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당이 필요하다

마당이 명품인 이유

by 풀솜

요즘 명품의 예술성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듣지 못했다.

요즘사람들이 생각하는 명품이 명품인 이유는 비싸고 불편하고 희귀해서이다.

쉽게 손에 넣을 수 없어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 같다.


돈이 없어서 못 사고

물건이 없어서 못 사고

안목이 없어서 못 사고

시간이 없어서 못 사고

마음이 없어서 못 사고

여유가 없어서 못 산다.


이 시대 마당이 그렇다.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것

만들고자 해도 땅이 없고 관리는 더 어려운 것

그런 것이 명품이라면 잘 가꾼 마당은 분명 명품이다.




세상에는 땅이 많다. 빈 땅이 있다고 모두 마당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내 집 앞에 딸린 땅이 아니라고 마당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공동주택이 일반화된 요즘 내 집에 딸린 땅이 아니라도 마당일 수 있다. 그럼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마당이라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세상이다. 의식주만 보더라도 100년 전과 비교하면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신 할머니의 사진을 보면 할머니는 옥색한복에 쪽머리를 하고 계셨고 해방 후 엄마의 처녀시절 사진을 보면 엄마는 검은색 플레어 치마에 흰 블라우스를 입고 파마머리에 약간 높은 힐을 신은 세련된 양장을 하고 계셨다. 우리 민족에게 쌀밥은 삶 자체였다. 나는 오늘 아침 식빵 한 조각과 바나나 간 우유 한잔을 먹었다. 쌀 소비량이 현저히 줄었다. 100년 전과는 음식의 재료나 조리법도 달라졌다. 현지에 가지 않아도 서양식 음식은 물론 인도음식 태국음식도 먹을 수 있다.


가장 변화가 어려운 부분이 주생활이다. 집은 재화가 가장 많이 투입되는 부분이어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100년이라는 시간을 놓고 보면 우리가 사는 집은 상당히 변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한옥에서 양옥으로 공동주택인 아파트로 진화하며 다양한 주택이 공존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집이 외관적으로는 변화가 심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주거환경이 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서울근교에 집 한 채 갖는 것이 서민들의 로망인 지금의 현실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도 권세를 지닌 양반이 아니고서 한양에 집 한 채 갖기는 힘들었다. 어느 시대나 부자들의 집은 위치가 좋고 넓고 편리하였다.


산업사회는 도시화를 부추겼다. 6~70년대부터 도시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도시는 공간이 부족했다. 서민들은 집 한 채 갖고자 그들의 삶을 쏟아부었다. 집에 대한 열망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부동산으로 점철된 역사로 만들었다. 아파트가 보편화되고 환금성이 좋은 아파트로 인해 집은 '사는 곳'이 아니라 '재산' 자체가 되었다. '사는 공간'이었던 집에서 '가성비 좋지 않은 공간'이 곧 '필요 없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때 가장 먼저 없어진 공간이 마당이다.


우리의 주거공간에서 마당이 사라졌다. 마당이 사라진 이유가 가옥구조의 변화 때문이라고 하지만 마당을 대신할 공간을 지킬 수도 있었다. 마당이 사라진 것은 가옥구조의 변화보다 마당이 공간의 크기에 비해 '쓸데없는 공간'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의 선조들은 어디에 살던 어떻게 살던 마당이 있었다. 부자들이 사는 기와집에도 마당이 있었고 초가집에 살아도 마당은 있었다. 우리 민족에게 마당은 어디서나 누구 집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공간이었다.




'마당'은 집의 앞이나 뒤에 평평하게 닦아 놓은 땅이다. 한옥이나 양옥의 중정 작은 마당에서 한옥 건물의 앞마당 뒷마당은 물론 학교 운동장이나 도시의 공원까지 식물을 심지 않은 Open Space를 넓은 의미의 마당이라고 하자.


'평평한 빈 땅'


동이 트고 새벽 공기가 내려앉을 즈음 스님이 울력으로 마당을 쓴다. 시원한 공기와 지저귀는 새소리가 허공을 채운다. 사찰의 새벽 마당은 아무것도 없는데 꽉 차있다는 느낌이 든다. 넓디넓은 빈 공간에 스님과 스님이 들고 있는 빗자루가 전부다.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쓸어나가는 행위는 부처님 앞에 예를 올리는 행위만큼 신성하다. 마당을 쓰는 일은 구도에 가깝다. 스님과 빗자루가 지나간 자루에는 빗자루 자국이 남아 있다. 일정한 포물선이 반복된 자국은 규칙적이어서 숭고해 보이기까지 하다.


나는 마당을 갖고 싶었다.

넓고 시원한 공간

사람이 주인공인 공간

비움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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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내가 원하는 정원의 모습이다.


10년 전부터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현실과 이상은 괴리가 있기 마련,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평한 빈 땅을 유지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나? 사실 마당은 소유보다 관리가 힘들었다.


마당의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배수문제다. 배수관리는 정원의 땅가름부터 계획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여름에 비가 많이 오는 대륙성 기후다. 1년 내릴 비의 양의 대부분이 여름 몇 달간 내린다. 비가 올 때 배수가 원활하지 않으면 자칫 마당이 물웅덩이가 되기 십상이다. 마당이 물웅덩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비가 오면 빠른 시간 내에 물이 빠져야 한다. 물은 땅 속으로 스미던지 낮은 쪽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땅 위로 흐르는 물을 표면배수라 하고 땅 속으로 흐르는 물을 지하배수라고 한다. 경사가 급하면 물은 빨리 빠지지만 평평한 땅이라 할 수없다. 마당의 경사가 5도가 넘으면 세찬 소나기 한 번에도 물이 흐른 자리에는 골이 생긴다. 이 골은 금방 도랑이 된다. 마당의 경사는 1~2도를 넘지 않아야 한다.


마당이 넓어지면 표면배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땅을 파고 배수관을 묻어야 한다. 유공관이라고 하는 구멍이 뚫린 관을 묻고 집수정을 만들어 땅 속에서 물이 흐르게 만들어야 한다. 토목공사가 필요하다. 마당의 흙은 물 빠짐이 좋은 마사토가 좋다. 진흙과 같이 입자가 고운 흙은 물 빠짐이 좋지 않아 물이 고이고 잡초가 생기기 쉽다. 잡초관리 또한 마당을 유지하는 데 힘든 부분이다.


한옥의 배수체계는 상당히 과학적이다. 건축물이 앉은 기초의 가장자리에 물길을 만들고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 집수정으로 흘러들어 가게 설계한다. 마당에서 흐르는 물 또한 수로 쪽으로 경사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물이 흐를 수 있도록 설계한다. 이 물길은 디자인적인 면으로도 우수하다. 마당을 공기처럼 즐겨왔던 조상들의 마당관리의 노하우를 배울 필요가 있다. 언젠가 한옥의 배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글로 쓰고 싶다.




마당이 사치품일 수는 없다.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몇십 년 간 마당이라는 공간의 중요성을 너무 소홀히 했다. 경제가 발달하고 주거환경이 좋아졌는데 시설 좋은 집에 오면 왜 갑갑한지 왜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은지 알지 못했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차츰 우리는 우리의 집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자유롭게 하늘을 보고 싶다'

'하루에 몇 번이라도 외부 공기를 느끼고 싶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다'

는 생각을 나만 했을까?


밖이 공기를 마시기 어려운 곳에서 하루 종일을 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마당은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필수품이다. 집은 어떤 경우라도 마당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파트에서도 마당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베란다 공간이다. 그동안 마당을 없앤 것과 같은 이유로 베란다를 없앴다. 아파트 평수를 늘리는데 급급해서 베란다 확장 공사가 유행이었다. 마당만큼이나 베란다를 쓸데없는 공간으로 생각했다. 외부공기를 맡을 수 있는 베란다가 얼마나 고마운 공간인데... 하루에 몇 번이고 문을 열고 나가서 밖의 공기를 마시며 하늘을 볼 수 있는 공간인데....


꽃들도 외부의 공기를 좋아한다. 베란다에서 키우는 꽃을 실내로 들여오면 꽃도 힘들어한다.


도시에서도 마당을 즐길 수 있다. 광장이다. 광장은 언제든 누구든 자유롭게 머물며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걷고 앉아 있고 자전거도 타고 플래시몹 같은 공연도 즐기고 내가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이 모든 행위를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시간은 잘 간다.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공의 공간이 많을수록 좋은 도시다. 유럽은 도시마다 광장이 있다. 유럽의 광장에는 화려한 분수나 유명한 사람의 조각품이 가운데 있다. 유럽 광장의 풍경은 자유롭다. 우리도 광장이 있지만 우리의 광장은 너무 정치적이다.


마당은 화려하지 않다. 우리의 마당은 '비움'의 공간이다. 마당은 물질적인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공간이다. 마당이 가성비 좋지 않은 공간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집집마다 마당이 없더라도 도시에 마당이 있으면 된다.


허허로운데 철학을 더한 공간

허허로운데 마음을 더한 공간

마당은 그런 공간이다.




* 여행계획으로 인해 당분간 '춘천이야기'는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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