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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이 SUI Nov 15. 2024

명문대 못가면 사랑받을 자격도 없나요?

내 삶보다 중요했던 부모의 인정과 사랑

공부 잘하는 아이는 부모의 자랑이다. 부모의 존재 가치를 보여주기에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나는 이들을 트로피 아이라고 부른다.

나 역시 트로피 아이였다. 나의 지위는 견고하고 불변할거라 여겼다. 하지만 수능을 망쳤고, 나의 영광도 끝이 났다. 한순간이었다. 누군가를 빛나게 하지 못하는 트로피는 쓸모가 없었다.



3교시 영어 시험이 문제였다. 그전까지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듯했다. 시간 여유가 있어 천천히 검토하며 역 순으로 마킹을 시작했다. 시험 종료 5분 전,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무언가 서늘한 것이 등 줄기를 타고 내려간다. 한 페이지 전체가 텅 비어있었다. 시험지를 넘기다가 미처 보지 못하고 넘어갔던 거다.  오른쪽 관자놀이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문제를 풀어보지만 눈앞에서 글자들이 먼지 뭉치처럼 한데 모이더니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결국 꽤 많은 문제를 3번으로 마킹해서 답안지를 제출했다. 4교시 시험은 무슨 정신으로 봤는지 제대로 기억도 안 난다.


수능 점수가 나오는 날, 담임은 갑자기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담임의 험악한 얼굴에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수해라."

성적표를 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옆에서 선생님이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3년 내내 이런 점수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게 내가 처한 현실이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대학 원서를 쓰는 동안 부모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합격 소식을 전할 때도 마찬가지었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지만 합격했다는 내 말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냉담한 침묵은 그 어떤 공격보다도 맹렬했다. 점차 희미해져 가는 존재를 견뎌가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이 모든 것이 변한 건 졸업 후 대기업에 합격하면서부터였다.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자랑스러운 우리 딸, 고생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낯선 말들이 싫지 않았다. 짧은 통화를 마치고 얼마나 지났을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고모였다. 합격 축하한다는 말을 하려고 전화하셨다. 뒤이어 큰아버지를 비롯해 친척들의 축하 전화가 이어졌다. '이들 형제들은 텔레파시로 소통하는 게 분명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빨리 소식을 전하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자랑스러운 딸의 지위를 회복했다. 아버지는 "서울대생도 가기 힘든 대기업에 갔다"는 말을 자주 다. 그렇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따뜻한 말투와 시선이 불편했다. 그토록 원하던 부모의 인정과 사랑에도 수 없는 허기에 시달렸다. 마음에 난 커다란 구멍은 어떻게 메워야 할지 몰랐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했다. 과거 자신을 힘들게 했던 사람에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복수하는 방법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명문대에 다니는 자식'은 성공한 인생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7남매 중 막내였던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사춘기 시절을 큰아버지 집에서 보내야 했다. 사랑받는 막내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큰아버지의 사업마저 어려워지면서 아버지의 학비마저 사업에 투입되었다. 또래 조카들이 따뜻한 도시락에 고기 반찬을 먹으며 학교에 다니는 동안, 아버지는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검정고시를 준비해야만 했다.


사정을 알고 나니 그의 행동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분명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왜 굳이 자식을 이용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했던 걸까?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는 증명서 정도로 여길 수 있었던 걸까?


인생을 도구로 여기는 모습은 고스란히 대물림 되었다. 인정과 사랑에 목 말랐던 나는 내 삶을 인정받기 위한 증명서로 이용했다. 좋은 대학, 좋은 회사,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에 몰두했다. 그 과정에 정작 ''는 빠져있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지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마치 24시간 무대에 서야 하는 배우처럼, 트로피 아이 연기다. 그 삶은 결코 '내 것' 아니었다.



트로피 지위를 내려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아직도 진행 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분명히 안다. 타인을 위해 나의 소중한 인생을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한 진짜 트로피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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