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그렇게 오타만 잡으시면 보고서가 발전이 없거든요!
안녕, 후배!
오늘 팀장님이랑 둘이서 또 문서 양식 가지고 투닥거리는 거 봤어.
부딪히지 않으려고 애써 참는 모습이 마음에 걸리더라고.
우리 팀장, 이 정도면 거의 초능력자야.
오탈자 잡아내는 건 그렇다고 치는데, 줄간격이나 자간 다른 게 어떻게 보이냐고.!
그런 능력 있으면 출판사 가서 오탈자 잡거나 공장에서 불량 검수 하지,
왜 여기서 우리들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몰라.
'네네'하면서 참긴 했지만, 솔직히 좀 답답했지?
내용은 검토 안 하고 트집만 잡는 거 같고,
반박하고 싶어도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고. 그렇지 않니?
답답한 게 당연해. 누구라도 짜증 났을 거야.
왜냐하면 팀장님이 지적한 게 '양식'이 아니라 '형식'이기 때문이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내가 말하는 '양식'은 '생각의 구조'를 의미해.
쉽게 말하면, 내 생각을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배열하는 걸 말하는 거지.
이를 테면, 오늘 미팅을 팀장한테 전화로 보고해야 돼.
어떻게 말해야 해야 할까?
나라면 육하원칙에 따라 말할 거 같아.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 설명해 주면
팀장님이 (비록 이해가 조금 느리긴 하다만) 바로 이해하지 않겠어?
일시 및 장소, 참석자 등을 육하원칙에 따라 적을 수 있게 문서로 만든 걸 '양식'이라 부르지.
회의록 같은 거 말이야.
반면, '형식'은 줄간격, 자간, 글씨체 같은 걸 말해.
문서의 가독성을 높여주는 것들이지. 연극으로 치면 무대장치 같은 거랄까?
난 '형식'도 중요하다고 봐. 보고서의 완성도를 높여주니까.
하지만, 보고서 초안을 들고 갔는데도 '형식'을 지적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작성 방향이 올바른지, 추가로 검토할 사항은 없는지 같은 관점에서 '양식'을 검토해 줘야지.
그래야 보고서를 발전시켜 나갈 거잖아. 형식만 지적해서는 나아지는 게 아무것도 없지.
그럼 대체 팀장님은 왜 그러는 걸까?
혹시 네가 쓴 보고서에 뭐라고 피드백을 줘야 할지 몰랐던 건 아니었을까?
자기 때는 있지도 않던 괴상한 분석방법과 듣도 보도 못한 해외 출처들에 당황했던 건 아닐까?
팀장도 알 거야. 자기 역량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조만간 모든 영광과 메달을 내주고 뒷방에 보관된 쓸쓸한 골동품이 될 거라는 걸.
그래서 지적질에 열중할 수도 있어.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으려고 말이야.
어쩌면 그 간절함이 초능력이 된 걸지도? '단 하나의 오타도 놓치지 않는 초능력' 말이야.
나는 이 생각을 하면서부터 팀장이 측은할 때가 있더라고.
그리고 '형식'만 지적하면 잘 안 듣고 있다가, '양식'에서 고칠 거 없냐고 물어봐.
그럼 보통 없다고 하더라고. ㅎㅎ
너도 나처럼 팀장의 지적질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