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영웅, Avril Lavigne을 위시하여
She's my religion
영국의 뉴 웨이브/신스팝 신생 밴드 페일 웨이브스가 돌연 미국의 2000년대 팝 록 시장을 탐미하기 시작했다. 더티 히트 레이블에서 1975를 이을 차기 그룹으로 부상하던 이들이 북미 대륙으로, 정확히는 캐나다 출신의 펑크 키드 에이브릴 라빈에게로 눈을 돌린 데는 리더 헤더의 영향이 크다.
1995년생 헤더 바론 그레이시는 '뿌리 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 히어로였던 에이브릴 라빈을 소환한다. 첫 번째 트랙 'Change'부터 펑크 프린세스의 목소리를 빌려온 그는 'My happy ending'에 < Let Go >의 어쿠스틱 기타, 퍼커션 조합을 덧대어 에이브릴 라빈이 걸어온 약 10년까지의 종적을 크게 훑는다. 라빈을 '갓빈'으로 묘사한 'She's my religion'이나 원작과 노래 제목이 정확히 일치하는 트랙 'Tomorrow'와 'Wish u were here'가 연이어 배치된 점은 말해 무엇하랴. 게다가 앨범 커버를 보라. 무심하게 지나치는 멤버들 사이에서 고고히 서 있는 헤더의 모습은 흡사 2002년의 라빈 그 자체가 아닌가!
앨범은 에이브릴 라빈을 필두로 2000년대 팝 록 스타일의 틴 팝 계보를 차례로 인용한다. 힐러리 더프의 앳된 목소리가 당장이라도 '어제처럼!'을 외칠 것만 같은 'Fall to pieces'의 도입부나 미셸 브런치의 직관적인 멜로디와 하이틴 감성이 담긴 팝 펑크 트랙 'Tomorrow'는 20년 전의 아이리버 mp3에서나 흘러나올 법하다. 디즈니 채널을 즐겨봤던 90년대생 어른이들이라면 'You don't own me'에서 조 조나스를 뒤돌아보게 만든 데미 로바토의 열창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정말로.
그렇다 해도 페일 웨이브스는 어쩔 수 없는 영국 출신 밴드다. 'Easy'가 아무리 헤더의 에이브릴 라빈 모창과 어쿠스틱 기타, 파워 발라드 스타일의 드럼 키트가 연주하는 < Let Go >의 10대 감성으로 점철되어 있더라도, 신스팝 밴드의 훅 메이킹 센스는 그대로 드러난다. 'She's my religion' 역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팝 시장을 장악한 영국의 모던록/브릿팝 밴드들의 여린 기타 리프 라인과 마이너한 멜로디가 녹아있다.
1980년대에서 2000년대로, 약 20년의 장르적 시간을 단번에 뛰어넘었음에도 < Who Am I? >가 단순 모작이 아닌 밴드의 정규 앨범일 수 있는 데는 프로듀서 리치 코스티의 공이 크다. 뮤즈, 푸 파이터스, 포스터 더 피플 등과 작업해온 그는 밴드의 전작 < My Mind Makes Noises >가 주는 육중한 비트감과 흩뿌려지는 듯한 공간감을 보존하면서 신시사이저의 비중을 줄이고 장르적 특색을 위해 드럼의 쇳소리를 강화했다. '진짜' (팝)펑크 앨범처럼 보이게끔 말이다.
지난 몇 년간 틴 팝과 이모, 팝 펑크가 짧게 타오르고 소멸한 그 시대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은 있었으나, 대부분 단발성이었다. 이모 힙합은 여전히 메인스트림으로 자리 잡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며, 유의미한 성과로는 머신 건 켈리의 앨범 차트 1위 성적뿐이다. 신의 리바이벌이 적극적으로 도모되지 않는 환경엔 아마도 '저항정신'과 '마초이즘'을 대표하는 펑크(Punk)와 록을 10대 애들이나 듣는 말랑한 틴 팝 따위로 '변질' 시킨 아티스트들에 대한 평론계의 은근한 적개심도 작용했으리라. 페일 웨이브스는 이에 개의치 않고 시대를 전면에 내걸어 제법 멋들어진 앨범을 만들어냈다. 단순히 흐름에 부합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 Who Am I? >는 1975의 그늘에서 벗어나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뿌리를 발견해나가는 과정, 즉 밴드의 성장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헤더의 선언에 이제야 숨통이 트인다. 이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다. 나의 히어로 또한 '가짜' 펑크 키드 에이브릴 라빈이었노라고.
추천곡 : Change, She's my religion, Easy, Run to
*해당 글은 2021년 2월에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