을 위해 2억 원 가까이 대출을 받았다. 대출을 줄여 전셋집을 계약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 집을 사놓지 않으면 영원히 민달팽이 신세를 면치 못할 것 같았다. 그는 “서울에 집을 얻으려 약간 무리를 했다. 아내의 월수입 정도의 돈을 매달 대출금을 갚는 데 써야 한다. 맞벌이를 하지만 소득은 그대로인 셈이다. 둘 다 수입이 낮은 편은 아니지만, 빚을 어느 정도 갚고 난 뒤 아이를 가질 예정이다. 4~5년 후쯤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혼부부들의 집값 부담은 과거에 비해 커지고 있었다. 통계청의 ‘2018 신혼부부 통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최근 5년 내 혼인신고한 초혼부부는 105만2000쌍. 이들의 금융권 대출 중간값(금액을 나열했을 때 가운데 위치하는 값)은 9684만 원에 달했다. 2017년 중앙값보다 1059만 원 늘었고, 2016년에 비해서는 1906만 원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세종이 1억1862만 원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 경기가 각각 1억1744만 원, 1억460만 원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 전남지역은 6700만 원으로 1, 2위인 세종과 서울의 절반 이하였다.
주거비는 계속 오르지만 집을 소유한 신혼부부의 비율은 외려 늘었다. 2017년에는 주택을 소유하지 않고 전세, 월세로 시작한 신혼부부의 비율이 56.4%였으나 2018년에는 이 비율이 0.2%p 하락했다. 특히 결혼생활 5년 차 부부부터는 무주택 가구의 비율이 46.8%로 떨어졌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신혼부부들이 부동산시장에 조바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 경기 같은 주요 지역에 일자리 등 생활기반을 둔 부부일수록 출산 전 집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는 것.
실제로 집을 사놓은 부부는 그렇지 않은 부부에 비해 출산율이 높았다. 무주택 부부 가운데 아이를 출산한 부부의 비중은 59.0%, 평균 출생아 수는 0.73명이었다. 반면 자기 집을 보유한 부부의 출산 비중은 67.0%, 평균 출생아 수도 0.85명으로 무주택 부부보다 많았다.
서울 KB국민은행 여의도 지점에서 한 시민이 대출 관련 상담을 받고 있다. [뉴스1]
문제는 집과 빚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 빚을 내야 집을 살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출산율은 빚과 반비례 관계를 보였다. 신혼부부의 빚이 많은 서울은 부부당 출생아 수가 0.62명으로 가장 적었다. 반면 빚이 적은 전남지역은 0.89명이며 전북, 광주도 각각 0.86명, 0.84명으로 비교적 출생아 수가 많았다.
전문가들도 신혼부부의 빚이 출생아 감소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대출이 많고 주택 가격이 높은 지역에 사는 부부일수록 출생아가 적은 것으로 보인다. 신혼 시기의 경제적 부담이 출산에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적잖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서울보다 빚이 많은 세종가 그렇다. 부부당 출생아 수가 0.79명으로 서울은 물론, 전국 평균 0.74명에 비해 많았다. 통계청 관계자는 “세종은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아 출산, 육아 휴직 후에도 복직에 유리하고 보육 관련 정부 지원이 탄탄해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혼부부 출산율 통계에서는 맞벌이 부부의 출산 기피 현상이 눈에 띈다. 2017년에는 맞벌이 부부당 출생아 수가 0.69명이었으나 2018년에는 0.65명으로 줄었다. 외벌이 부부도 0.86명에서 0.83명으로 감소하긴 했으나 맞벌이 부부의 감소폭이 더 컸다. 게다가 맞벌이 부부는 늘어나고 외벌이 부부는 줄어드는 추세다. 같은 기간 전체 신혼부부에서 맞벌이 부부의 비율은 44.9%에서 47.5%로 2.6%p 늘었고, 외벌이 부부는 47.5%에서 45.7%로 1.8%p 줄었다.
직장인 김모(28·여) 씨도 곧 맞벌이 부부가 된다. 김씨는 “일단 서울로 출퇴근이 가능한 수도권에 머물려면 향후 5~6년간은 회사를 그만둘 수 없다.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겠다는 욕심이 크지 않고, 결혼 후에는 직장을 그만두거나 임금이 줄더라도 상대적으로 편한 직장으로 옮길 계획이었다. 하지만 집값이나 보육비를 모아두고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결혼 후에도 한동안 회사에 다닐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씨가 다니는 회사는 업무 특성상 근무시 간이 불규칙적이다. 이 때문에 김씨는 회사에 다니는 동안 아이를 갖지 않을 생각이다.
부부가 함께 돈을 벌면 상대적으로 외벌이 부부에 비해 경제적으로 풍족하다. 맞벌이 부부 중에서는 연간 합산 소득이 7000만 원 이상~1억 원 미만인 경우가 25.9%로 가장 많았다. 5000만 원 이상~7000만 원 미만이 24.8%, 1억 원 이상이 19.6%로 뒤를 이었다. 반면 외벌이 부부의 소득은 3000만 원 이상~5000만 원 미만이 33.7%로 가장 많았으며, 1000만 원 이상~3000만 원 미만이 24.9%, 5000만 원 이상~7000만 원 미만이 21.2%였다.
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지는 않았다. 소득이 많을수록 자녀가 없는 부부의 비율이 높게 나온 것. 부부 연간 소득이 1000만 원 이상~5000만 원 미만 구간에서는 무자녀 부부의 비율이 35~36%지만, 연간 소득이 5000만 원을 넘어서면 무자녀 비율이 40%대로 상승했다. 연간 소득이 1억 원 이상인 부부의 무자녀 비율은 48.6%로 전체 소득분위 중 가장 높았다.
외벌이 가구의 경우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부부당 평균 출생아 수가 0.8명대로 일정했다. 하지만 맞벌이 가구에서는 1000만 원 이상~3000만 원 미만 소득 구간의 출생아 수가 0.83으로 가장 많았다. 소득이 클수록 출생아 수는 지속적으로 떨어져 1억 원 이상 버는 맞벌이 부부의 평균 출생아 수는 0.59명에 불과했다.
전문직 종사자인 오모(33) 씨도 당분간 출산 계획이 없다. 아내도 전문직 종사자라 부부의 수득은 연 1억 원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쉬는 날에는 아내와 여행을 다닐 뿐, 자녀를 가질 생각이 없다. 오씨는 “많이 버는 만큼 일도 바쁘다. 지금도 겨우 건강을 유지하면서 1년에 한 번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여가의 전부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기는 어렵다. 물론 주변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알아서 큰다고 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충분히 사랑해주지 못할 상황이라면 아직 부모가 될 준비가 덜 됐다고 본다. 당장 아이를 낳더라도 아내도, 나도 바빠 일주일에 한 번이나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싶다. 충분히 돈을 벌고 아내도, 나도 심적·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을 때 자녀 계획을 세워도 늦지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