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Emo)의 과거와 현재... 1990년대 후반~2000년 중반
“난 내가 정말 싫어요. 나 따위는 투명 인간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도 같고요."
10대들의 우상으로 떠오른 다크 팝의 슈퍼루키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가 지니어스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최근 2~3년간 ‘이모(Emo)’라는 단어가 다시 언급되기 시작했다. 할시와 빌리 아일리시의 이모 팝(Emo Pop), 릴 핍과 XXX텐타시온의 이모 힙합(Emo Hip-Hop) 등 미국의 주류 음악 시장에서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에 무력감과 절망, 외로움, 분노를 담은 자기 파괴적인 가사의 음악들이 떠올랐다. 즉, ‘중2병’을 테마로 한 노래가 밀레니얼 시대의 리스너들에게서 호응을 얻은 것이다.
이처럼 청춘의 폭발하는 에너지와 반항 정신, 분노와 울분을 쏟아내는 음악은 늘 존재해왔다. 로큰롤부터 시작해 하드록, 펑크, 힙합, 그런지 등 신세대를 중심으로 대중 음악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이 오가며 음악은 발전해 온 셈이다. 그러니까 구지 말하자면, 빌리 아일리시나 텐타시온은 사랑처럼 팔자 좋은 타령이나 하는 달콤한 팝 시장에 질린 밀레니얼 세대를 대변하는 새 시대의 평크(Punk)라는 말이다. 힙한 패션과 ‘개X 마이웨이’는 덤이다.
그러면 도대체 이모(Emo)가 무엇이냐. 현재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해 ‘중2병’ 걸린 10대들 혹은 그들이 듣는 음악을 얕잡아 이르는 말로 주로 쓰이지만, 원래는 이모코어(이모셔널 하드코어 펑크)의 줄임말로, 펑크에서 파생된 하위 장르 중 하나를 일컫는 용어다.
이모셔널 하드코어 펑크(Emotional Hardcore Punk)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1980년대 하드코어 펑크(Punk)로부터 출발했다. 하드코어 펑크는 1970년대 후반 몰락한 펑크의 원시성을 되살려 세상을 향해 욕지기를 쏟아내던 반항의 음악인데, 초창기 이모코어 밴드들은 이러한 하드코어 펑크의 음악적 문법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화로 가득 찬 포효 대신 부조리한 세상에 짓 밝힌 개인의 감정에 주목했다. 하드코어 펑크 신의 대부 이안 맥케이(Ian Mackey)가 거쳐간 밴드 중 하나인 엠브레이스(Embrace)는 1987년 자기비하와 염세로 가득찬 데뷔앨범 < Embrace >를 발표했다. 여기서 이안 맥케이는 “난 내가 원하는 걸 얻지도 못해.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 난 실패자야”라고 되뇌며 회의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이안 맥케이가 프로듀싱한 워싱턴 출신 밴드 라이츠 오브 스프링(Rites Of Spring)의 1집 < Rites Of Spring >은 이모코어의 시초라고도 여겨지는 앨범으로, 수록곡 ‘For Want Of’는 개인의 불안과 체념을 드러내 기존 하드코어 펑크의 분노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다.
사회에서 개인으로, 분노에서 회의로 제재와 주제가 옮겨가자, 비관적인 가사에 감성적인 선율을 살린 하드코어 펑크 밴드들이 등장했다. 1990년대 중, 후반 써니 데이 리얼 에스테이트(Sunny Day Real Estate), 위저(Weezer), 지미 잇 월드(Jimmy Eat World), 더 프로미스 링(The Promise Ring), 조브레이커(Jawbreaker)같은 밴드들은 하드코어 펑크의 사운드를 흡수한 그런지 록과 듣기 쉬운 팝 멜로디에 펑크의 반항 정신을 이식한 새로운 펑크 스타일, 즉 1990년대 얼터너티브 운동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특히 초기 이모코어 밴드라고 알려진 시애틀 출신의 써니 데이 리얼 에스테이트의 데뷔 앨범 < Diary >(1994)는 너바나, 사운드가든을 탄생시킨 서브 팝(Sub Pop) 레이블에서 나온 작품으로, 하드코어 펑크처럼 우당탕거리기는 했으나 어딘지 모르게 감상에 젖을 수 있는 멜로디 구간이 있었다. 이제는 대형 밴드가 된 위저(Weezer)의 경우, 이들의 1집 < Weezer >(1994, 블루 앨범으로 불린다)와 2집 < Pinkerton >(1996)에 하드코어 펑크의 요소는 없지만, 팝과 펑크, 그런지가 요란하게 뒤섞인 혼돈의 90년대 사운드에 냉소와 조소, 자괴로 점철된 가사를 입혀 평단으로부터 ‘이모’ 타이틀을 얻었다.
얼터너티브 운동과 더불어 당시 인디 록 신의 조악한 사운드를 반영한 텍사스 출신의 미네랄(Mineral)이나 일리노이의 트리오 밴드 아메리칸 풋볼(American Football)은 창고에서 녹음한 듯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개러지 록 스타일의 음악에 심금을 울리는 청아한 기타 리프를 삽입했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떨리는 보컬을 그대로 사용했다. 미네랄은 1997년 데뷔앨범 < The Power Of Falling >과 다음 해 발표한 소포모어 < EndSerenading >(1998)에서 하드코어 펑크의 굉음을 노이즈 효과로 대체하고 멜로디를 보강했다. 한편, 인디 레이블 폴리바이닐에서 발매된 아메리칸 풋볼의 첫 번째 앨범 < American Football >(1999)은 직선적인 펑크 밴드들과 달리 엇박자가 많고 뜬금없이 관악 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하며, 노래가 끝날 때까지 같은 리프만 반복되는 등 하드코어 펑크 신이 경계한 ‘어렵고 실험적인’ 작품이지마는, 특유의 서정성과 간드러진 기타 선율, 분명한 팝 멜로디 덕분에 ‘이모’의 뜻에 가장 충실한 앨범이 되었다.
새로운 스타일의 펑크 록이 평단이 아닌 대중의 눈에 들게 된 것은 2002년 지미 잇 월드의 ‘The Middle’이 세상에 나오고 나서부터다. 지미 잇 월드는 팝 펑크 밴드로도 분류될 만큼 캐치한 멜로디를 자랑했다. 밴드가 앨범 판매 부진으로 캐피톨(Capito) 레코드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후 발표한 4집 < Bleed American >은 얼터너티브 록의 무게감(‘Bleed American’)과 팝 펑크의 대중적인 멜로디(‘The Middle’) 덕에 대중의 귀를 사로잡았고, 싱글 ‘The Middle’은 결국 얼터너티브 송 차트 1위는 물론, 빌보드의 메인 차트인 빌보드 핫 100 차트 5위까지 수직 상승했다. 지미 잇 월드의 < Bleed American >은 2000년대 이모코어 장르의 사운드를 정의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지미 잇 월드의 ‘The Middle’이 상업적으로 성공하자 많은 이모코어 밴드들이 주목을 받고 신생 그룹 역시 생겨났는데, 2000년대의 이모코어는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흘러갔다. 하나는 초기 이모코어 사운드를 계승하는 경우다. 써스데이(Thursday)와 헤이 메르세데스(Hey Mercedes)는 이모코어의 대중화 과정을 의식하지 않고 이전의 사운드를 고수했으며, 크로스 마이 하트(Cross My Heart)와 대시보드 컨페셔널(Dashboard Confessional)같은 밴드들은 기타 팝과 인디 록, 이모코어의 섬세한 감정선을 결합해 기타 중심의 듣기 쉬운 이모 팝 장르의 곡을 들려줬다. 대시보드 컨페셔널은 덕분에 2004년 발표된 ‘Vandicated’라는 노래로 영화 <스파이더맨 2> OST에 참여하기도 했다. 위와 같은 밴드들은 1990년대 이모코어 신의 대표 격인 써니 데이 리얼 에스테이트와 미네랄을 추종하며 이모코어의 특징적인 색을 유지했다.
한편, 팝 펑크나 헤비메탈 등 메인스트림 록의 요소를 차용한 대중 지향적 이모코어 밴드들도 있었다. 아니, 사실 그들이 대다수였다. 특히나 지미 잇 월드, 블링크-182(Blink-182), 섬 41(Sum 41)이 대표하는 팝 펑크 신은 이모코어와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와 함께 성장했기 때문에 두 장르의 만남은 필연적이었다. 예를 들어, 미국 드라마 <원 트리 힐(One Tree Hill)>에 삽입되어 유명해진 ‘What it is to burn’의 핀치(Finch)는 팝 펑크의 캐치한 멜로디에 메탈에서 자주 보이는 그로울링과 스크리밍 창법을 시도했다. 롱 아일랜드 출신 밴드 테이킹 백 선데이(Taking Back Sunday)가 2003년 발표한 데뷔작 < Tell All You Friends >는 팝 펑크와 이모코어의 과도기적 결합을 잘 보여주는 앨범이다.
*본 글은 수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2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