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장, 산책로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살면서 겪는 일 중 가장 어려운 것이 거주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 덕분에 좋은 게 있다면 다양한 주거 형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피스텔, 빌라, 아파트를 모두 거치면서 사람 사는 느낌이 나서 좋다고 생각했던 인프라를 몇 가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1. 유치원과 초등학교
어린이와 어른이 공존하는 장면을 보는 건 제법 흐뭇한 일이다.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아파트에 살아보고서 깨달았다. 나는 출근을 하고 애기들은 등원, 등교를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어느 층에서 엄마 손, 아빠 손 꼭 잡은 꼬맹이들이 탄다. 꼬맹이들이랑 눈이 마주치면 어떻게 보일지 모를 미소를 빵긋 짓게 된다.
"안녕?"
하고 속삭이듯 인사를 건네면
"앙녕하쎄여어..."
하고 그쪽도 속삭이듯 이야기한다. 그리고 잠시 낯선 얼굴을 살펴보는 아가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도 재밌다. 안녕 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아파트 단지를 나서는 길, 어린이들이 빨강, 노랑, 분홍 책가방을 매고 뛰어다닌다. 어른들의 웃음소리보다 확실히 청량하다. 진짜 꺄르륵 소리가 나는 게 신기하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면 10대 미만부터 60대 이상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다. 보기 드물다. 어린이들이 등교하는 덕에 나도 녹색 모자를 쓴 분들의 교통지도를 받는다. 뭔가 민망하지만 감사하다. 가방에 달랑달랑 자기가 귀엽다고 생각한 모든 것을 달고 다니는 여덟 살이 깜찍하다. 나도 나름 가방 꾸미기 했는데, 어때? 속으로 물어본다. 기분 좋게 시작하는 하루다.
2. 시장
시장을 지나면서 생동감을 느낀다. 매일 아침 회사에 가는 사람들도 대견하지만, 매일 아침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게 나와 영업을 시작한 시장 상인들은 진짜 대단하다. 근데 또 남들은 출근할 그 시간에 장을 보러 간 아주머니들도 계시는 게 신기하다. 오늘 끼니를 준비하시는 건가? 돼지고기를 사시는 걸 보니 오늘 저녁은 높은 확률로 제육볶음?
살아있다는 게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다. 좋은 말이어야 할 힘든 말인 것 같기도, 힘들지만 좋은 말인 것 같기도 하다. 빨노파 파라솔 아래 알록달록 과일들, 채소들, 그 어떤 장면보다 색깔이 다양한 모습을 본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밉고도 고마운 지하철에 갇혀 이동하고 모노톤의 콘크리트 안에서 공조로 호흡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겠지만, 그래도 오늘도 힘내봐야지 생각한다.
3. 산책로
산책로에 나가보면 사람들이 정말 많다. 새벽에 나가도 많고, 저녁에 나가도 많다. 건강을 챙기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럴 겸 친애하는 사람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기 위해 걷기를 선택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보기 좋다. 젊음에 취해 목표 지향적으로, 성취 지향적으로 살아가는 나지만, 그래서 나와의 싸움을 하려고 러닝을 나간 나지만, 여유 있게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한 번은 저녁을 배불리 먹고 남자친구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그때는 뛰지 않고 걸었다. 벚꽃 잎이 날리던 밤이었다.
"행복 별거 없다아~ 맛있는 거 같이 먹고 산책 같이 하고 그러면 행복하다, 그치?"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야 돼. 인생 어떻게 될지 몰라"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마련해 주었던 선배를 불과 며칠 전에 하늘나라로 보낸 남자친구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서 걷는 동안 우리 인생의 주인공이 우리라는 걸, 우리여야 한다는 걸 느꼈다.
이것 말고도 좋은 게 많겠지만,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마주할 수 있는 소리와 시야에 이런 것들이 있으면 참 좋더라. 내일도 귀여운 애기들과 인사하고, 열심히 일하고, 여유롭게 산책하는 하루가 되길!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