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도 마당이 필요하다

중도 유적지는 춘천의 마당

by 풀솜

우리 집은 마당이 넓다.

당신 정원의 컨셉이 뭐냐 물으면 나는 마당이라 답할 수 있다.

마당은 꽃도 나무도 없는 맨땅의 정원이다.


과거 우리의 집들은 마당을 포함했다.

집을 한채 샀다고 하면 당연히 마당이 딸린 건물을 말한다.

기와집도 마당이 있었고 초가집도 마당은 있었다.


우리는 마당에서 놀았고 마당에서 김장을 했다.

마당은 아이들에게는 놀이터고 어른들에게는 작업장이다.

마당에 빨래를 널고 빨래 널 때 드넓은 하늘이 보였다.


언제부턴가 마당이 사라졌다.

마당과 함께 삶의 여유도 사라졌다.

팍팍한 삶은 마당이 있었던 것조차 생각할 여유도 잃었다.


도시는 사람으로 넘쳐났다.

사람들은 발전만이 성장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여유로운 시간이 줄어들고 여유로운 공간도 함께 사라졌다.


현대인에게 뭔가 꽉 채워야 한다는 생각은 강박에 가깝다.

마당에는 아무것도 없다.

현대인은 '비움'을 이해하기 어렵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밖으로 나간다. 아침 공기가 시원하다. 마당을 한바탕 둘러보고 가장자리에 자라는 풀들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옮겨 심은 데이지가 어제까지 봉오리였는데 오늘은 흰 꽃이 피었다. 손녀를 위해 심은 블루베리가 유난히 추웠던 이번 겨울을 나지 못해 죽은 줄 알았다. 뽑아내려 하니 가지 아래 눈이 보였다. 놀라서 옆에 구덩이를 파고 다시 심었다. 조급한 행동이었음을 반성하며 돌아섰다. 장미 잎 뒤에 애벌레를 몇 마리 잡아주고 잡초도 뽑아주고 나뭇가지를 정리했다.


식물이 가득한 정원이 활기찬 공간이라면 마당은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는 무심한 공간이다. 그렇다고 죽은 공간은 아니다. 마당에서 뛰고 놀면 운동공간, 마당 가운데에서 나무로 뚞딱뚝딱 뭔가를 만들고 수돗가에서 김장배추를 씻으면 작업공간, 벤치에 앉아 차를 마시면 휴식공간, 차를 세우면 주차공간... 마당의 기능은 끊임없이 변한다.


마당에 있으면 하늘도 보고 새도 보고 지나가는 비행기도 볼 수 있다. 하늘을 한참 보고 있으면 지나가는 구름의 모양이 느리게 변한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에 놀라고 비가 오면 빗소리와 흙냄새가 오감을 자극한다. 마당에 있으면 지루하거나 심심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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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도 마당이 필요하다.

바쁜 도시인들에게 휴식이 필요하다.

무심하게 뭔가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유럽의 도시에 광장이 있다.

도시의 광장은 도시의 마당이다.

광장에 사람들이 모인다.


광장과 마당은 조금 다르다.

우리도 광장이 있지만 우리의 광장은 너무 시끄럽다.

우리의 광장은 시시비비 목소리 큰 사람들의 공간이다.



우리는 마당을 원한다.



무심한 공간

권태롭지 않은 공간

누구라도 부담이 없는 공간

하늘이 보이는 공간

요란한 시설물이 없는 공간


무엇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공간

기교가 없는데도 심심하지 않은 공간

흙을 밟을 수 있는 공간

길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



춘천에는 이미 너무나도 멋진 마당이 있다.
북한강 가운데 떠 있는 섬 중도


산책을 할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탈 수도 있고

배드민턴을 칠 수도 있고

여러 명이 모여 춤을 출 수도 있고

멍하니 강을 바라볼 수도 있고

지인과 생일을 축하할 수도 있고

비 내리는 하늘을 바라볼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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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가 정해지지 않은 공간

그곳에서 할 일을 내가 정할 수 있는 공간



비어 있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 있다.
인간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 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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