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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선 Sep 10. 2020

나도 이제 엄마가 있다

6mm 테이프 변환 후기

날 낳아주신 친엄마는 2009년 11월에 돌아가셨다. 벌써 11년이 흘렀다. 인생을 흔들 너무 큰 일이 일어났을 때 그저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과거의 나를 나는 아직도 동정한다. 



 

때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유독 친하게 지냈던 나의 담임선생님이 학교 홍보 동영상을 위해 '연선이의 하루' 라는 걸 찍으실거라고 하셨다. 그 당시 캠코더 앞에 하루종일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싫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는 없는 나름 착한 학생이었으므로 순순히 선생님의 뜻에 따라 촬영에 임했었다.


 몇년 전, 선생님을 뵈러 학교에 갔었다. 사립 고등학교여서 선생님들이 어딘가로 전근가시지 않고 찾아가면 뵐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좋았었다. 가서 선생님께 이제 성인이니까 삼겹살에 쏘주 한잔 해야되는거 아니냐며 헛헛한 농담따먹기를 하고있을 때, 갑자기 무언가 생각나신 듯 책상을 찾아보시더니 나에게 6mm 캠코더 테이프 하나를 건네주셨다.


"그 때, 너네 집에서 촬영한 것도 있었어. 혹시 모르니까 가지고 가봐."


하는 선생님의 말씀에 테이프를 꼭 쥐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러나 나에겐 변환 할 수 있는 캠코더도 프로그램도 없었고, 사실 용기가 잘 나지 않았다. 이 테이프를 열어봤다가 엄마가 있다면 그것도 마음이 아플 것이고, 없다면 기대한 만큼 아플 것이기 때문에 그냥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이 많이 흘렀다.


얼마 전, 서랍을 열었을 때 고등학교 때 쓰던 '블링블링 캔유'와 저 '6mm 테이프' 가 있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나는 20핀 충전기를 사고, 테이프는 변환해주는 업체를 찾아봤더니 택배로 테이프와 usb를 보내면 파일을 변환해서 담아준다는 업체가 있었다. 발견하고 나서도 조금 고민의 시간을 거친 후 택배로 테이프를 보냈다. 파일 변환에는 6~8일이 걸린다고 했었다. 기대인지 초조함인지 모를 일주일이 지나고, 변환된 파일과 테이프가 도착했다.


어떻게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으로 택배를 차근차근 뜯었다. 뜯어보니 안에 봉투가 하나 들어있고, 봉투 안에는 견적서와 테이프, 내가 보낸 usb까지 잘 들어있었다.




영상을 처음 틀었을 때는 학교에 초청 강사님이 수업을 하는 영상이 있어서 테이프를 잘못 주신건가 싶었다. 그렇게 5초 건너뛰기를 하며 보고있다가, 내가 나왔다. 그리운 실기실, 교실, 실기 수행평가 하던 모습이 찍혀있었다. 와 나 고등학교때 저러고 다녔었구나.. 하는 찰나에 가족이 다같이 살던 집 바깥을 촬영한 영상이 나왔다. 



그리운 우리 집. 저 집이 그리운게 아니라 저때의 내가, 우리가 그리운거 겠지만 나의 애정이 듬뿍 담긴 집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게 집을 보고있다가.. 집 안을 촬영한 영상이 나왔다.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엄마는 선생님께 삼각대 필요하시냐고, 우리 아들이 카메라에 취미가 있어서 삼각대가 집에 있다고 말하고, 선생님은 그럼 실례가 안된다면 쓰겠다고 말씀하시고, 삼각대를 설치하셨다. 


 그렇게 선생님은 캠코더를 삼각대에 고정시키고 엄마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엄마가 말한다. 생각한다. 말한다. 과거의 엄마가 더 과거를 회상한다. 눈물이 너무 났다.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11년만에 들은 엄마의 목소리는 아직도 너무 맑았다. 사실 너무 오래 지나 목소리가 어땠는지, 말할 때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해졌었는데 엄마가 기억속의 모습 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앉아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 부터 아침을 안먹었는 줄 알았다. 근데 엄마는 내가 아침에 볶음밥이나 김에 밥을 싸주면 먹는다고 했다. 아침을 안먹고 가면 배고파서 공부가 안된다고 한다고 했다. 그랬구나. 나는 아침을 먹는 사람이었구나.

 연선이도 늦게오는데 너마저 없으면 엄마 심심하니까 오빠보고 집에 빨리 들어오라고 했다. 오빠는 저 때 대학교 신문사 활동으로 바빴구나. 아침부터 취재가 있어서 저 시간에 일어나서 나와 같이 아침을 먹었구나.


 아침에 나를 깨우려고 딸 일어나~ 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응! 이라고 대답하지 않는게 너무 억울하다. 조금 더 웃지 않는게 너무 바보같다. 학교 잘 다녀오라고 윤이를 안고 인사하는 엄마에게 갔다온다고 손 한번 들어주지 않는 내가 너무 한심하다. 나를 너무 원망한다.


 딸 소리를 한번만 더 듣고싶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젠 일정한 톤이지만 여러번 들을 수 있다. 비록 가로 720도 안되는 해상도에 노이즈도 잔뜩 꼈지만 내 이름을 말하는 엄마가 있다. 말하는 엄마가 있다. 


나도 이제 엄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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