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 고딘 <린치핀> 서평
*린치핀이란?
마차나 수레의 축에 꽂는 핀. 핵심축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며 외교적으로는 (공동의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동반자라는 의미를 가진다.
(출처 : 기획재정부 [시사경제용어사전])
맡은 일을 해라.
시간 맞추어 출근해라.
열심히 일해라.
상사의 말을 들어라.
참아라.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라.
그러면 보상을 받을 것이다.
정확하게 꿰뚫렸다. 세스 고딘의 <린치핀>에서 나오는 얘기이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면서 말이다. 회사 동료들에게 위 구절을 공유했더니 '한국 회사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역시 우리는 시스템의 일부다.
반면 아래의 내용은 어떨까?
눈에 띄어라.
관대해져라.
예술을 창조해라.
스스로 판단해라.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라. 아이디어를 공유해라.
... 그러면 사람들은 보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내용만 적어놓은 위 구절 역시 <린치핀>에 나오는 내용이다. 흔히 공장(<린치핀>에 따르면 공장이 꼭 물리적인 공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튀거나 창의적인 과정 없이 정해진 대로 일을 하고 정해진 보상을 받으면 그만인 일터를 통칭한다)에서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책을 읽으며 황당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허무맹랑한 소리 같다. 보통의 노동자로 6년을 살아온 내가 그렇게 느꼈다.
사실 늘 하게 되는 갈등이다. 시키는 대로 토를 달지 않고 할 것인가, 내가 맞다고 믿는 대로 일을 할 것인가. 자아를 버릴 것인가, 자아를 갖고 있으면서 드러낼 것인가. 세스 고딘은 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튀어야 한다고, 예술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닳고 닳는 대로 쓰이고 교체되는 톱니바퀴가 아니라 멀리 가기 위해 꼭 필요한 핵심부품, 린치핀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내가 존경하는 선배나 리더들은 항상 린치핀이 되라고 말해줬다. 너무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옳다고 믿는 것,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밀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닦이고 갈려 린치핀이 되기엔 꽤 지쳐버린 시점에서 이 책을 만났다.
린치핀 이야기에서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세 가지다.
재능이 아닌 선택이다
먼저 세스 고딘은 '린치핀'으로 살아가는 것은 재능이 아닌 선택이라고 이야기한다. 천재라서, 예술적 기질이 있어서, 타고나서 린치핀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재능'이라는 단어는 블랙홀이다. 사람들은 안 되는 모든 것을 재능으로 설명하려 한다. 일을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탈출구인 셈이다. 세상 모든 것이 유전자고 타고난 재능이므로 내가 선택하고 노력해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핑계를 댈 수 있다. 하지만 세스 고딘은 린치핀이 되는 것이 선택이라는 말로 탈출구를 원천 봉쇄해 버렸다. 도망갈 곳이 없다. 만약 내가 린치핀이 아닌 톱니바퀴로 살아가고 있다면, 나는 그 삶을 선택한 것이다.
생산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끝까지 해내야 한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생산하는 삶을 살지 않게 되었고, 되지 않는 일을 끝까지 하는 법이 없어졌다. 생각 없는 소비가 훨씬 더 쉽고, 한 번 시도했을 때 되지 않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는 게 무가치한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세스 고딘은 생산해야 하며, 끝까지 해내야 한다고 말한다. 피카소가 1000점 이상의 그림을 그려냈기 때문에 3점의 작품이라도 대중에게 각인될 수 있었다는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우리가 천재라고 칭하는 사람들은 알고 보면 성실했다.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주체성의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선택이나 생산도 주체성을 갖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세스 고딘이 꼽은 린치핀이 되기 위한 요소, 선물, 인간성, 인간관계도 주체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받지 않아도 베푸는 것, 남들이 하려고 하지 않는 감정노동을 하는 것 등은 내가 의식을 갖고 먼저 나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과정은 매뉴얼화되고, 결과는 숫자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체성은 불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형화된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나의 자아가 작동하여 전에 없던 일들을 만들어낼 때 진정한 혁신, 진정한 성공이 만들어진다. 이 책이 처음 세상에 나온 게 10년도 더 된 일인데, 그때 세스 고딘이 제기했던 문제가 오늘날에 더욱더 팽배하게 된 것이 놀랍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내가 그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했기에 더욱 그런 것 같기도.
아래는 세스 고딘이 책의 시작에서 우리에게 묻는 것들이다. 우리의 천재성을 확인하는 질문들이다.
당신은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있는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지름길을 찾아낸 적 있는가?
가족을 곤경으로 몰아넣는 문제를 해결한 적 있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작동하게끔 만든 적 있는가?
사람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과 개인적으로 관계를 맺어본 적 있는가?
단 한 번이라도?
'~한 적 있는가?'라는 말은 늘 그럴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남에게 자랑스레 이야기하지는 못해도 속으로는 '그럼그럼 그런 적 있는 걸?'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린치핀'이다. 영업일마다 내적갈등을 겪으며 자아의 존폐에 대해 고민하거나 시스템 안에서 '넌 잘나지 않았어'라는 세뇌의 메시지를 듣고 있는 사람이라면 세스 고딘의 <린치핀>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천재가 맞고, 그렇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이었다고.
* 출판사로부터 책과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