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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앎이 Mar 27. 2020

암환자가 계속 일하는 이유

멈출 수 없었고 멈추고 싶지도 않았다


2015년 11월, 세 번째 수술을 한 뒤 병원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갑상선암입니다. 지금 빨리 수술을 해야해요. 상황이 좋지 않아요."


2011년 10월 6일. 전화기 너머로 들린 말에 몽롱해졌다.

그보다 몇 달 전, 원래 굵은 줄 알았던 목에 뭔가 혹이 있는 것 같다며 병원에 가보라는 조언을 받고 부랴부랴 동네 병원에 가서 피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했다. "수치는 정상인데 모양이 이상하니 큰 병원에 가보세요"라는 진단에도 바빠서 미루고 또 미루다 또 부랴부랴 아침 일찍 대학병원에 가 검사를 한 바로 그날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시간에도 선배와 함께 미팅과 인터뷰를 하느라 모르는 번호로 울리는 전화를 몇 번이고 끊었다. 그런데도 계속 울리는 휴대전화를 달래기 위해 슬쩍 나가 "도대체 누구야?"하고 짜증 섞어 받은 전화에선 나보고 '암'에 걸렸다고 통보했다.


 겨우 만 스물 여섯,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로 멋을 부리며 커리어우먼 흉내라도 내보려던 때였다. 지금이야 회사에 환우회를 결성하자는 농담을 할 정도로 갑상선암으로 수술한 동료들도 여럿이 되고 주변에도 워낙 흔한 병이 되어버렸지만, 그 때만 해도 이십 대 중반, 막내급 사원의 암 진단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던 것 같다. 내가 뒤집어지기도 전에 회사가 발칵 뒤집혔고, 나를 아는 온갖 사람들이 걱정을 전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이 질문과 조언이 시작됐다.

"일 해도 돼?", "얼른 쉬어"



한참 전부터 암이라는 어마무시한 병을 선고받는 장면을 드라마에서 봐왔지만 현실은 그와 완전히 달랐다. 나는 다행히도 "몇 개월 밖에 안 남으셨습니다"라는, 그야말로 남은 생에 대한 판정을 받는 암이 아니었고, 몇 달에 걸쳐 항암치료를 하고 입원해야 하는 암이 아니었다. 수술을 해도 입원기간은 일주일 남짓 뿐이고 이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했다. 무리만 하지 않으면 되는 거였다. 고통스럽게 몸을 부여잡기는커녕 늘 그랬듯 금방 피곤하고 항상 피곤하고 자주 피곤한 것 외에는 증상도 없었다. 당장 수술해야 한다면서도 수술 날짜가 바로 잡히는 것도 아니었다. 검사를 다시 하는 데만 몇 주, 수술 날짜는 어떤 사람들은 몇 달 뒤로 미룰 만큼 느린 암이라고 설명됐다. 다급한 목소리로, 사진 속 모양이 매우 불량하다며 당장 수술을 해야한다는 진단은 받았지만 그것이 내게 선고나 판정 같지는 않았다.


바로 다음 날부터 같은 팀 사람들부터 물었다. "이렇게 나와도 돼?", "출근해도 돼?" 수술 날짜는커녕 다음 검사 날짜도 안 잡힌 상태여서 더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짐을 챙기고 집에 가서 누워있어야 하는 걸까, 휴직을 해야하는 걸까,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걸까. 그러기에 나는 너무 아무렇지 않았고, 또 너무 스물 여섯이었다. 내가 꿈꾸던 직업을 가진 지 2년 반, 일에 한참 재미를 붙였고 일을 떠나 그냥 나는 그대로 살아야했다. 어차피 오래도록 멀쩡히 살아갈 건데 잠시 돌부리에 넘어진 듯한 그런 무게 앞에서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수술을 두 번 더 했고 그 때마다 나는 일상을 더욱 세게 부여잡으려 애썼다. 나의 긴 삶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나에겐 해야할 일과 살아갈 시간이 너무 많다고 서둘렀다. 세 번째 수술을 한 뒤 병원에 물었다. "이렇게 계속 재발하는 거면 회사를 그만둬야 할까요?" 평소에도 늘 쿨하면서 친근했던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일 안 하신다고 스트레스 안 받으실까요? 아이 키우려면 열심히 일 하셔야죠~" 나의 갑상선암과 임파선은 잘 알지만 정작 내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시는 분의 나를 너무 정확히 이해한 답이었다. '그래, 역시 난 일 안 하고는 못 배길 성격이지' 안도하며 다시 쉼 없이 달려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이제는 일을 계속 해도 되는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내가 가장 궁금해하고 있다.



어쩌면 평생, 암을 갖고 살게 됐으면서 왜 나는 일을 계속 하고 싶어할까?

가장 간단한 이유는 그 자체가 나의 존재이기도 했던 생활들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서다. 멈출 이유가 하나도 없어 보였다. 당장 삶이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돈을 벌고 나의 많은 것을 유지하며 더 윤택하게 살고 싶다. 학교든 직장이든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경험이 아예 없다. 일이 힘들다고 늘 징징대면서도 호기롭게 그만두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어딘가에 속한 나로만 살다보니 그게 없어진다는 게 두려워서였다. 사람들을 만나고 북적거리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내 모습에서 삶의 아주 많은 즐거움을 느꼈다. 일이 바쁘고 사람 때문에 힘들어 때려쳐, 말어 하며 항상 툴툴대면서도 또 다른 일과 또 다른 사람들에게 치유받았다. 언제나 그렇게 살아온 나를 한 순간에 멈추는 것이 상상이 잘 안 된다.


게다가 내가 멈춘다고 해서,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쉰다고 해서 이 병이 멈춰지는 것인지도 전혀 알 수 없다. 두 번째 수술을 한 뒤 회사에서 나름대로의 배려(?) 차원에서 몸이 덜 힘든 부서로 옮겨주었다. 그런데 거기서도 나는 암을 다시 만났다. 원인도 모르고 앞으로 진행이 어떻게 될지 당연히 모르는 가운데 오히려 나 같은 성격의 사람이 아프다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정에만 있는다는 게 더 큰 스트레스와 고통이 될 거라고도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더 젊고 건강할 때 여행도 많이 다니고 보고싶은 사람들을 만나며 내 삶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을 누가 바라지 않을까. 나도 할 수만 있다면 앞선 이유들을 다 제치고라도 당장 하루하루를 신나게 누리며 살고 싶다. 그렇지만 평생을 그렇게 살 순 없다. 암과 함께 하게 되면서 더욱 내 것, 내 주변, 일상에 집착하게 되는 것도 특별하지 않은 늘 그랬던 평범한 순간들이 쌓여 내가 됐기 때문에 더더욱 나를 잃고 싶지 않아서였다.


물론 이런 생각으로 버티고 달렸는데, 네 번째 반복에 이제는 내가 스스로 정한 틀에 갇혀 오히려 무리한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걸까 혼란스럽기도 하다. 계속 재발하고 수술을 더 할 수도 있는 병인데, 일에 붙드렬 더 많은 것들을 놓치고 나를 축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이제는 조금씩 든다. 그럼에도 나는 쉽게 일하지 않는 나를 그려보지 못하고 있다. 



나의 병이 얼마나 더 반복될지, 어떻게 하면 반복되는 속도를 줄일 수 있는 건지 아무것도 몰라 매우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일을 열심히 해서 뭐가 되겠다든지 바란다든지 그런 큰 욕심도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계속 직업을 갖고 사회생활을 활발히 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이제 큰 욕심이 되어버린 것도 같다. 그래서 더 열심히 찾게 된다. 내가 이런 욕심을 계속 고집하고 싶은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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